‘수영선수 백승호’로 2022년 마치게 해준 동아수영대회 [김배중 기자의 볼보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30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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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부터 21일까지 경북 김천실내수영장에서 치러진 제94회 동아수영대회에 출전한 백승호. 김천=김배중 기자 wanted@dong.com
“‘수영선수’로 시즌을 마칠 수 있어 뿌듯했습니다.”

수영 국가대표 출신으로 2015년 10월 경북 문경에서 열린 세계 군인체육대회 남자 자유형 1500m 은메달을 획득했던 자유형 장거리의 강자 백승호(32)는 올 한해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누구에게는 당연한 ‘선수’라는 타이틀이 백승호에게 새삼 소중한 단어였다.

지난해 말 한 지자체 실업 수영 팀 소속이었던 백승호는 후배들을 괴롭혔다는 누명을 쓰고 해당 지자체 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로부터 1년 6개월의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선수생활 지속여부가 불투명해지는 중징계다.

소속팀 내에서 소위 파워게임이 벌어지다 팀 내 고참이던 백승호에게도 불똥이 튄 사건이다. 말 그대로 누명이었기에 백승호도 명예 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결국 수사기관에서 무혐의로 결론이 났고 올해 10월 경기도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로부터 징계 취소결정을 받았다.

16일부터 21일까지 경북 김천실내수영장에서 열린 제94회 동아수영대회는 다시 선수자격을 얻은 백승호가 선수로 물을 탈 수 있는 첫 무대였다. 보통의 다른 실업 선수들이 비 시즌이라 쉬는 시기였기만 김천까지 달려갔던 이유다. 자유형 400m, 800m 2종목에 출전한 백승호는 금메달 2개를 목에 걸었다. 올해의 마지막은 ‘동아수영대회 2관왕 백승호’로 장식할 수 있었다.

대회가 끝나고 백승호는 “지난해부터 표현하기 힘들 만큼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도 수영계 선배들의 조언으로 마음을 다잡고 훈련에 매진했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아마 가장 열심히 훈련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명예를 조금이라도 회복한 것 같아 후련하다”고 했다.

2023년에도 현역생활을 이어갈 지에 대해 백승호는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라고 했다. 선수로 다시 돌아왔지만 명예를 회복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걸려 새 시즌에 몸담을 소속팀을 찾는 일까지 챙기지 못했다. 일반 직장인들에게 퇴사 후 새 직장을 못 찾았다는 이야기와 같다.

백승호의 아내는 프로배구에서 리그 최정상급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는 배유나(33·한국도로공사)다. 누명을 썼던 백승호가 명예회복을 하는 과정에서 동종업계(스포츠) 종사자이자 인생 선배로 많은 힘이 돼줬다고 했다. 백승호는 “아마 혼자였다면 내년에도 현역생활을 이어가고 싶다고 선뜻 얘기했을 것 같다. 하지만 소속팀이 없다면 모든 걸 혼자 챙겨야 한다. 가족을 생각하면 가장답지 않은 철없는 얘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확실한 건 선수로든 아니든 ‘수영계’에 남아 기여를 하겠다는 다짐이다. 백승호는 “선생님들과 선배들의 응원과 도움으로 올해의 마침표를 잘 찍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후배들에게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선수생활의 정점을 찍고 내려오기 시작하던 2018년 여름, 백승호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수영에 관한 각종 노하우를 공유하는 콘텐츠를 꾸준히 올리고 있는데 명쾌한 설명으로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그렇기에 ‘지도자’ 타이틀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뜻밖에 어둠의 터널을 지나왔던 백승호의 앞날을 응원한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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