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겸손 대신 패기+@…신인의 미덕이 달라졌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4월 3일 05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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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서준원-LG 정우영-KT 손동현(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롯데 서준원-LG 정우영-KT 손동현(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 패기는 거만함이 아닌 미덕이 됐다. 루키 서준원(19·롯데 자이언츠)은 3월 30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1군 첫 등판했다. 2이닝 무실점으로 완벽투를 선보인 그는 “이 정도면 100점짜리 데뷔전이다. 박용택 선배를 삼진으로 잡지 않았나”라며 미소 지었다. 이튿날인 31일, LG의 신인 정우영(20)에게 이 얘기를 전했다. 그러자 정우영은 “전날 밤에 나는 이대호 선배에게 삼진 뺏는 꿈을 꿨다. 그 정도면 복수가 될 것 같다”고 껄껄 웃었다. 역시 입단 동기인 손동현(18·KT 위즈)은 “1군에 자리 잡기 전까지 여자친구를 만들지 않겠다”는 이색 다짐을 했다. 김기훈(19·KIA 타이거즈)은 “첫 선발등판은 그렇게 긴장되지 않았다. 투수라면 마운드에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이제 두 달 남짓 지난 신인들이지만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밝힌다. 패기 넘치는 모습이다. 비단 2019년 입단한 신인의 모습만은 아니다. 지난해 신인왕을 받은 강백호는 프로 유니폼을 입은 직후부터 “마인드가 베테랑급”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특유의 능구렁이 같은 태도에 압도적인 성적까지 이어지니 KT의 최고 인기 스타로 발돋움했다. 2017년 신인왕 이정후는 “나를 두고 ‘베이징 키즈’라고 하지 않나. 나 역시 국제대회에서 활약해 또 다른 ‘키즈’를 만들고 싶다”고 당찬 목표를 밝혔다. 자신감과 더불어 야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었기에 가능한 발언이었다.

# 과거 신인들에게 겸손은 필수 덕목이었다. 얼어붙은 표정으로 “언젠가 1군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복사+붙여넣기’처럼 반복하기 일쑤였다. 엄한 라커룸 분위기에서 튀는 행동을 하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리그는 물론 사회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제 젊은 선수들에게 무조건적인 겸손을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 ‘신인다운 패기’는 곧 스타성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실력까지 두루 갖춘 선수들이 즐비하다. 이정후와 강백호는 신인 관련 각종 기록을 갈아 치웠다. 올해는 개막 엔트리부터 7명의 고졸 신인이 포함됐다. 지난해(4명)보다 훌쩍 늘어났다. 상위 지명으로 프로에 입단한 신인들에게 실력이야 기본이다. 여기에 강력한 멘탈이 더해지니 1군에 연착륙하기 쉽다. 롯데 양상문 감독은 “신인에게 중요한 건 기량보다 심장이다. 그런 선수들이 1군에서 성공한다”고 밝혔다. 강한 멘탈은 신인에게 통과 의례처럼 주어지는 슬럼프에서 금방 벗어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덕목이다. 최근 수년간 한국 야구는 확실히 신인 풍년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인천|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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