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베이스볼] 넥센 김상수의 고백 “길었던 부진의 늪, 암흑기 아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6월 27일 05시 30분


넥센 김상수에게 있어 2017년은 최고의 한 해로 기억될 듯하다. 그간 화려한 조명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올해엔 팀의 마무리를 맡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며 넥센의 수호신 역할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고척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넥센 김상수에게 있어 2017년은 최고의 한 해로 기억될 듯하다. 그간 화려한 조명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올해엔 팀의 마무리를 맡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며 넥센의 수호신 역할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고척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넥센 김상수(29)에게 2017시즌은 야구인생 최고의 한해다. 한때 삼성 유격수 김상수(27)와 동명이인으로 더 유명했던 그가 어느새 팀의 승리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거듭난 것이다. 26일까지 올 시즌 32경기에서 2패9세이브5홀드, 방어율 2.70(33.1이닝 10자책점)을 기록하며 뒷문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데, 무려 21(21삼진 1볼넷)에 달하는 5월 이후 삼진/볼넷 비율은 환골탈태의 증거다. 2006년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전체 15번)에서 삼성에 지명돼 프로에 입단한 뒤 우여곡절을 겪은 김상수를 만났다. “언변이 뛰어나다. 책을 정말 많이 읽는다”는 넥센 구단관계자의 설명이 딱 맞았다.

넥센 김상수. 고척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넥센 김상수. 고척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계획도, 목표도 없었던 지난날…암흑기는 아니었다”

-야구인생 최고의 한해를 보내고 있다.


“꾸준히 준비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오늘 잘 던지든 아니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그게 하나 둘씩 쌓이다보니 시즌을 치를수록 스스로 풀어가는 방법이 생긴 듯하다.”

-그동안 정해진 보직이 없었다. 필승계투조에 배치된 것도 지난해부터였다.

“이제 12년차인데,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처음에는 보직보다는 그저 1군에서 오래 버티는 것이 목표였다. 그만큼 준비가 안 돼 있었다. 내가 투수로서, 운동선수로서 지켜야할 것들에 대한 계획도, 목표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왔다갔다했다. 그 생각을 바꾼 것이 국군체육부대(상무) 입대 직후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2016시즌을 앞둔 시점에도 선발 후보였지만, 그때도 확실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운 좋게 팀에서 기회를 주셨고, 그 기회를 살렸다. 박승민, 손혁 코치님께서 많이 도와주셨다. 늘 도움을 받다 보니 내 자리를 찾아가기가 한층 수월했다.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좋은 기회를 주셨다. 계속 준비하다 보니 지금도 한 단계씩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

-무엇이 부족했던 걸까.

“계획이 없었다. 막연히 하루하루를 보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후회되고 실망스럽다. 하지만 그런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힘든 시기를 거쳤기에 지금 힘들어하는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어떻게 해야 야구를 잘할 수 있는지 말해줄 수 있는 것 같다. 스스로도 ‘과거로 돌아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 더 열심히 보냈다. 덕분에 많은 공부를 했다. 오랫동안 부진했던 시기를 꼭 ‘암흑기’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잘할 수 있도록 준비할 기간이 길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과거의 부진이 최근의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됐나.

“지난해에 부진이 길었다. 7월 한 달간 정말 좋지 않았다.(12경기 방어율 7.59) 블론세이브도 4개였다. 그때부터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을 고민했고, 그에 맞춰 올해는 더 많이 준비했다. 그런데 시즌 초반부터 슬럼프가 찾아오더라. 당황하지 않고 지난해 7월 등판했던 경기를 복기하면서 문제점을 분석했고, 빨리 머릿속을 비웠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던질 수 있도록 다시 준비했다. 감독, 코치님께서도 편안한 상황에 마운드에 올라 경기 감각을 찾게끔 도와주셨다. 그러면서 자신감을 찾았고, 빨리 페이스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넥센 김상수. 고척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넥센 김상수. 고척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드라이버 아닌 퍼터 싸움” 연구를 통해 답을 찾다

-확실히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


“나는 빠른 공, 구위로 타자를 압도하는 투수가 아니다. 투수 입장에서, 내가 생각하는 야구의 본질은 공을 던져 타자를 아웃시키는 것이다. 적은 투구수로 아웃카운트를 잡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물론 삼진을 잡으면 좋겠지만, 빗맞은 타구를 유도해 아웃카운트를 잡는 것이 첫째다. 전광판에 시속 150㎞가 넘는 구속이 찍히면 팬들이 환호할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구속이 120㎞여도 타자가 초구를 쳐서 아웃카운트가 늘어난다면 그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구속이 빠르지도 않고, 컨트롤이 좋은 투수도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타자를 효과적으로 잡아낼 수 있을까 연구했다.”

-어떤 결론이 나왔나.

“내 직구 구속은 140㎞대 초반이니 공 끝의 움직임을 살려 빗맞은 타구를 많이 유도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투심패스트볼과 포크볼의 비율을 늘릴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공이 빠른 투수가 아니고, 직구의 공 끝을 살려야하는데 투심을 던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포크볼을 어떻게 던져야 빗맞은 타구가 많이 나올까를 고민한 것이다. 나는 손이 작은 편이라 검지와 중지를 많이 벌리면 공이 느려진다. 그러면 배트 중심에 맞을 확률이 높아진다. 검지와 중지를 많이 벌리지 않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연구하면서 ‘내가 어떤 유형의 투수가 돼야 할까’에 대한 답이 나왔다. 맞혀 잡는 유형의 투수였다. 골프에 비유하면 드라이버가 아닌 퍼터 싸움, 즉 공 끝과 컨트롤로 승부해야 한다는 얘기다.”

-무브먼트를 살리기 위해 어떤 훈련을 했나.

“손끝의 감각이 중요하다. 일단 공을 많이 만졌고, 내가 손의 악력이 약한 편이어서 악력기를 자주 만진 것도 도움이 됐다. 항상 ‘직구의 무브먼트가 좋다’는 말을 들었기에 그 장점을 어떻게 살릴지 고민했다. 과거에는 ‘낮게 던져야 타자가 못 친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최근에 데이터를 보면 오히려 높은 코스 직구의 피안타율이 더 낮다. 투수들의 높은 공은 확실히 위력이 있다. 직구를 높은 코스에 던지는 것부터 연습했다. 무브먼트가 좋지 않으면 그 공은 맞아 나가게 돼 있다. 반대의 경우라면 평범한 뜬공이 나온다. 마운드 위에서도 항상 그 생각을 한다. 무브먼트가 좋다고 판단하면 직구를 많이 던지고, 타자 방망이에 맞아 나간다고 느끼면 변화구를 섞어 던진다.”

-타자의 심리를 읽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지만, 항상 계획을 짠다. 물론 그 계획대로 되진 않는다.(웃음) 10번 중 2~3번 정도 성공한다. 타자도 매 순간 바뀌기 때문에 나도 그래야 한다. 커브를 던진다고 마음먹었는데, 타자가 직전 타석에 커브를 노려 쳤거나 타이밍이 맞는다고 판단하면 패턴을 바꾸는 것이다. 나와 전력분석팀의 의견을 공유해 계획을 정한다. 미리 공부하는 편이다.”

-‘적은 투구수’를 언급했다. 올 시즌 경기당 투구수가 16.8개다. 만족스러운가.

“더 줄여야 한다. 선발투수의 경우 매 이닝 완급조절을 할 수 있지만, 마무리와 필승계투요원은 20개 안팎의 공을 전력으로 던져야 한다. 중간계투가 20개미만의 공으로 1이닝을 막아낼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본다. 지금의 수치를 봤을 때 나름대로 투구수 조절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넥센 김상수. 스포츠동아DB
넥센 김상수. 스포츠동아DB

● “내가 보직과 성적에 욕심내지 않는 이유는…”

-셋업맨과 마무리 모두 경험했다. 궁극적으로 본인과 가장 잘 맞는 보직은.


“확실히 마무리투수가 부담은 더 크다. 내 뒤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셋업맨은 내 뒤에 한두 명의 투수가 더 있다는 생각에 부담이 덜하지만, 언제 나갈지 모르니 등판을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다. 마무리는 마지막에 등판하니 준비할 시간이 있다. 장단점이 뚜렷하다. 내게 어떤 보직이 잘 맞는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투수라면 어떤 상황이든 마운드에 올라 점수를 주지 않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다.”

-마무리로 자리 잡고 싶은 욕심은 없나.

“물론 욕심은 있지만, 내가 어떤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욕심을 부리진 않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자만하게 될 것 같다. 운동 욕심은 많은데, 보직과 타이틀에 대해선 마음을 비우려고 한다. 어차피 시즌이 끝나면 결과가 따라오고, 그에 따른 평가가 나올 것이다. 욕심을 부리면 스스로 자신을 무너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직과 성적에 욕심내지 않으려는 이유다.”

-넥센 마운드에선 고참 축에 속한다. 젊은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은.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다. 잔소리를 하면 일단 3~4일은 지킨다. 하루 이틀 안 하다가 또 잔소리를 하면 3~4일 간다. 그렇게라도 선배가 끌고 가야 한다. 나도, 후배들도 힘들겠지만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선 그렇게 해야 한다. 똑똑한 선수들은 귀찮아하면서도 선배의 조언을 듣고 뭔가 해보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 것을 만드는 선수가 있다. 6~7년간 뛴 후배들은 내가 어떻게 야구했는지 봤을 것이다. 그때와 비교하면 변화가 있다. 과거의 힘들었던 경험이 후배들에게 조언할 때 확실히 도움이 된다.”

-마운드에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경기를 끝냈을 때다. 그보다 내가 마운드 위에 있을 때 누군가 나를 믿고 있다는 그 느낌이 좋다. 예전에 오승환(세인트루이스) 형처럼 말이다. 팀에 믿음을 주는 선수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올 시즌 목표는.

“첫 번째는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이다. 아직 많은 경기가 남아있다. 이제 시작이다. 여름이 되면 분명히 체력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팀이 잘하면 개인성적은 나올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넥센이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우승을 하는 것도 꿈이다. 야구는 모른다. 꼴찌였던 팀이 갑자기 1등을 할 수 있는 것이 야구다. 투수들이 하나 둘씩 복귀하면서 팀이 강해지고 있다. 부상 없이 던지면서 우승을 맛보고 싶다.”

-김상수에게 넥센이란.

“고마운 팀이다. 나를 많이 기다려줬다. 삼성에서 넥센으로 트레이드되고 나서 3~4년간 허송세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무 입단 후에도 많이 챙겨주셨고, 전역하고 난 뒤에는 많이 기대해주셨다. 감독, 코치님들께 정말 감사드린다. 동료들과 팬들께도 고마운 마음이 크다. 물론 삼성이 내 첫 번째 팀이지만, 지금 입고 있는 넥센 유니폼이 가장 좋다.”

● 넥센 김상수

▲생년월일=1988년 1월2일
▲출신교=신자초(자이언츠리틀)~자양중~신일고
▲키·몸무게=180㎝·88㎏
▲프로 입단=2006년 삼성(2차 2라운드 전체 15순위)
▲프로경력=삼성(2006~2009년)~넥센(2010~2013년)~상무(2014~2015년)~넥센(2015년~)
▲입단 계약금=1억3000만원
▲2017시즌 연봉=1억2000만원
▲2017시즌 성적=32경기 2패9세이브5홀드, 방어율 2.70(33.1이닝 10자책점)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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