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육상]괴력의 스퍼트 세메냐… 그를 제친 사비노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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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메냐 중반이후 가속도, 5위서 4명 제치고 선두로
결승선 25m 남겨놓고 뒤쫓던 사비노바에 잡혀 800m 2연패 좌절

남자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으며 성별 논란에 휩싸였던 캐스터 세메냐(20·남아프리카공화국)가 세계육상선수권 2연패에 실패했다. 세메냐는 4일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800m 결선에서 1분56초35로 올 시즌 개인 최고 기록을 작성했지만 2위에 그쳤다.

세메냐를 따돌리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주자는 마리야 사비노바(26·러시아)였다. 사비노바는 결승선을 25m가량 앞두고 세메냐를 앞지르는 뒷심을 발휘해 1분55초87의 올 시즌 최고 기록으로 우승했다. 지난해 세계실내선수권과 유럽선수권에서 연이어 정상에 오른 사비노바는 미국의 육상 전문 잡지 ‘트랙 앤드 필드’가 우승 후보로 거론하며 세메냐의 강력한 라이벌로 꼽았던 강자다. 3위는 1분57초42를 기록한 자네트 젭코스게이(28·케냐)에게 돌아갔다.

세메냐는 2009년 베를린 대회 우승 이후 불거진 성별 논란으로 겪었던 마음고생을 대회 2연패로 날려 보내는 듯했다. 중반까지 5위에 처져 있던 그는 속도를 높이면서 앞서 가던 주자들을 차례로 앞질렀고 600m를 지날 무렵 선두로 나섰다. 세메냐는 그대로 경기를 마무리하는 듯했지만 사비노바의 막판 스퍼트에 밀려 챔피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세메냐는 2년 전 베를린 대회 우승 후 당시 18세의 나이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어야 했다. 600m 지점부터 독주를 펼친 끝에 직전 대회 우승자 젭코스게이에게 2초 이상 앞서며 우승하자 ‘남자가 아니냐’는 의심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남자 같아 보이는 근육질 몸매와 낮게 깔리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진상 조사에 나섰고 ‘남자가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올 때까지 1년가량 경기에 나설 수 없었다. 트랙에 복귀했지만 기량은 예전만 못했다.

세메냐는 지난달 21일 대구에 도착했을 때도 자신에게 쏠린 관심이 부담스러운지 언론의 인터뷰를 거부한 채 굳은 표정으로 사진촬영에만 응했다. 대회가 시작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예선이 끝난 뒤에도, 준결선을 1위로 마친 뒤에도 입을 다문 채 공동취재구역을 지나쳤다.

하지만 경기를 끝낸 4일 세메냐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사비노바를 껴안으며 우승을 축하했다. 그는 지난 2년 동안의 마음고생을 다 털어버리려는 듯 결선 레이스를 함께 펼친 나머지 선수들에게도 하나하나 손을 내밀며 웃어 보였다.

대구=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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