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앤 포커스] ‘제구력 뛰어난 투수’ 웃음꽃 신인-대타 “에누리없다” 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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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5일 07시 00분


스트라이크존이 갑작스레 확대되면서 선수는 물론 심판들도 적응에 애를 먹고 있다. 좌우 폭만 넓어진 게 아니라 높낮이에도 흔들리는 판정이 종종 나오면서 새 스트라이크존 적응이 올 시즌 초반 화두로 등장했다. 스포츠동아DB
스트라이크존이 갑작스레 확대되면서 선수는 물론 심판들도 적응에 애를 먹고 있다. 좌우 폭만 넓어진 게 아니라 높낮이에도 흔들리는 판정이 종종 나오면서 새 스트라이크존 적응이 올 시즌 초반 화두로 등장했다. 스포츠동아DB
넓어진 스트라이크존 5가지 파급효과

야구는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냐 볼이냐, 볼카운트에 따라 공수 전반에 걸쳐 포메이션이 변화한다. 그래서 스트라이크존이 야구에 미치는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만하다.

결정적 승부처에서 볼 판정 하나에 승패 흐름 자체가 뒤바뀔 수 있는 것이 야구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전력평준화가 잘돼있고, 순식간에 방향성이 요동치는 한국 프로야구의 힘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제 팀 방어율을 보지 말고, 경기당 팀 4사구를 봐야 된다.” 스포츠동아 이효봉 해설위원의 진단은 그래서 설득력이 강하다. 이 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경기당 4사구를 적게 내주는 팀이 많이 내준 팀보다 이길 확률이 80%%에 가깝다고 한다. 한마디로 “스트라이크를 넣는 팀이 이긴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스트라이크존 확대는 곧 야구 전체의 변화를 함축한다.
○1 투수 : A급-B급간 격차 심화 양상
스트라이크존 확대가 ‘투수에 유리하다’는 해석은 너무나 당연하다. KIA 서재응, 넥센 정민태 투수코치, 한화 정민철 투수코치 등이 한결같이 인정한다. 타고투저가 심화되는 현실에서 스트라이크존이라도 넓혀주지 않으면 투수들이 견뎌낼 수 없다는 관점이다. 단 그 ‘유리함의 폭’이 B급 투수들에까지 수혜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지점에서 야구의 복잡성이 담겨있다.

“캠프 때 스트라이크존이 확대된다고 알려줬는데 이런 걸 바꾸려면 좀 더 빨리 결정해 알려줘야 했다. 마무리훈련 때부터라도 적응하면 시행착오를 좀 더 줄일 수 있지 않느냐.” 삼성 포수 진갑용의 말이다. 줄곧 기존 스트라이크존에 맞춰 컨트롤 훈련을 해온 투수들한테 돌연 넓게 잡아준다고 해서 확대된 존을 활용하라는 얘기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넓어진 틈을 파고들 수 있는 투수는 제구력이 탁월한 A급 투수들일 수밖에 없다. 지난 주말 한화-롯데의 난타전은 스트라이크존 확대가 모든 투수들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가설을 입증해줬다. 반면 류현진, 배영수, 카도쿠라 등 A급 투수들은 용에 날개가 달린 격으로 위력이 한층 배가되고 있다. 나광남 심판원은 SK 카도쿠라를 최대 수혜자로 꼽았다.

○2 심판 : 재량 늘어나 오심확률 줄어
야구계에서는 “스트라이크존 확대의 최대 수혜자는 투수가 아니라 심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어차피 제구력이 어설픈 투수는 넓게 봐줘도 실투나 몸에 맞는 볼을 남발해 이점을 취하지 못하지만 심판은 판정의 재량이 늘어난 만큼 오심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A급 심판과 B급 심판의 격차가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 맥락에서 “덕아웃에서 보면 좌우폭은 못 본다. 상하만 볼 수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노트북을 통해 공이 반개 빠졌는지 아닌지까지 확인하고 투수들의 컨디션을 체크해 교체도 했지만 이제는 포수에게 투수 컨디션을 물어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삼성 선동열 감독의 진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덕아웃 규제조치 강화로 심판의 권한은 한층 강화됐다. “스트라이크존의 확대가 문제가 아니라 일관성이 문제”라는 현장의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그래서다. 심판마다 다른 존이 설정될 수 있고, 특히 일부 젊은 심판들을 두고 ‘랜덤 판정’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풍기 심판원은 “심판도 사람인데 ‘적응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첫 주보다 둘째 주가 더 좋아지고, 앞으로 더 자리가 잡혀갈 것”이라 했다.
○3 감독 : ‘피해의식’ 속앓이 한목소리
결국 확대 스트라이크존은 필연적으로 현장(특히 감독)과 심판(혹은 KBO)의 마찰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소재다. 드러내놓고 얘기 못하지만 현장 감독들 사이에서는 저마다 ‘피해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공론화된 자리에선 말을 삼간다. 두산 김경문, 한화 한대화, KIA 조범현 감독 역시 “조금 더 지켜보자”, “일관성 있게 봐주면 똑같다” 등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4 타자 : 선구안 붕괴 가장 큰 폐혜
직관적으로 봐도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져서 타자에게 이로울 일은 없다. 가장 큰 ‘폐해’라면 선구안의 붕괴다. 수년간 축적한 자기만의 스트라이크존이 완성돼 있을 텐데 이걸 갑자기 바꾸라면 엄청난 스트레스다. 예전엔 볼이었는데 어느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잡아주고 어느 심판은 그대로 볼로 판정하면 타자는 헷갈린다. 더 큰 문제는 선구안이 흔들리면 밸런스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KIA 최희섭이 시즌 초반 예상 외로 안 맞는 것도 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선구안에 있어서 달인급인 삼성 양준혁은 “바깥쪽은 몰라도 몸쪽까지 넓게 보면 타자는 못 친다. 그동안 스트라이크존에 적응된 상태인데 볼이라 생각한 공을 스트라이크로 주면 쳐야할지 말아야할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심판도 사람인데 넓게 보라고 하면 갑자기 넓게 볼 수 있나. 심판마다 자신만의 존이 확립돼 있으면 그래도 적응하기 쉬운데 똑같은 코스의 공을 두고 판정이 왔다 갔다 하면 타자는 쳐야할지, 말아야할지 헷갈리면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결국 타자가 살 길은 공격적 배팅이다. KIA 황병일 수석코치, KIA 마쓰바라 인스트럭터까지 국적을 초월해 같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높낮이가 아닌 양쪽으로 커져 적응에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타자 입장에서 풀카운트가 되면 승부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타자들에게 최대한 빨리 승부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마쓰바라의 말이다.

대표적인 배드볼 히터인 LG 이병규는 “한국은 갑자기 스트라이크존을 확대하면서 아직 심판마다 자신의 확고한 존이 정립돼 있지 않은 것 같다. 어차피 심판도, 선수도 적응해야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6월을 넘어가면서 적응하지 않겠느냐.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잘 던지는 투수나, 잘 치는 타자는 스트라이크존이 변해도 잘하게 마련”이라고 원칙론을 말했다.
○5 신인-대타 : 프리미엄 없다
스트라이크존 확대의 직격탄은 타자겠지만 그래도 심판들은 보이지 않게 ‘특급타자 프리미엄’을 설정해주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결국 제도 개편의 최대 피해자는 유탄을 맞은 신인급 타자, 대타 요원 등 B급 타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타자들이 타석에 서면 에누리 없이 확대된 스트라이크존의 부담을 안고 투수와 승부해야 되기 때문이다. “신인이나 중반 이후 출전하는 대타 선수들의 삼진 비율이 예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야구계는 설명한다. 무릇 개혁은 최초의 선한 의도와 달리 ‘빈익빈 부익부’를 오히려 강화시키곤 한다. 스트라이크존 확대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 전반적 총평이다.

정리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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