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고 헤매던 호랑이가 마침내 고향에 돌아온 듯했다. 9일 미국 조지아 주 오거스타내셔널GC(파72)에서 열린 마스터스 1라운드. 타이거 우즈(35·미국)가 1번홀(파4) 티 박스에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수천 명의 갤러리는 함성과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환한 미소로 환호에 답한 우즈는 드라이버로 친 첫 티샷을 페이드를 걸어 페어웨이에 떨어뜨렸다. 지난해 11월 섹스스캔들이 터진 뒤 144일의 공백을 깬 순간이었다.》 최경주(40), 맷 쿠차(미국)와 힘차게 라운드를 시작한 그는 18번홀(파4)을 파로 마무리하고 다시 밝은 표정을 지었다. 마스터스 1라운드에서 처음으로 70타 벽을 깨며 4언더파 68타. 파5홀에선 세 차례 투온을 해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하루에 이글 두 개를 낚았다. 단독선두 프레드 커플스(미국)에게 2타 뒤진 공동 7위에 오른 우즈는 다섯 번째 그린재킷을 향한 희망을 밝혔다. 필드를 떠나 있던 5개월의 시간은 그저 숫자로만 보였다.
우즈는 “언더파만 기대했는데 결과가 좋아 기쁘다. 팬들의 성원에 고맙다. 하루 종일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해야 했다”며 감격스러워 했다.
혹시 모를 불상사와 갤러리의 야유는 이날 찾아볼 수 없었다. 우즈를 조롱하는 문구를 내건 경비행기 두 대가 출현하기는 했어도 주목받지 못했다. 황제의 귀환을 반기는 분위기 속에 우즈는 폭발적인 장타로 건재를 과시했다. 왼쪽 도그레그홀인 9번홀(파4)에서는 묘기에 가까운 샷으로 탄성을 자아냈다. 티샷이 왼쪽에 떨어져 나무에 가린 그린을 직접 공략할 수 없는 상황에서 페이스를 닫아 의도적인 훅 구질로 공을 15야드 가까이 왼쪽으로 휘어지게 한 뒤 홀 3.6m 거리에 떨어뜨려 버디 퍼트를 성공시켰다. 15번홀(파5)에서는 191야드를 남기고 가볍게 투온에 성공한 뒤 3.4m 이글 퍼트를 집어넣었다. 하지만 이날 퍼트 수가 31개까지 치솟으며 다섯 차례의 버디 퍼트가 살짝 컵을 빗나간 게 아쉬웠다.
한결 부드러워진 우즈의 태도와 갤러리의 우호적인 반응 속에 8년 연속 마스터스에 출전한 최경주도 자신의 최고인 5언더파 67타를 쳤다. 쿠차는 2언더파 70타. 우즈는 그동안 잦은 라운드로 친해진 최경주와 ‘이놈, 저놈’ 같은 한국말 농담을 주고받으며 친숙한 모습을 보였다. 경기 후 우즈와 손을 꽉 마주잡은 최경주는 “평소처럼 대하려고 노력했다. 이것이 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말했다. ▼최경주 - 양용은 5언더파 공동2위 ‘어깨동무’ 50代 커플스 6언더 선두… “노장은 살아있다”▼
마스터스는 역시 명인 열전이었다. 동서고금의 스타들이 첫날부터 리더보드 상단을 휩쓸었다. 우승자에게 돌아가는 한 벌뿐인 그린재킷을 향한 경쟁은 더욱 뜨거워지게 됐다. 유리알 그린이 비가 내려 날카로운 발톱을 감춘 데다 핀과 티 박스 위치도 쉽게 조정돼 96명의 선수 중 31명이 언더파를 쳤다.
○ 코리안 브러더스 돌풍
태극기를 붙인 모자를 쓴 최경주(40)와 KOTRA 로고가 달린 선캡을 착용한 양용은(38)은 나란히 5언더파 67타를 쳐 1타 차 공동 2위에 올랐다. 최경주는 버디 6개에 보기는 1개로 막았다. 특히 아멘 코너가 끝나는 13번홀(파5)에서 투온에 실패해 공이 그린 앞 언덕 아래에 떨어졌으나 정확한 쇼트 게임으로 세 번째 샷을 2m에 붙여 버디를 낚은 것을 시작으로 16번홀(파3)까지 4연속 버디를 잡는 집중력을 보였다.
최경주는 “아이언 샷은 물론이고 치핑, 퍼팅이 모두 좋았다. 길게 치면 실수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 벙커에 들어가더라도 짧게 친 전략이 잘 맞았다”고 평가했다. 최경주와 같은 조였던 타이거 우즈는 “KJ의 플레이는 대단했다. 너무나 많은 퍼트를 성공시켰다. 그의 실력은 이미 알려져 있지 않은가”라고 칭찬했다.
지난해 PGA챔피언십에 이어 메이저 2연승을 노리는 양용은도 버디 6개와 보기 1개로 역대 최고의 마스터스 스코어를 기록했다. 양용은과 같은 조였던 필 미켈슨(미국)도 5언더파로 동타를 이뤘다. 지난주 셸휴스턴오픈에서 우승한 앤서니 김은 4언더파.
○ 노장 만세
프레드 커플스(51·미국)는 6언더파 66타로 단독 선두에 나서며 1992년 우승 후 18년 만의 정상 복귀를 노리게 됐다. 지난해 브리티시오픈에서 연장 명승부 끝에 준우승을 차지한 톰 왓슨(61·미국)은 보기 없이 5언더파 67타. 장갑을 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커플스는 이날 양말까지 신지 않고 출전해 눈길을 끈 뒤 “오거스타에서 50대 우승은 몽상인지 모르지만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역대 최고령 우승자는 1986년 잭 니클라우스로 당시 46세 2개월 23일이었다.
많은 선수들이 태어나기도 전인 1977년과 1981년 그린재킷을 입은 왓슨은 캐디를 맡은 아들 마이클과 호흡을 맞춘 뒤 “아직도 아빠가 잘 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아들의 소망을 들어주고 싶었다”며 뿌듯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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