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버린 아사다 마오 "분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26일 15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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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석에서 거대한 박수가 터졌다. 아사다 마오(20·일본)가 등장했을 때였다.

그러나 감탄의 환호성은 그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장내 아나운서는 방금 경기를 마친 김연아(20·고려대)의 점수를 알려주고 있었다.

26일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콜리시엄. 아사다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간간이 웃음을 지으며 몸을 풀었지만 라이벌의 점수는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이틀 전 쇼트프로그램에서 김연아에 4.72점 뒤져 2위에 그친 아사다는 역전을 꿈꿨다. 프리스케이팅에서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2007년 세계선수권(일본 도쿄)에서 아사다는 쇼트프로그램에서 김연아에 10.63점 뒤지고도 금메달을 땄다.

주어진 4분 10초가 흘렀다. 연기를 마치고 돌아오던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완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의 표현이었다.

아사다가 김연아와 처음 대결한 것은 2004년 12월 핀란드에서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이었다. 당시 아사다는 김연아에게 35점이나 앞서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미 '피겨 천재'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아사다에게 김연아는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동갑내기 둘은 자연스럽게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아사다는 김연아의 적수이기도 했지만 귀여운 외모로 국내에도 팬들이 많았다. 주니어 시절 아사다의 위상에 눌려있던 김연아는 시니어 무대에서 만개하기 시작했다.

아사다는 2008년 12월 그랑프리 파이널 이후 김연아와 3번 만나 모두 졌지만 예전의 영광을 다시 찾겠다며 투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6년의 시간은 너무 많은 걸 바꿔 놨다.

점수가 발표된 뒤 아사다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은 일본 NHK 방송과 인터뷰를 하면서 터졌다.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닦느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 아사다는 "트리플 악셀을 두 번 모두 성공해 좋았는데 다른 곳에서 실수를 했다. 4분이 정말로 길었던 것 같은데 금세 지나갔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1992년 알베르빌 겨울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에서 이토 미도리가 은메달,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아라카와 시즈카가 금메달을 땄다.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아사다와 안도 미키를 내세워 여자 싱글 2연패를 노렸지만 김연아의 벽은 높기만 했다.

아사다는 '피겨 천재'였다. 그러나 '피겨 여왕'이 되기에는 시대를 잘못 만났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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