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전까진 아무도 그를 몰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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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생 막내 모태범, 스피드 男500m ‘깜짝 金’… 한국 빙속 74년만에 새 역사

1000m - 1500m가 주종목… 5000m 銀 이승훈과 ‘절친’

회견장 나온 외신기자 “인터넷에도 없고… 당신 누구냐”

“저에겐 아무도 관심이 없었어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모태범(21·한국체대)이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한국의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을 따냈다. 모태범은 16일 캐나다 리치먼드 올림픽오벌에서 열린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1, 2차 시기 합계 69초82를 기록해 나가시마 게이이치로(일본·69초98)를 0.16초 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우승은 한국이 처음 참가했던 1948년 생모리츠 대회 이후 62년 만에 나온 스피드스케이팅 첫 금메달. 일장기를 달고 출전한 1936년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대회를 포함하면 74년 만에 나온 금메달이다.

○ 부담 없이 연습 삼아 나간 500m

모태범의 주종목은 월드컵 시즌 랭킹 2위인 1000m이다. 1500m는 12위이고, 500m는 14위에 불과하다. 국제대회에서 몇 차례 500m에 출전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김관규 감독은 “500m는 1000m에 나가기 전 연습 차원에서 출전한 것이다. 금메달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모태범은 1차 시기에서 34초92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핀란드의 미카 포우탈라(34초86)에 이어 2위. 모태범은 “1차 시기 성적이 좋아 나도 어리둥절했다. 자신감이 생겨 2차 시기에 더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얼음판을 고르는 정빙기가 고장 나 1시간 반이나 늦게 2차 시기가 시작된 악조건 속에 모태범은 19조에서 개최국 캐나다의 간판이자 세계기록(34초03) 보유자인 제러미 워더스푼과 같은 조에서 경기를 펼쳤다. “1차 시기에 성적이 좋으면 2차 시기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들다”는 김 감독의 예상을 깨고 모태범은 34초90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합계 69초82를 기록한 뒤 마지막 20조의 경기를 지켜봤다. 챔피언 조의 포우탈라와 가토 조지(일본)는 각각 합계 70초04와 70초01에 머물러 모태범의 메달 색깔은 금메달로 바뀌었다. 누리꾼들은 ‘모터범’(모터를 단 것처럼 빠르다는 뜻)이라는 닉네임을 모태범에게 붙여주며 각종 사이트에 격려의 댓글을 올렸다.

○ 기자회견서 신상정보 묻기도

이날 모태범의 금메달은 말 그대로 ‘깜짝’이며 ‘이변’이었다. 모태범의 금메달이 확정되자 해외 기자들은 물론이고 국내 기자들도 수군거렸다. 모태범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금메달 후보로 꼽힌 한국 선수는 500m 랭킹 1, 2위인 이강석(의정부시청)과 이규혁(서울시청)이었다.

지난달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빙상종목 미디어데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두 선수에게는 질문이 쏟아졌지만 모태범은 질문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 모태범은 당시를 회상하며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부담 없이 뛰었다”고 말했다.

몸풀기로 나간 500m서 쾌거… “생애 최고의 생일선물”

모태범에 대한 정보가 없자 외국 기자들은 “인터넷에서 아무리 정보를 찾아도 대회 참가 이력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에 대해 말해 달라” “경력과 성격 등 모든 것을 밝혀 달라”는 등 일반적인 기자회견에서는 나오지 않는 질문이 줄을 이었다.

경기가 열린 현지 시간 15일은 모태범의 21번째 생일이었다. 밴쿠버 겨울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운영하는 정보시스템 ‘INFO 2010’은 모태범을 역대 4번째로 생일에 금메달을 딴 선수로 소개했다.

모태범은 “내 생애 최고의 생일 선물을 받은 것 같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스케이트화를 처음 신은 그는 이틀 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에서 은메달을 딴 이승훈과는 절친한 친구 사이로 나란히 한국체대 3학년에 재학하고 있다. 모태범은 고등학교 때 국가대표로 뽑혀 줄곧 태극마크를 달았다. 모태범은 “지금까지 한 번도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저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금메달을 땄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모태범은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주위에서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서러워서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고 밝혔다. 금메달을 땄건만 담담하게 말하던 그는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자 “생일도 맞았는데 부모님께 빨리 전화해서 ‘저 해냈어요’라고 말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밴쿠버=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 다시보기 = 모태범, 한국 빙속 사상 첫 번째 금메달 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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