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종이학-팬레터… 요즘은 홈피댓글-도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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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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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따라 변하는 팬들의 스포츠스타 사랑 표현법

팬활동도 대규모 조직화
팬미팅 통해 스타 만나고
기금모아 훈련비 지원도
《#1. “하루에 팬레터를 600통 넘게 받을 때도 있었죠. 우편집배원이 힘들다고 하소연했을 정도니까요.” 1955년부터 10년 넘게 남자 농구 국가대표 주전 가드로 활약한 김영기 전 한국농구연맹(KBL) 총재(73)의 말이다. 그는 “창호지에 붓글씨로 팬레터를 써서 보낸 팬들도 있었다”며 “남산 팔각정을 축소해 똑같이 만든 모형과 속리산 송이버섯 등 각지에서 보낸 특산물은 특히 기억에 남는 선물”이라며 웃었다.》
김연아는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에 선행으로 보답하는 ‘기부 퀸’이기도 하다. 김연아가 5월 인형 및 후원금 1억 원을 유니세프에 전달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화보]김연아 ‘제가 만든 인형 어때요?’
김연아는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에 선행으로 보답하는 ‘기부 퀸’이기도 하다. 김연아가 5월 인형 및 후원금 1억 원을 유니세프에 전달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 ‘꽃미남’에다 실력까지 겸비한 KCC 신세대 가드 강병현(24)은 현재 프로농구 최고의 ‘블루칩’이다. 팬들은 그의 생일에 구단 연습장까지 찾아와 생일파티를 열어줬다. 온라인은 그와 팬들이 소통하는 중요한 통로. 싸이월드에 있는 그의 미니홈피는 엄청난 방문객으로 불이 날 지경이다. 강병현은 “팬들의 응원은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라고 말했다.

○ 종이학에서 도토리로

스포츠 스타들은 연예인 못지않게 팬들을 몰고 다닌다. 그런데 흐르는 세월보다 더 빠르게 변한 게 있다. 바로 스포츠 스타들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팬레터는 10년 전만 해도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하는 가장 흔한 방법이었다. 1980년대 국가대표 공격수로 이름을 날린 프로축구 강원 FC의 최순호 감독은 “당시엔 하루에 팬레터 100개는 받아야 명함을 내밀 수 있었다”며 웃었다. 초콜릿, 인형, 껌 등 비싸지는 않아도 정성이 듬뿍 담긴 선물도 팬들이 자주 보낸 응원 도구. 특히 고이 접은 종이학은 애정 측정 척도가 됐을 정도로 아날로그 시대를 상징하는 선물이었다.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팬들의 표현 방식 역시 크게 변했다. 20여 년 전 ‘아시아의 인어’로 불리던 수영 선수 최윤희에게 수백 통의 팬레터가 전달됐다면 ‘마린보이’ 박태환에겐 수백 개의 온라인 댓글과 수천 명의 홈페이지 방문자가 이를 대체한다. ‘리듬체조 요정’ 신수지는 “팬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선물은 다름 아닌 미니홈피 ‘도토리(온라인 사이버머니)’”라며 웃었다. 최근엔 손수제작물(UCC) 팬레터나 응원 뮤직비디오 등까지 등장해 스포츠 스타들을 감동시킨다.

○ 일방향에서 쌍방향으로

팬들의 활동이 과거보다 큰 규모로 조직화된 것도 특징이다. 팬들은 직접 대규모 팬 미팅을 계획해 스타와 만나고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서로 정보를 교류한다. 스포츠 스타를 위한 대규모 기부금도 조성된다. 전지훈련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피겨 유망주 박소연은 올해 팬 카페 회원들의 도움으로 1800만 원에 이르는 훈련비를 마련했다. ‘피겨 여왕’ 김연아의 온라인 팬클럽은 대회 때마다 500만 원이 넘는 기금을 모아 응원용 배너와 꽃, 인형 등을 직접 제작한다.

최근엔 스타와 팬들 사이의 쌍방향 소통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팬들과 스타는 홈페이지 등에서 실시간으로 만나 교감을 나눈다. 최근 마이크로 블로그라 불리는 트위터는 김연아가 이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자선행사 등을 통해 팬들과의 교류 영역을 넓히는 스타도 많아졌다. 스포츠평론가 정윤수 씨는 “접촉 채널이 폭넓어지면서 팬과 스타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팬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면서 “하지만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도 정감 있는 아날로그식 애정 표현 역시 여전히 큰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스타들이 꼽는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
꿀항아리-사진첩… “정성에 감동”


“정말 감동이었죠. 그 선물 하나로 큰 위안이 됐습니다.”

프로축구 경남 FC의 ‘거미손’ 김병지(39)는 1일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500경기 출장이란 금자탑을 세웠다. 하지만 이날 경남은 전북 현대에 패하며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아쉬움에 고개를 숙인 김병지를 위로해준 건 팬들이 마련한 작은 선물 하나. 축구장 모양 케이크로 그 위에는 골대와 자신의 캐리커처 인형, 그리고 ‘500’이란 숫자가 세워져 있었다. 김병지는 “팬이야말로 20년 넘게 축구를 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란 걸 새삼 느꼈다”며 미소 지었다.

스포츠 스타들은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산다. 정성이 담긴 선물은 마음을 전하는 중요한 도구. 스포츠 스타들이 꼽는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무엇일까.

‘피겨 여왕’ 김연아(19·고려대)는 인형 마니아다. 연기가 끝나면 팬들로부터 수백 개의 인형이 쏟아지지만 인형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한다. 김연아는 최근 1000개가 넘는 인형을 불우한 아동 등에게 전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마린 보이’ 박태환(20·단국대)은 사진첩을 소중한 선물로 꼽는다. 그는 “내 사진과 관련 기사들을 정성스럽게 편집해 만든 예쁜 사진첩을 받고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정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리듬체조 요정’ 신수지(18·세종대)는 팬이 직접 코팅한 네잎클로버가 애장품 1호. 단것을 좋아하는 ‘얼짱 배구스타’ 김요한(23·LIG손해보험)은 “팬이 직접 만든 초콜릿 과자를 먹고 힘이 났다”며 즐거워했다. 최근 인기가 부쩍 늘어난 그는 팬들에게 받은 선물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게 지친 몸을 달래는 낙이다.

여자 장대높이뛰기 임은지(20·부산 연제구청)는 20대 여성 팬이 선물한 항아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예쁜 항아리에 꿀과 레몬 등을 담은 선물은 ‘미녀새’의 피로 해소에 큰 도움이 됐다. 역도나 육상 선수들은 특히 팬들에게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되는 선물을 많이 받는다. 올 시즌 프로야구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에 뽑힌 ‘해결사’ KIA 김상현은 “팬들의 관심이 가장 큰 선물이다”고 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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