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바라지 못해 미안하고… 대견하고…” 노부모 눈물

  • 입력 2009년 8월 18일 02시 55분


메이저대회 우승 뒤엔 새벽부터 기도를 드린 부모의 정성이 있었다. 양용은의 아버지 양한준 씨(오른쪽)와 어머니 고희순 씨가 친지와 주민들의 쏟아지는 축하 전화를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메이저대회 우승 뒤엔 새벽부터 기도를 드린 부모의 정성이 있었다. 양용은의 아버지 양한준 씨(오른쪽)와 어머니 고희순 씨가 친지와 주민들의 쏟아지는 축하 전화를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양용은 고향마을-모교
하루종일 축제분위기

17일 오전 3시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 양용은 선수의 아버지 양한준 씨(64)는 잠을 설쳤다. 아내 고희순 씨(66) 몰래 잠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짙은 어둠이 깔린 밖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만감이 교차했다. 3남 5녀를 돌보느라 용은이에게 따로 관심을 쏟지 못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오전 4시 아내를 부르고 마루에서 TV를 켰다. 하얀 옷을 입은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백의(白衣)민족’을 대표한다는 생각도 했다. 손에 땀을 쥐는 승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골프황제’에 주눅 들지 않는 아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운명의 14번홀. ‘칩인 이글’을 기록하는 순간 양 씨는 자신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마지막 18번홀을 버디로 마감하는 순간 양 씨는 아내와 얼싸안았다.

양 씨는 아들이 대회에 참가할 때는 수염을 깎지 않았다. 식구들에게 “깨뜨리는 물건은 아예 만지지도 말라”고 당부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에게 보낼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이었다. 우승 소식이 알려지자 전화통에 불이 났다. 아버지 양 씨는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에 연방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날 오전부터 화환도 속속 도착했다. 조용하던 마을은 외부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동네 주민 40여 명이 한걸음에 달려와 축하를 했다. 주민 김동섭 씨(48)는 “감동적인 드라마를 연출한 모습이 너무나 대견스럽다”며 “조만간 잔치를 열어 자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 고 씨는 “골프를 하는 줄도 모르게 골프를 했고 농사만 짓다 보니 도움도 못 줬다. 옆에 있으면 안아주고 싶지만 멀리 있어서 그러지도 못해 안타깝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양 선수의 모교인 제주고와 고향인 서귀포시 대정읍 지역은 물론 제주도 전체가 축하 분위기에 휩싸였다. 서종필 제주고 교장은 “역대 최고의 학교 경사다”라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펼친 양 프로의 삶을 후배들이 귀감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는 이날 아침 도청 청사 건물의 가로 전광판에 ‘바람의 아들 양용은, 아시아 최초 메이저 골프대회 제패를 축하합니다’라는 글귀를 띄웠고, 제주도내 26개 골프장은 일제히 축하 현수막을 내걸었다.

한편 양 선수의 경기를 아침부터 TV 생중계로 지켜본 시민들은 세계 골프의 역사를 새로 쓴 양 선수의 쾌거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대학생 박탄우 씨(26)는 “최근 우울한 뉴스만 많았는데 한국인으로서 정말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골프 강사인 박시완 씨(29·여)는 “14번홀의 이글 퍼팅이 들어갈 때 박세리 선수가 우승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골퍼들이 오늘은 하루 종일 양용은 이야기만 했다”고 말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