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야구의 꽃 ‘도루’ 그 비밀을 밝혀주마

  • 입력 2009년 4월 27일 10시 38분


지난 달 열렸던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한마디로 ‘감동’이었다. 18일 동안 대한민국 국민들은 야구 재미에 푹 빠졌고, 힘든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대회가 끝난 지 한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여운이 남아있다. 물론 당시 결승에서 일본에 져 준우승한 아쉬움도 남아 있지만, 6승 3패를 하면서 일궈낸 성과물은 한국대표팀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의 전매특허인 ‘발야구’였다. 다른 팀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기동력은 한국야구의 팀 컬러를 그대로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번 주 ‘스포츠 & 사이언스’에서는 발야구, 즉 도루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을 해본다. 과연 몇 초 만에 뛰어야 살 수 있을까.

WBC 멕시코전에서는 7회 무사 1,2루에서 고영민과 이진영의 합작으로 이뤄진 더블 스틸은 방심한 멕시코 배터리의 허를 찌르며 이번 대회 가장 창조적이고도 과감한 주루플레이의 성공사례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한국 주자 특유의 적극성과 창의성, 벤치의 과감한 용병술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팀플레이는 고비마다 한국 승리에 보이지 않는 수훈갑이 됐다.

도루는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성공하면 베이스를 하나 더 벌며 팀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지만, 실패하면 아웃카운트 하나의 소모와 함께 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실수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관건인 야구에서 도루 실패의 여진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라운드에서 훔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숨 막히는 긴장감은 야구의 재미를 배가시키기에 충분하다. 갑자기 뛰기 시작하는 1루 주자, 순간을 훔치는 절묘한 플레이가 바로 도루다. 빠른 주자가 나가면 투수의 집중력이 흔들린다. 주자에게 있어 90cm의 리드는 약 0.1초의 가치가 있다.

주자가 투수 타이밍을 뺏고 뛸 수 있는 시간은 약 3초, 투수는 그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하나, 둘에 투구를 하거나 혹은 다섯까지 센 후에 투구를 해야 한다. 계속 바꿔가면서 해줘야지 타자들이 투수의 자세(투구폼)를 못 읽고, 출발을 빠르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루는 3.5초의 승부

발이 빠르다고 도루를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루의 성패는 투수의 투구동작을 얼마 만큼 빨리, 정확하게 간파하느냐에 달려있다.

3.3초에서 3.5초 사이에 승부가 갈리는 도루, 3.2초 정도 되면 확실하게 아웃시킬 수 있고 주자 쪽에서는 확실하게 세이프가 될 수가 있다. 투수가 던진 공이 포수에게 도착하는 시간이 약 1.2초다. 포수가 2루로 송구하기 위한 시간은 1초, 포수가 던진 공이 2루수에게 도착하는 시간이 약 1초, 2루수가 공을 잡아 주자를 태그하는데 걸린 시간은 0.3초, 모두 합치면 3.5초다. 주자가 1루에서 2루로 뛰는데 4초정도 걸리지만 베이스에서 떨어져서 출발하므로 실제 걸리는 시간은 약 3.5초 정도, 따라서 도루는 3.5초의 승부라고 할 수 있다.

3.2초로 뛴다는 것은 보통 멈추기 위해서는 제어 거리가 필요하다. 그 거리 동안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서 멈추는 기술이 바로 슬라이딩이다. 슬라이딩은 달리는 주자들에게는 필수적인 요소다. 달리기는 베이스를 지나치면 안 되기 때문에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이 미묘한 차이의 시간이 세이프와 아웃을 결정한다.

141.7-148.8g에 주먹만한 공과 106.8cm(42인치)이하의 단단한 배트, 그 예민한 공과 배트사이의 예측불허의 승부, 정해지지 않은 경기시간, 그래서 야구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 다양하고 승패를 알 수 없는 극적인 장면들이 연출되곤 한다. 도루와 같은 그 짜릿한 긴장 때문에 사람들이 야구에 열광하는 지도 모른다. 안 좋았다가 회복되고, 좋았다가 나빠지고,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인생 같은 야구, 그 안에 숨어있는 3.5초의 과학을 한번 느껴보시길 권한다.

송주호 KISS 선임연구원

정리 |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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