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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1월 14일 11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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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야구는 일본시리즈 우승팀과의 경기에서도 전혀 특별한 게 없었다.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에서 늘 하던 대로의 플레이를 펼쳤고, “SK와는 질 것 같지가 않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고 보면 늘 패배해 있었다.”는 상대팀의 말은 왠지 세이부 라이온즈의 와타나베 감독 또한 되뇌고 있을 것 같다.
경기가 끝난 뒤 SK 선수들의 세레모니는 그다지 특별해보이지 않았다. 그냥 이길 경기를 이겼다는 기분? 1점 차의 긴박한 승부였지만 연이어 9회말 만루의 위기를 넘겼던 두산과의 한국시리즈를 회상한다면 별로 힘겹게 이기지도 않은 느낌이었다.
7차전까지 이어진 일본시리즈의 기나긴 승부는 세이부의 승리로 돌아가며 내심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올라와주길 기대하던 한국과 일본 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지만,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SK의 전력 분석요원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선물이었다.
벼랑 끝까지 몰려서 있는 전력, 없는 전력을 속속들이 꺼내야만 했던 일본시리즈를 통해 그들은 세이부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었고, 이는 경기의 승리와도 연결됐다.
평소에도 ‘좌완킬러’로 이름을 날렸던 이재원의 힘은 도쿄돔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좌완투수 호아시가 나올 거란 예상은 김재현 대신 이재원을 3번 지명타자로 출전시키게 했고, 이재원은 4회말 좌측 폴 중단을 맞는 커다란 역전 투런 홈런으로 경기의 결승점을 뽑았다.
경기 전까지 예선전이냐 결승이냐를 놓고 설왕설래했던 김광현의 등판 시기는 결국 예선 첫 경기로 잡혔다.
당초 투구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김성근 감독의 우려는 들어맞았고, 결국 김광현은 5이닝을 채우지 못했다. 그는 들쑥날쑥한 릴리스 포인트 때문에 핀 포인트를 벗어나는 공을 던졌고, 다만 일본 타자들이 아직 김광현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한 덕분에 공의 위력을 이기지 못하고 빗맞은 타구와 헛스윙으로 도와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마 국내 경기였다면 3회를 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김성근 감독은 꼭 이겨야 하는 결승전 보다는 승패의 부담이 덜한 예선전에 그를 출장시킨 듯하다.
그 대신 김광현에 이어 등판한 투수들의 카드가 좋았다.
윤길현은 4-1에서 4-3까지 따라와 자칫 뒤집힐 뻔했던 위기를 막아냈고, 정우람에 이어 이승호가 7회부터 3이닝을 무안타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조웅천-정대현의 필승 잠수함조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은 가운데 한국시리즈 마운드의 수훈선수 이승호를 내세운 김성근 감독은 쉴 세 없이 뒤바뀌는 마운드로 상대 타선을 혼란시키는 작전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대신 8회 박경완을 ‘세이브 포수’로 기용하며 패턴을 바꾸기 시작했는데 이게 적중했다.
8회 나카무라-고토-사토로 이어지는 오른손 4,5,6번 중심 타선에도 불구하고 이승호는 직구와 슬로우커브로 타자들을 현혹하며 2개의 삼진과 내야 땅볼로 자칫 경기 막판 가장 큰 위기가 될 뻔한 8회를 무사히 넘겼다.
이재원은 투런 홈런을 때린 다음 타석에서 대타 김재현과 교체됐다. 홈런 친 후 교체라는 게 SK를 처음 상대하는 세이부에게는 황당한 작전이었겠지만, ‘좌투수 선발에 이재원 출장, 우투수 교체 후 김재현 등장’의 카드는 그들에게 놀랍지 않은 전술이었다. 결국 김재현은 6회 선두타자 안타를 치며 무사 2루의 기회를 잡기도 했다.
김성근 감독의 전술은 이렇듯 한국에서 하던 것과 똑같이 하면서 똑같이 이기는 마치 아시안시리즈를 위해 지난 1년 간 준비된 듯한 경기를 펼쳐나갔다. 굳이 옥의 티가 있었다면 박재상의 좌익수 출전?
1회초 먼저 1점을 내주고 박재홍의 솔로 홈런으로 곧바로 동점을 만든 SK. 화면상으로 보이는 그림에는 분명 파울라인 밖으로 빠져나가는 공이었고, 경기는 1점 차. 일본에서는 물론 억울하게 패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래서 SK가 1점을 덜 벌었다면 분명 그들은 1점을 덜 주는 야구를 했을 것이다.
한 박자, 아니 두 박자 빠른 투수 교체를 선택하던 김성근 감독도 이 날만큼은 어쩐 일인지 김광현의 교체를 미뤘다. 이미 선두 긴지로의 타구가 김강민의 호수비 덕분에 단타로 막아지며 시작한 5회에서 공은 계속 바깥으로 빠지고, 와타나베 감독까지 기대하지 않았던 연속안타가 터질 정도로 좋지 않았지만 끝내 그를 그냥 두려 했던 이유는 승리투수에 아웃카운트 1개만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승리투수, 완투, 완봉을 주기에 인색했던 김 감독도 일본과의 경기이기에 특별하려 노력했던, 그러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5회초였다.
SK가 3점만을 갖고 있었다면 김광현은 결코 3점을 줄 때까지 마운드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엠엘비파크 유재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