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성부른 떡잎’ 첫 출전 올림픽서 은빛 묘기

  • 입력 2008년 8월 20일 02시 59분


당당한 V남자 체조 평행봉에서 은메달을 따낸 유원철이 시상대에서 관중석을 향해 승리의 V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당당한 V
남자 체조 평행봉에서 은메달을 따낸 유원철이 시상대에서 관중석을 향해 승리의 V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 평행봉 은메달 유원철은 누구

단체전 부진에 “이게 웬일… 미치겠다” 채찍질

0.2점차로 2위… “다음엔 꼭 금메달 따야지요”

<<“이런 거 얘기해도 돼요? 술 한잔하고 싶은데요.”

유원철(24·포스코건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생애 첫 올림픽 출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그는 한숨을 먼저 쉬었다.

“그냥 아쉬워요. 개인적으로 작은 실수가 많아서 만족할 만한 경기 내용은 아니었어요.”>>

한국 남자 기계체조에 새 스타가 탄생했다.

유원철은 19일 베이징 국가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08 베이징 올림픽 평행봉 결승에서 16.250점을 얻어 16.450점을 받은 리샤오펑(27·중국)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마산중학교 2학년 때부터 ‘그저 좋고 자신감이 있어서’ 평행봉에 집중했던 유원철은 10년 뒤 올림픽에서 값진 메달을 땄다.

양태영 김대은에게 가렸지만 유원철은 일찌감치 한번 ‘일’을 낼 선수였다. 2006년 아시아선수권에서 평행봉 3위에 오르며 이름을 알리더니 두 달 뒤 세계선수권에서 당당히 2위에 이름을 올린 실력파. 그해 11월 현재 소속팀과 1억2000만 원에 입단 계약을 하며 국내 체조 사상 첫 연봉 1억 원 돌파의 주인공도 됐다.

국가대표에 선발된 뒤 유원철의 각오는 남달랐다. 유원철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원한다…죽도록…’ ‘간절히 원하고 원한다’고 글을 쓰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하지만 남자 단체전에서 5위에 머물러 누구보다 큰 상심을 했다. 그는 “5위가 웬 말이냐. 미치겠다”고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다.

유원철은 경기 후 “마음고생을 참 많이 했다.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도 많았다”고 소감을 털어놨다.

이날 평행봉은 유원철이 이번 올림픽에서 마지막으로 잡은 기회. 4위(16.150점)로 결선에 올라 6위인 양태영(16.100점)보다 주위의 기대를 더 받기도 했다.

유원철은 신중했다. 경기 전 슬리퍼를 신고 평행봉에 미끄럼을 방지하는 탄산마그네슘을 꼼꼼히 발랐다. 다른 선수는 주로 맨발로 나서지만 유원철은 키(165cm)가 작은 탓에 175cm 높이의 평행봉 구석구석을 바르기 위해 슬리퍼를 신었던 것.

심호흡을 하고 훌쩍 뛰어올라 평행봉에 몸을 맡긴 그는 한 마리 새처럼 연기를 했다.

56.9초의 짧은 연기에 그가 10년 동안 흘린 땀과 눈물이 배어있는 듯했다. 결국 무난한 착지까지 마친 그는 환호를 했다. 하지만 경기에 만족해서 한 것은 아니었다.

“올라가기 전에 못하더라도 세리머니만은 자신 있게 하려고 했어요(웃음).”

그는 잠깐 1위에 올랐지만 8번째로 피날레 연기를 펼친 리샤오펑에게 밀려 금메달을 내줬다. 리샤오펑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이주형(35) 현 대표팀 감독을 꺾고 금메달을 따는 등 각종 세계 대회에서 16차례나 평행봉 정상에 오른 강자다.

“첫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으니 그래도 기뻐요. 다음엔 금메달을 따야지요.”

유원철은 엷게 웃으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베이징=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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