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올림픽]금쪽같은 꼴찌들…금기깬 출전 등 ‘갈채’

  • 동아일보
  • 입력 2004년 8월 22일 19시 12분



올림픽에는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순위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약물의 힘에 의존하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게 현대 스포츠의 세계라지만 올림픽에서만은 아직도 ‘스포츠로 인류 평화의 유지에 공헌한다’는 올림픽 헌장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올림픽이 아름다운 이유다.
21일 열린 2004 아테네 올림픽 육상 여자 800m 예선에서 팔레스타인의 사나 아부 부키트는 2분32초10로 출전 선수 중 꼴찌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하지만 아부 부키트의 이날 역주는 의미 있는 ‘사건’이다. 그는 올림픽에 출전한 최초의 팔레스타인 여성. 그는 분쟁의 상처 뿐 아니라, 여성 선수에 대한 아랍권의 곱지 않은 시각까지 극복하며 올림픽에 출전했다. 아부 부키트는 트랙이 없는 가자 지구에서 거리와 해변을 달리며 훈련을 해왔다.
환경과 편견의 벽을 넘은 것은 아프가니스탄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한 두 여성 선수도 마찬가지다.
유도 여자 70kg 급에 출전한 프리바 라자예는 18일 세실리아 블랑코(스페인)와의 첫 경기에서 누르기 한 판 패를 당했다. 여성의 사회 참여까지 엄격하게 제한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남들의 눈을 피해 싸구려 극장 등에서 운동해온 라자예에게 올림픽 매트에 오른 45초는 금메달 못지않은 소중한 순간이었다.

20일 여자 육상 100m 예선에서 부르카(온 몸을 가리는 이슬람권 여성의 검은 의상)를 벗어던지고 역주한 무킴 야르 로비나의 심경도 라자예와 비슷했다.
실력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올림픽 정신’으로 관중의 박수를 받은 선수들도 있었다. 페루의 17세 소녀 이네스 멜초르는 여자 5000m 예선에서 1등보다 ‘1바퀴 늦게’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포기하지 않는 모습으로 관중의 환호를 끌어냈다.
남자 육상 1500m에 출전한 적도기니의 로베르토 카라치올로 역시 1등에 25초 뒤진 성적으로 예선 탈락했으나 관중의 박수를 받아 ‘제2의 무삼바니’가 됐다. 무삼바니는 4년 전 남자 수영 100m 자유형에서 ‘개헤엄’으로 화제를 뿌렸던 적도기니 선수. 카라치올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스스로가 자랑스럽다”며 올림픽 첫 출전을 만족스러워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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