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재판 뒤집기, 4심제 위헌 악법 규탄’ 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2026.02.12. 뉴시스
법원 판결을 헌법재판소 심사 대상으로 삼는 재판소원과 관련해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2022년 재판소원을 도입한 대만에선 시행 첫해 사건이 6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 안팎에선 이처럼 해외 사례에 비춰봐도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헌재에 접수되는 사건이 크게 늘어나 나머지 일반 사건처리가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나 나온다. 결과적으로 기본권 구제를 받으려는 국민들 피해만 커질 수 있다는 것. 이에 대해 헌재 측은 “헌법적 의미가 있는 사건만 심리하면 재판 지연을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 대만 도입 첫해 747→4371건 늘어
13일 재판소원을 시행 중인 대만과 독일, 스페인 헌법재판소에서 공개한 사건 처리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2년 재판소원 제도를 도입한 대만은 시행 첫해 헌재에 접수된 사건이 4371건으로 전년(747건) 대비 6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가운데 97%는 재판소원 사건이었다. 대만 헌재에 접수된 사건은 2023년엔 1359건과 2024년 1137건으로 줄었지만 지난해 다시 2042건으로 늘어났다.
대만 헌재에 접수된 재판소원 사건 8533건 중 지난해까지 위헌 결정이 나온 건 27건(0.3%)이었다. 이중 18건은 재판에 적용된 법률이 위헌이라고 본 판결이었고, 재판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한 판결은 9건(0.1%)에 불과했다.
1951년 재판소원을 시작한 독일에선 가장 최근 통계인 2024년 4012건의 재판소원 사건이 헌재에 접수됐는데 33건(0.8%)이 위헌으로 결론났다. 같은해 독일 최고법원의 재판이 위헌적이었다는 재판소원 사건은 613건 제기됐지만 한 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79년부터 재판소원제를 채택한 스페인은 2024년 전체 접수된 재판소원 사건 9344건 중 0.7%인 65건 만이 인용됐다.
한국은 대만이나 독일, 스페인과 비교했을 때 법원 판결에 불복해 상급심 판단을 구하는 상소율이 1심 기준 30~40% 수준으로 높게 나타난다. 그런만큼 법원 안팎에선 확정 판결에 불복해 헌재의 판단을 구하는 재판소원 신청 건수도 높게 나타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헌재 연구관을 지낸 한 변호사는 “한해 6000~1만 건의 사건을 접수하는 스페인 헌재는 사건 폭증으로 과부하가 걸려 사건 처리 지연 문제가 심각하다”며 “위헌법률 심판 사건이 결론날 때까지 13년이 걸린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중요한 헌법적 의미를 가지거나 기본권 보장에 필요한 경우 등 재판소원의 본질에 부합하는 사건에 역량을 집중한다면 심판 사건 증가에 따른 문제는 최소화할 수 있다”고 13일 밝혔다. 미국 연방대법원처럼 연간 수천 건의 사건 중 헌법적 중요성 등 핵심 쟁점이 있는 100건 안팎을 선별적으로 심리하는 방안을 거론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판소원 사건 폭증으로 헌재에 과부하가 걸리더라도 헌법재판관을 늘리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헌법에서 대법관 인원은 명시하지 않은 데 비해 헌법재판관은 9명으로 못박았기 때문이다.
● “소송 지연 우려” vs “37년간 인용 10여 건”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사위 소속 의원들이 손을 들어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하고 있다. 이날 법사위에서 재판소원 도입을 담은 헌법재판소법과 대법관 수를 늘리는 법원조직법 등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됐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더불어민주당이 처리하려는 재판소원 도입법엔 헌재가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 법원 판결의 효력을 정지할 수 있다는 가처분 조항이 있는데 소송 지연에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법원에서 “건물에서 퇴거하라”는 확정 판결을 받은 세입자들이 재판소원을 낸 뒤 가처분을 신청하는 식으로 퇴거를 지연할 수 있다는 것. 통상임금 소송과 같이 경제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큰 사건의 경우 재판소원으로 확정 판결의 효력이 정지되면 혼란이 커질 수 있다.
이에 대해 헌재는 “헌재 결정이 나오기 전에 새로운 법률 관계가 형성되면 당사자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런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처분이 필요한 것”이라며 “헌재 37년 역사상 가처분 인용 건수는 10여 건 안팎으로 재판소원이 도입되더라도 실제 인용 건수는 미미할 것”이라고 했다. 통상적인 가처분 신청은 법원에 내지만 국회 탄핵 소추로 인해 직무가 정지됐던 최재해 전 감사원장과 이창수 전 서울중앙지검장 등은 “직무정지 효력을 멈춰달라”며 헌재에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헌재가 법원 판결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 위헌인지를 놓고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헌법은 대법원과 헌재를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정하고, ‘대법원은 최고 법원’이라고 명시했다. 그런 만큼 헌재가 대법의 확정 판결을 뒤집는 상급심 역할을 하는 건 헌법 체계에 어긋난다는게 사법부의 견해다. 반면 헌재는 “재판소원 도입은 헌재를 대법원 위에 두는 것이 아니다”며 “스페인 헌법도 헌재와 대법원을 분리해 규정하고 있지만 재판소원은 시행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재판소원 제도를 둘러싼 소송이 남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스페인에선 대법원이 2004년 한 시민이 헌재 재판관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재판관이 헌법소원 각하 결정에 대해 충분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위법”이라며 재판관 패소 결정을 했다. 그러자 재판관 측이 “위헌적 재판”이라며 재판소원을 냈고, 헌재가 다시 해당 대법원 판결을 파기했다. 결국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해 관련 법을 개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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