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교육재단 체육꿈나무 육성… 성적 좋은 선수 일회성 지원 지양
최장 6년간 성장 과정에 더 집중
인성-교양 교육과 독서-상담 통합… 메달 생산자 아닌 ‘학생 시민’ 키워
다양한 사회 기여 방법 제시하고… 학교체육에 일반 학생 참여 높여
교보생명과 교보교육재단이 지난해 주최한 ‘체육꿈나무 가족사랑캠프’에서 선수들과 가족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교보교육재단 제공
지난해 5월 말 강원도 국립횡성숲체원. 어린이들과 그 부모들이 좋은 공기를 마시며 숲길을 걸었다. 이 아이들은 그 며칠 전까지 전국소년체육대회 경기장에 있던 운동선수들이었다. 보통이라면 다시 훈련에 임하고 있을 시점. 그런데 숲에 들어와 있었다.
“지금처럼 힘든 순간을 계속 이겨 내는 것만으로 대단한 거야.” “늘 응원할게. 너 뒤에 항상 우리가 있어.”
부모들은 자녀들을 안아 주고 등을 두드려 주며 차마 표현하지 못한 사랑을 전했다. 성적이나 순위, 메달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패배 순간을 ‘리플레이’하지도 않았다. 교보생명과 교보교육재단 ‘체육꿈나무 가족사랑캠프’ 현장에서 이틀간 나타난 장면이다.
교보생명과 교보교육재단은 1985년부터 매년 ‘교보생명컵 꿈나무 체육대회’를 개최한다. 2019년부터 대회 입상자 가운데 체육꿈나무 장학생을 선정해 선수들과 그 가족을 초청해 캠프를 열고 있다. 지난해 행사에는 5기 체육꿈나무로 선발된 7개 종목 14명 선수와 그 부모 등 70여 명이 참석했다.
소년체전 직후라 지쳐 있던 선수들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표정이 살아났다. 부모들은 48시간 동안 오롯이 자녀에게 집중했다. 다른 선수 가족들과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선수와 부모, 다른 가족들이 서로서로를 응원하는 사이가 됐다.
● “부모 표정 말고 네 꿈을 주목해”
캠프 기간 진로 특강을 맡은 피겨스케이팅 전 국가대표 선수 김예림은 후배 선수들 마음속으로 들어갔다. 반복된 부상에서 오는 두려움, 슬럼프, 진로의 갈림길에서 겪은 혼란까지 숨김 없이 털어놓았다.
부모들에게는 귀중한 조언을 했다. “기록과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말아 주세요. 차분하게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학생 선수들은 큰 위로를 받아요.”
후배들에겐 “부모님 표정 살피며 경기하지 말자. 내가 정말 원하고 사랑하는 길이라면 흔들리지 말고 달려가자”고 했다. 진심 어린 격려에 선수들은 위로받고 자신감을 얻은 듯했다.
교보교육재단 피지컬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장학생 선수들이 스트레칭과 근력 강화법을 배우고 있다. 교보교육재단 제공
● 선수를 메달이 아닌 ‘학생 시민’으로 보다
‘체육꿈나무 육성 장학사업’은 성적이 좋은 선수에게 일회성 지원을 하는 방식이 아니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최장 6년간 선수 성장 과정 전체를 지원한다. 운동 선수도 인격과 지식을 키우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가장 기본 격려 수단인 연간 200만 원 장학금부터 인성 및 교양 교육, 멘토링, 독서 프로그램, 심리 상담, 몸 관리까지 결합했다. ‘잘하니까 지원한다’가 아니라 ‘(인격체로서) 잘 자라도록 함께 책임진다’는 접근법이다.
기존 학교체육은 이른바 엘리트 체육으로 우수 선수를 발굴해 경기력 향상과 대회 입상에 집중하는 구조였다. 가시적인 성과는 나왔지만 부상과 조기 이탈, 학습권 침해, 은퇴 후 진로 불안이라는 문제도 키웠다. 다수 일반 학생의 학교체육 참여가 위축됐다는 지적도 적잖았다. 최화정 교보교육재단 이사장은 “인성, 교양, 시민성 같은 전인적 성장 요인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이 체육꿈나무 육성 장학사업”이라며 “선수들을 ‘메달 생산자’가 아닌 ‘학생 시민’으로 키우는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체육꿈나무 장학생 선수들이 교보교육재단 ‘꿈나무 북클럽’ 프로그램에서 읽은 김선미 작가 소설 ‘비스킷’에 대해 온라인 토론을 하고 있다. 교보교육재단 제공 ● ‘책 읽고 많은 질문을 할 수 있는 선수’
경기가 끝나면 선수들은 기록을 먼저 확인한다. 자신과 다른 선수 기록을 비교하며 우열을 따진다. ‘지금 운동을 잘하는가’에 매몰돼 있다. ‘경기를 치르고 얻은 경험이 내게 남긴 것은 무엇인지’를 묻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
교보교육재단 ‘꿈나무 북클럽’은 이 같은 엘리트 체육 문화에 작은 균열을 낸다. 독서와 토론 기회를 제공해 결과만이 아닌 과정을 돌아보고 스스로 내면을 다지도록 돕는다. 독서 지원금도 준다. 최 이사장은 “자신을 아끼는 법을 배운다. 이는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근간이 된다”고 말했다.
독서 토론을 통해 남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경험은 학교체육에 변화를 가져온다. 말을 조리 있게 하고 자주 질문하는 선수가 학교 체육부 분위기를 바꾼다. 일반 학생들과 소통도 잘 돼 운동 종목을 설명해주면서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끈다. 체육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춰서 자율 체육과 동아리 활동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 부상과 승부 압박에 대한 안전망 제공
지난해 열린 피지컬 교육 프로그램 현장에선 체육꿈나무 장학생들이 자신의 관절 가동 범위, 신체 좌우 균형, 생활 습관 등을 세밀하게 점검받았다. 이를 통해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도 알았다. 무릎 통증이 고관절과 발목 문제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설명에 학부모들은 놀라기도 했다.
꿈나무들은 여자 농구 국가대표 출신 하은주 해설위원과의 1대1 면담에서 승부에 대한 정신적 압박과 불안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고 해법을 얻기도 했다. 하 위원은 성공하는 운동선수가 되기 위한 하루, 한 주 단위 실행 계획 수립을 도와줬다.
여자농구 전 국가대표 하은주 해설위원이 체육꿈나무 장학생들에게 성공하는 운동선수가 되기 위한 자기 관리법을 알려주고 있다. 교보교육재단 제공
● 사람을 키우는 학교체육 모델
교보교육재단 ‘체육꿈나무 육성 장학사업’은 학교체육의 외연을 넓히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메달보다 사람이, 기록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선수 성장 시스템을 도입해 따로 놀던 학교체육을 교육의 자리로 되돌려 놓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육상 포환던지기 유망주 박시훈 군(금오고 3학년)은 세계 수준에 오를 만한 기대주로 꼽힌다. 2023 18세 이하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와 2024 20세 이하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포환던지기에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땄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한국 기록 보유자인 박 군은 체육꿈나무 1기로 뽑혀 6년간 지원을 받았다. 박 군은 “운동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독서나 공부에도 관심을 갖게 돼 ‘나’를 성장시킬 수 있었다”며 “자신감이 생겼고 일반 학생들과도 친하게 지냈다”고 말했다.
박 군은 체육특기자가 아닌 일반 수험생으로 내신성적을 관리해 올해 수시 전형으로 부산대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했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는 운동하면서 전교회장도 맡으니 다른 친구들이 비인기 종목에 관심을 갖고 늘 응원해줬다”며 “운동만 하고 세상을 몰랐다면 주변에 친구들도 없었을 것이다. 체육을 위한 체육을 하지 않고 성장해서 뿌듯하다”고 했다.
전인적 교육을 받은 학생 선수는 훗날 은퇴해도 지도자나 체육 교사, 심판, 스포츠 행정가, 생활체육 지도자 등으로 학교체육 현장과 지역 사회에 기여할 여지가 크다. 학교 체육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이 시기에 ‘교보형 교육 모델’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를 통해 학생 선수는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학교체육 문화는 일반 학생의 자율적 참여를 늘리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성적을 묻기 전에 선수를 먼저 품는 시스템이 학교체육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여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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