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사고난 ‘민간 실탄 사격장’ 직접 체험해보니… “음주-정신건강 검증 없어, 나쁜 맘 먹으면 사고 우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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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 이상 확인때 실탄 장전 총기
‘음주자 출입 금지’ 안내판만
주거지 인근 금지 입지규제도 없어
“입장 단계부터 구체적 통제 필요”
“직접 총을 잡아보니, 누군가 나쁜 마음만 먹으면 사고가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8일 서울의 한 민간 실탄 사격장에서 체험을 마치고 나온 이학준(가명·33) 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직접 사격 체험을 해보니 음주 상태이거나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사람에 대해선 최소한의 검증 절차라도 필요해 보였다”고 덧붙였다.
최근 인천 연수구 송도동의 한 실탄 사격장에서 21세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사격장 안전 관리 체계의 부실함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사격장이 단순한 레저 시설을 넘어 살상 무기를 취급하는 특수 공간인 만큼 훨씬 엄격한 관리와 감시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음주자 등 출입금지’ 안내판만 덩그러니
22일 오후 5시경 인천 사격장에서 스스로 실탄을 쏜 남성은 평소 우울증을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 남성이 자신을 향해 직접 실탄을 발사할 목적으로 사격장을 찾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민간 실탄 사격장은 전국에 수십 곳으로 추산된다. 대부분 관광·체험 목적으로 사격장안전법에 따라 경찰의 허가와 감독을 받는다. 이 법은 14세 미만 미성년자와 음주자뿐 아니라 심신상실자, 위해 발생 우려가 있는 사람의 사격을 제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취재팀이 28일 서울 내 실탄 사격장 2곳을 방문한 결과 모두 입장 과정에서 이용객의 음주 상태 등을 확인하는 별도 절차가 없었다. “음주자 또는 정신 이상자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벽에 붙어 있을 뿐이었다. 신분증으로 14세 이상임이 확인되면 간단한 사용법 설명을 듣고 사격장 내부로 직원과 함께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직원이 뒤에서 사격하는 장면을 보고 있긴 하지만 만약 직원이 한눈을 판다면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였다. 서울의 한 사격장에서 만난 중국인 관광객은 “음주나 정신상태에 관해 물어본다거나 검사를 하는 절차는 전혀 없었다”며 “겉보기에 문제가 없어 보이니 그냥 들여보내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관리 부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8년 9월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실탄 사격장에서는 30대 영화 촬영 스태프가 직원을 전기충격기로 폭행한 뒤 스스로 총을 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4년엔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사격장에서 30대 여성이 연습용 권총을 스스로 겨눠 중상을 입었다.
● 총구 방향 제한 등 안전설비 의무화 필요
특히 실내 사격장의 입지 규정은 미비한 상태다. 현행법상 실외 사격장은 주거지로부터 15∼50m 이상 거리를 둬야 하지만, 실내 권총 사격장은 이 기준에서 제외되어 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인천 사격장 역시 지상 17층 규모 주상복합건물의 2층에 있는데, 바로 위인 3층부터 주거시설이다. 관할 구청에는 실탄 사격장의 소음과 안전 우려로 인한 주민들의 민원이 올해만 20건 넘게 접수됐다. 이에 따라 인천경찰청은 실내 실탄 사격장이 현행법상 주거지와의 거리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점을 확인하고 경찰청에 제도 개선을 건의했다.
전문가들은 사격장 입장 단계에서부터 구체적인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신이철 원광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분명 제도는 있는데 느슨하게 지켜지고 있다”며 “독일의 경우 사업주가 고액 책임보험에 가입해야만 사격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의무화하고, 미국도 사고를 막기 위해 총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규정을 만들었는데 우리도 이런 사례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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