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올해 국내 치매 환자 수는 100만 명을 넘어선다. 이는 단순히 환자 수 증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치매 환자 한 명을 돌보기 위해 가족 전체의 삶이 흔들리고, 국가적으로는 연간 25조 원이 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치매 대응은 환자가 발생한 뒤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의과학계의 흐름은 이러한 접근 방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초고령사회에서 치매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노화의 결과가 아니다. 위험 요인을 관리해 발병 시기를 늦추거나 예방할 수 있는 질환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세계적 의학 학술지인 ‘랜싯’에 따르면 관리 가능한 위험 요인을 적절히 통제할 경우 치매 발병을 최대 45%까지 줄일 수 있다. 콜레스테롤 수치, 청력과 시력 손실, 당뇨병, 우울증, 운동 부족 등 14가지 위험 요인을 조기에 관리하면 치매 발병을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늦출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누가, 언제부터 관리를 시작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즉, 치매 대응의 핵심은 증상이 나타난 이후가 아니라, 뇌 손상이 심각한 단계에 이르기 전에 ‘골든타임’을 찾아내는 데 있다.
특히 알츠하이머 치매는 증상 발생 후엔 이미 뇌세포의 손상이 상당이 진행된 상태라 더욱 치명적이다. 최근에 개발된 면역치료제 역시 초기 치매 단계에서만 효과가 입증됐을 뿐, 중증 환자를 정상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가장 현실적인 치료 전략은 증상이 없는 초기 단계에서 발병 가능성을 미리 알아내고 진행을 차단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인산화 타우(pTau217) 혈액검사는 치매 원인 물질의 축적 여부를 간단한 혈액검사로 선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기존에는 고가의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검사나 침습적인 뇌척수액 검사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위험 신호를 더 낮은 비용과 높은 정확도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치매 진단 패러다임은 치료에서 예측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도 이 분야에서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 광주치매코호트연구단이 13년간 2만 명 이상의 고령층 대상 추적 연구를 진행한 결과, 인산화 타우 혈액검사를 통해 치매 발병 약 10년 전부터 위험을 예측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는 치매 예방 정책이 실현 가능한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근거다.
치매 정책의 방향 역시 달라져야 한다. 치매 환자를 얼마나 잘 돌볼 것인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조기 예측을 통해 발병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혈액 바이오마커 검사를 통해 고위험군을 조기에 발굴하고, 개인별 위험 요인을 맞춤형으로 관리해야 한다. 디지털 치료제와 전자약 등 새로운 치료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한 대한민국이 치매 문제를 극복하려면 ‘돌봄의 확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예방과 예측을 중심으로 한 국가적 전략이 요구된다. 치매를 늦추고 막을 수 있는 과학적 도구가 등장한 지금이야말로 정책의 방향을 전환해야 할 결정적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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