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나 특별한 날이면 가족은 으레 한자리에 모이기 마련이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대통령 가족’(1967년·사진)은 그런 익숙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콜롬비아 최고 권력자 일가는 한껏 멋을 낸 채 포즈를 취했지만, 왠지 모르게 표정들은 어색하고 경직돼 있다.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화가 보테로는 인물을 과장되게 부풀려 그리는 특유의 양감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의 뚱뚱한 인물들은 해학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권위주의와 권력자를 향한 날카로운 풍자다.
이 그림의 구성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화면 뒤편,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대통령이다. 통상적인 권력자의 초상화라면 중심에 서야 할 인물이지만, 보테로는 그를 과감히 뒤로 물렸다. 대신 영부인을 중심에 세웠다. 값비싼 족제비털을 두르고 보석 반지를 낀 그녀는 멍한 듯 골똘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응시한다. 그 주변으로 할머니와 아이, 장군과 주교가 빼곡히 자리한다. 혈연과 제도, 군과 종교가 한 울타리 안에서 가족처럼 결속된 모습이다.
주목할 점은 가족 주변에 배치된 동물들이다. 서양미술에서 뱀은 타락을, 족제비는 교활함을 상징한다. 발톱을 숨긴 채 모든 것을 지켜보는 고양이는 숨은 욕망의 상징으로, 권력에 기생하며 방관하는 군인과 성직자의 위선을 은유한다. 화가는 이처럼 상징의 언어로 권력자 일가가 누리는 안온함의 토대가 얼마나 부도덕한지를 폭로한다. 압권은 배경의 산등성이다. 실내는 풍요롭지만 멀리 산등성이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세상 밖은 갈등과 충돌로 불타고 있음에도 성벽 안 가족은 그들만의 평온함에 취해 있다는 암시다.
화면 왼쪽 끝에는 화가 자신도 등장한다. 캔버스 앞에 선 그는 이 부조리한 풍경을 기록하는 냉철한 목격자다. 결국 그가 그리고자 했던 건 포만감에 취해 외부의 고통을 망각한 자들에 대한 슬픈 초상인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