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은평구 치매안심센터로 한 노인이 들어서고 있다. 전국 256개 치매안심센터에는 치매 환자 등 57만여 명이 등록돼 있지만, 이들의 ‘치매 머니’를 지킬 후견 업무 담당 변호사는 4명뿐이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담당자가 출장 중이네요. 나중에 전화로 문의해 주세요.”
19일 오후 3시 반, 서울 은평구 치매안심센터. 취재팀이 치매 환자 가족을 가장해 센터 직원에게 “공공후견인 신청 상담을 받고 싶다”고 말하자 돌아온 답변이다. 평일 낮이었지만 현장엔 후견 상담을 도와줄 전담 직원이 없었다. 보건소 건물 내 정신건강복지센터와 함께 있는 이곳에는 치매 환자와 보호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만, 일부 직원이 자리를 비우면 치매 환자와 가족들은 상담조차 받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구조였다.
취재팀이 둘러본 다른 치매안심센터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일부 센터는 상담받을 창구조차 없었고, 음악 프로그램 등보다 뒷전으로 밀린 경우도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치매 노인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 ‘공공후견 제도’를 지원한다고 홍보해 왔으나, 그 결실인 수혜자 수는 올해 11월 기준 전국을 통틀어 730명에 그치고 있다. 100만 명에 이르는 치매 인구 중 국가의 후견 지원을 받은 비율이 0.1%에도 못 미친 셈이다.
● 후견 지원 ‘뒷전’, 치매안심센터
치매 환자를 통합 지원해야 할 치매안심센터가 인력, 시간, 전문성 부족으로 ‘치매 머니 사냥’을 막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전국 256곳 치매안심센터 직원 4967명 중 72.9%(3621명)는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 인력이다. 센터의 기능 자체가 환자를 ‘발굴’하고 ‘진단’하는 의료적 처치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나마 센터가 지원하는 업무도 저소득층이나 홀몸노인을 위한 공공후견에 한정돼 있다. 전문가들은 치매 머니 사냥을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판단력이 온전할 때 미리 후견인을 지정하는 ‘임의후견’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지만, 센터 현장에서 이를 지원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미 치매가 발병한 뒤 법원이 관리자를 정해 주는 ‘법정후견’ 역시 센터의 업무 범주 밖에 놓여 있다.
이는 지원기구를 설치하고 임의후견을 지원하는 일본과 대조적이다. 일본은 2016년 ‘성년후견제도 이용 촉진법’을 제정하고 총리실 산하에 전담 기구인 ‘성년후견이용촉진회의’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전국 지자체 70%에 후견지원센터를 세웠고, 센터를 통해 후견 관련 상담부터 서류 작성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 건강할 때 미리 후견인을 정해 둔 노인이 12만 명이 넘고, 실제로 후견이 개시된 사례가 1만4229명에 이른다. 임의후견 개시 사례가 32명에 그친 한국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독일과 영국에선 전담 부처인 후견청을 설치하고, 치매 환자의 후견인 선임을 돕고 있다.
● 70%가 필수 인력 미달… “서류 취합에만 수개월”
전문가들은 치매 머니 사냥에 대응하기 위해 치매안심센터의 기능을 자산 보호 영역으로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고질적인 인력난이 발목을 잡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치매안심센터 중 68.8%(176곳)가 법정 필수 인력조차 채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관리법 시행 규칙에 따라 센터는 사회복지사 1급, 간호사, 작업치료사, 임상심리사를 각각 1명 이상 둬야 하지만, 열악한 채용 여건 탓에 공석이 수두룩하다. 특히 치매 노인의 삶 전반을 케어하는 사회복지사 비중은 전체 직원의 14.4%(718명)에 불과하다. 의료 지원에만 치우친 인력 구조 탓에 법률 및 후견 지원을 담당할 전문성은 갈수록 고갈되고 있다.
이러한 행정 공백은 저조한 실적으로 증명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8년 9월 공공치매후견사업이 시작된 이후 지난해 4월까지의 현황을 분석한 결과, 후견심판청구를 5차례도 하지 않은 센터가 전체의 88%(226곳)에 달했다. 단 한 번도 청구 실적이 없는 곳도 36%(92곳)나 됐다. 한 지역센터 관계자는 “전담 변호사는 전국에 4명뿐이고 센터 내부엔 전문 인력이 없다 보니, 서류를 취합해 서울의 중앙치매센터로 보내 검토받는 데만 수개월이 걸린다”며 “그사이 노인의 자산이 사냥당해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치매안심센터가 치매 환자의 후견 업무를 통합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존에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환자를 ‘스크리닝’하는 의료 기능에 충실했다”며 “현실적으로 새로운 후견 전담 기관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만큼, 치매 환자와 가장 가까이 있는 기관인 치매안심센터를 활용해 후견 제도를 홍보하고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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