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세금 내려 주소도 옮겼죠”…어느 자수성가 기업가의 수구초심[서영아의 100세 카페]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6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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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생 2막]72세 인광그룹 김상문 회장
중졸 흙수저, 군대에서 각성… 서른에 고향 떠나 자수성가
평생 성과 고향과 나누고파… “고향과 부모님은 나의 원천”
“고향 소멸 방지, 뭐라도 해야”

자신이 그간 펴낸 책들을 옆에 두고 앉은 김상문 인광그룹 회장. 손에 든 책은 가장 최근 낸 링컨 평전이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회사를 떠난 후배가 책 한 권을 썼다며 보내왔다. ‘안 하는 거야 못 하는 거야(희망마루)’라는 제목의 중견기업 회장 일대기다. 중졸 흙수저 출신인 주인공이 책읽는 습관과 포기하지 않는 끈기로 자수성가하기까지의 과정과 인생철학이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진심 어린 고향사랑에 마음이 끌렸다. 지방소멸이 화두가 되는 요즘, 외지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고향에 대해 갖는 관심과 사명감은 해당 지역에 큰 힘이 된다. 일본의 작은 섬 나오시마를 세계적인 ‘예술 관광지’로 바꾼 베넷세 그룹 오너가 대표적이다.

30대에 고향을 떠나 성공한 뒤 70세가 넘어 평생의 성과를 고향과 나누려고 움직이는 사람. 지난달 25일 광화문에 자리한 인광그룹 서울사무실에서 김상문(72) 회장을 만났다. 꼿꼿한 자세에 겸손한 어조가 몸에 밴 노신사다.

200억 컬처센터 지어 고향에 헌정
그는 지난해 11월경 주소지를 서울 용산구에서 충북 보은군의 고향집으로 옮겼다. 부모님 산소 근처 작은 한옥을 고쳐 틈날 때마다 찾아가 쉬곤 하는 집이다.

주소를 옮긴 이유가 재미있다. 사업 일부를 정리하면서 부과된 세금 650억 원에 따라붙는 지방세 10%를 고향에 납부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국세는 국세청에 내지만 지방세는 주소지 관할 구청이나 군청에 내게 돼 있어요. 내야 할 지방세가 제몫(65억 원)에 딸의 것까지 더하면 67억 원쯤 됩니다. 돈이 없어 쩔쩔매는 보은군에 요긴할 것 같았습니다. 군의 1년 세수가 300억 남짓이니까요. 최근 최재형 군수를 만나 이 돈은 군민들의 삶의 질에 관련된 것에 써달라는 뜻도 전했어요.”

이뿐 아니다. 보은에 땅매입비를 포함해 200여 억 원을 들여 컬처센터를 지어 헌정하기로 하고 지난달 1일 착공식을 마쳤다. 그의 호를 딴 ‘제산(霽山)컬처센터’는 공연장과 갤러리, 도서관과 카페 등이 결합된 복합문화공간이다.

내년 4월쯤 완공되면 인천에 있는 공익재단법인 ‘제산평생학습’ 본부도 여기로 옮겨올 계획. 2018년 설립한 이 재단은 앞으로 그의 활동의 중심이 될 터다.

“고향분들은 물론, 외지 분들도 각종 행사에 참여할 정도로 수준높은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어요.”

제산컬처센터 조감도. 책꽂이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이다. 제대로 잘 짓고 싶어서 새문안교회와 국립한국문학관을 설계한 이은석 경희대 교수에게 설계를 의뢰했다고. 인광그룹 제공
삼일절을 기린다는 뜻을 담아 지난 3월 1일 오후 3시 1분 가진 제산컬처센터 착공식. 인광그룹 제공


“30년 벌었으니 이제는 잘 써야죠”
1991년 인천의 석산 골재재취업으로 시작한 사업은 인천(석산, 건축폐기물, 토양정화)과 당진(레미콘, 아스콘, 레저), 청주(석산, 레미콘), 포항(보강토 블록공장) 등으로 늘어났다. 정직원만 200여 명, 연 매출 15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이렇게 확장만 해오던 사업장 중 하나를 처음 정리한 것. 올해부터 그룹명을 IK에서 ‘인광’이라는 초기 사용했던 것으로 바꿨다.

“제 시대는 끝나가고, 미래는 다른 분야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입니다. 보은에 컬처센터를 지을 비용을 마련하고 그동안 회사를 믿고 투자해준 주주들, 동고동락한 근속 가족들에게 성과금으로 나눠줄 자금도 필요했습니다. 직원들의 노후를 위해 만든 행복기금 재원도 확충해줘야 했고요.”

이제 그의 사업계획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모아놓은 돈을 잘 쓰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올해부터 회사 운영을 후계자들에게 맡겼습니다. 저는 자문이나 해주고 재단 일에 힘을 쏟으려 합니다. 큰 방향은 국민이 책 읽는 데 도움주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국내 최초이자 세계 최대규모인 아이케이 건설폐기물 옥내 처리시설. 이번에 매각됐다. 인광그룹 제공


중졸, 흙수저
가난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환갑을 앞두고 있었고 어머니도 마흔이 다 된 나이였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며 입에 풀칠을 했다. 중학교 수업료를 내지 못해 설움을 겪어야 했고 농고에 진학했지만 중도에 학업을 포기했다.

스무살에 군대에서 그는 현실에 대해 각성하게 된다. 중졸 학력에 빈손으로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니 공무원시험 합격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보초를 서면서도 미친 듯이 공부를 했다. 군대 내 책장 청소를 자원해 꽂혀 있던 책을 모두 읽었다.

“펄벅의 대지, 한국문학선집 등 우량도서가 많았어요. 보초를 서며 책을 읽다가 들켜 두들겨 맞곤 했죠. 어느 날 중대장이 불러 이유를 물었는데 제 처지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쏟아냈어요. 그러자 중대장은 아침 6시부터 12시간씩 말뚝보초를 서라고 하더군요. 보초를 서면서 고교 과정을 독학으로 끝냈고 많은 책을 읽었어요.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뭔가에 손을 대면 끝장을 보는 성품 때문일까. 74년 말 제대한 그는 공무원이 아니라 과외선생이 됐다. 옆집 아주머니가 틈틈이 중3 올라가는 아들의 공부를 봐달라고 부탁한 게 계기였다. 반에서 중간 정도 하던 학생인데 수학이 약했다. 겨울방학동안 초등학교 3학년 산수부터 중2 수학까지 진도를 끝냈다.

이 학생이 3학년 첫 시험에서 학급 3등을 하자 온동네에 난리가 났다. 입소문이 돌면서 제자는 200명 단위로 불어났고 학원을 열게 됐다. 많은 돈을 벌다보니 ‘보은의 돈은 김상문이가 다 가져간다’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1980년 7월 전두환 정권의 과외금지조치로 그는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었다.

“당시 오자복 장군이 그 발표를 했어요. 한참 뒤에 제가 그분을 만나게 돼 그때 얘길 했어요. 그분이 ‘아이고 김 사장 내가 그거 안했으면 당신 지금도 시골에서 학원 운영하고 있었잖아’. 하는데 할 말이 없더군요. 하하.”

사무실 안에는 김환기 이우환 등 유명화가의 작품이 걸려 있고 그가 읽었거나 읽고 있는 책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그 뒤 고향을 떠나 일간지 어린이신문 판매에 뛰어들기도 했지만 ‘40세가 되면 내 사업을 하겠다’고 일찌감치 마음먹고 있었다.

114번 찾아간 끝에 받아낸 승낙

인광그룹 곳곳에는 사훈처럼 ‘114, 학습, find a better way’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특히 ‘114 정신’은 그룹에서 전설처럼 회자된다.

1990년 사업 아이템을 찾던 그는 신도시 건설열기에 골재가 부족하다는 뉴스를 보고 골재 채취업에 관심을 가졌다. 석산을 찾아다니다 인천에서 좋은 산을 발견해 주인을 수소문하니 부천의 모 중견기업 회장이었다.

해당 기업의 관리이사를 찾아가 “산을 빌려주면 채석사업장으로 개발해 돈을 벌어 임대료를 갚겠다”고 간청했다. 외상으로 산을 달라는 뜻이었다.

“처음엔 미친놈 취급당하며 쫓겨났죠. 공짜로 남의 산을 달라니, 말이 되나요. 하하.”

그는 포기를 몰랐다. 승낙을 얻기 위해 해당 이사의 사무실을 주 2회, 1년 2개월간 113번 찾아갔다. 문전박대도 한계가 있는 법. 이사는 점차 차도 한잔 내주며 얘기를 들어주게 됐다. 그렇게 114번째 찾아간 날, 이사는 김 씨를 회장실로 데리고 가 소개하며 ‘한번 시험삼아 맡겨나 보시자’고 권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두 달 만에 허가증 받아서 레미콘 공장들을 돌아다니니 선수금을 2억, 5억씩 마구 갖다 주는 거예요. 워낙 골재가 부족했거든요. 처음 임대계약액이 13억 2000만 원이었는데 며칠 만에 갖다 드렸어요.”

―그때의 이사님을 돌아가실 때까지 돌보셨더군요.

“제가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 갑니다. 회사에 세무조사 나왔던 분이나 제가 투서 때문에 구치소 들어갔을 때 담당교도관이 모두 저희 회사 주주가 됐어요. 이번에 회사 정리하면서 그분들께 배당을 드렸는데 투자액보다 훨씬 높은 정산을 해드렸어요. 해마다 투자금의 10%를 배당해드렸고요.”

“제대로 길 찾으려면 책을 읽으세요”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어갈 때마다 그는 책이 자신을 이끌어줬다고 믿는다.

독서대가 가운데를 차지한 김상문 회장의 책상.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사업하며 고생 많이 했어요. 새벽 6시면 무조건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매주 회의하고 고민하고 함께 으쌰으쌰 하면서 만든 회사예요. 하기야, 조금이라도 성공한 분들 들여다보면 다 고생했지요.”

―고생만 하고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하는 분들도….

“잘못 고생한 거죠.”

―잘 고생하는 것과 잘못 고생하는 것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될까요.

“책을 통해 길을 찾았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책을 많이 보면 예지력이랄까 인사이트 파워가 생깁니다. 예컨대 제가 책을 안 봤으면 지하채석을 생각이나 했겠어요.”

그는 한국 최초로 지하채석을 시작한 주인공이다. 당시에는 석산에서 산 부분을 다 깎아내면 끝이라고들 여겼다. 석산은 땅 아래로도 이어져 있다. 왜 땅속 돌을 안 꺼낼까, 군청 가서 물어봐도 아무도 대답을 못 했다. 그저 ‘해본 적이 없으니 안된다’고 했다. 요즘은 당연해진 지하채굴 허가를 받기까지 온갖 규제를 풀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당초 돌을 파낸 자리는 양질의 토양으로 복원한다는 조건이 딸려 있었는데 여기서도 그의 왜? 정신이 발동했다. 책들을 찾아보면 나무가 자라는 데는 흙 1m면 충분했다.

몇 년간의 시행착오와 티격태격 끝에 지하 60m까지 석산을 파낸 뒤 깊은 곳은 건축폐기물처리과정에서 나오는 양질의 순환토사로 채우고 그 위에 흙을 덮는 방식으로 표준화된 모델이 만들어졌다. 그는 지금도 이런 채석 방식덕에 수많은 산림자원 훼손을 막았다고 자부한다.

지하채석하는 모습. 골재를 지하까지 파내고 나면 건설폐기물 처리과정에서 나온 양질의 순환토사로 메우고 그 위에 토양을 덮어 복원하게 된다. 인광그룹 제공


“과거 12만 명 북적이던 보은, 인구 5만은 돼야”
수구초심(首丘初心)은 고향과 근본을 잊지 않는 마음. 그에게 늘 고향은 어머니 품과 같은 존재였다. 다만 고향과 관련해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은 일이 있다. 2018년 무소속으로 보은군수에 출마했다 고배를 마신 것. 당시 내건 공약은 ‘인구 5만 보은을 만들겠다’. 현재 인구는 3.3만이다.

“진심으로 고향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보은 발전을 위한 방향이 제게는 보였거든요. 하지만 정치라는 세계는 그런 진심과는 거리가 멀더군요. 다시는 선출직 출마 같은 건 안 합니다.낙선한 뒤 나라 구석구석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다른 쪽에서 역할을 하라는 뜻이로구나. 그 첫 단추가 제산컬처센터입니다.”

70세를 넘기는 2022년 전국 5대 둘레길 총 5035km를 완주했다. 이 여정에는 때로 직원들도 1박2일, 2박3일씩 돌아가며 참여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많은 개인적 성취를 이뤘다. 연간 200권씩 독서하고 짬짬이 써낸 책이 18권이다. 저우언라이, 마오쩌뚱 덩샤오핑의 평전 등 중국과 관련된 책이 많고 최근에는 링컨 평전을 냈다.

간혹 강연도 하는데, 몇년째 성균관대 최고경영자 과정의 피날레 강의를 맡고 있다. 한자능력검정시험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특급’을 따기 위해 일부러 지하철에 서서 공부하며 출퇴근하는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50대 후반이 되어서야 세간에서 말하는 ‘학력’을 채워넣기 시작했다. 한국방송통신대 중어중문과에 진학해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고 그게 미안해 졸업 때 학교에 발전기금 1000만 원을 기부했다. 같은 전공으로 성균관대에서 석사를 수료했고 현재는 동아시아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해 2월 성균관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인광그룹 제공
지난해 2월 성균관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인광그룹 제공
전국 5대 둘레길 5035km를 완주한 뒤 직원들의 축하를 받았다. 인광그룹 제공
전국 5대 둘레길 5035km를 완주한 뒤 직원들의 축하를 받았다. 인광그룹 제공


직원들 미래 생각한 노후행복기금
그의 관심이 ‘확장’에서 ‘정리’로 넘어간 흔적은 2022년 직원들을 위해 만든 ‘노후행복기금’에서도 읽힌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만으로는 이들의 노후가 편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직원들에게 ‘60세까지 찾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은 뒤 증권사에 계좌를 만들어 급여를 제외한 모든 돈을 여기에 넣어주기 시작했다.

명절 떡값이나 성과급은 물론, 책을 산 영수증을 제출하면 그 돈도 넣어줬다. 지난해 회사 정리하면서 받은 돈도 연차에 따라 3000~9000만원 씩 넣어줬다.

“1년 여 만에 전 직원이 5000만 원 이상 모았고, 1억 원 이상도 상당수 있는 걸로 압니다. 명절 보너스까지 묶여 버리니 처음엔 투덜대던 직원들도 돈이 쌓이는 걸 보며 너무 좋아합니다. 각자 2억 정도 모으면 금융공부를 시켜 ‘돈이 일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재단에서는 그가 출연한 주식에서 나오는 배당금으로 매년 3~5억 원 정도를 벽지 학생들에게 책을 보내주는 데 사용한다. 그는 앞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해 자산 규모를 500억 원 정도로 키울 생각이다.

“환경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물고기잡는 법’을 가르치고 싶은 거죠. 좀더 긴 계획으로는, 걸으면서 느꼈던 단상을 모아서 80세쯤 되면 인생을 정리하는 시집을 한번 내볼까 생각 중이예요.”

재단에서 벽지의 초등학생들에게 보낸 국어사전과 독서대. 인광그룹 제공


인생 정리? 무엇을 남길 것인가
기업가들은기업을 일굴 때는 뒷일을 생각지 않지만 황혼을 바라볼 때쯤이면 머리가 아파온다. ‘기업 두 번 상속하면 국유화 확정’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큰 세금부담 탓이다. IK의 경우 부동산 과다보유 법인이라며 양도차액의 49.5%가 세금으로 매겨졌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 세금에 ‘자랑스러운 의무’라며 국가에 환원한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도 기업을 넘기며 아깝지 않았느냐는 거듭된 질문에 그는 가족 토론방에 자신이 남긴 글을 보여줬다.

‘세금납부가 거의 끝났다. 76,574,194,649원. 765억7000만원의 세금을 내는
가정이 얼마나 되겠느냐. 지난 세월 아버지의 인생결산이자 자랑스러운 의무다…(중략) …아버지는 큰 짐을 내려놓고 부모님께 감사하며 어제 단잠을 잤다.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아가거라. 아버지’

1녀 2남 자녀들은 ‘그 큰 금액을 세금으로 내면서 많은 감정이 교차했지만, 아버지 말씀처럼 고생하시면서 만들어온 결과물을 사회에 환원하는 뜻깊은 세납이었기에 자랑스러웠다’, ‘처음엔 엄청난 금액에 놀라고 평생을 거쳐 일군 재산을 담담히 국가와 사회에 환원하시는 모습에 또 한번 놀랐다’라는 말로 화답했다.

“열심히 제 갈 길 걷다보니 어느 새 멀리, 높이 와 있더라구요. 처음엔 돈을 벌려고 사업했지만 나중엔 사업이 좋아서 뛰어다녔는데 정신 차려보니 회사의 가치도 한참 커져 있더군요. 어찌 보면 제가 좀 바보스럽게 산 것 같아요.….”

―후회하십니까.

“보람을 느끼죠. 보람을 느끼려면 좀 바보스럽고 우직하게 살아야 해요. 너무 얕게 살면 남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직원들을 대상으로 매달 인문학 강의를 한다. 인광그룹 제공

<길> 김상문
조국산천 걸어간다
좋은 길
나쁜 길
편한 길
힘든 길
인생이나 길이나 그게 그거다
섞여 있는 것이 세상 이치다
모두 그렇다

링컨은 김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다. 링컨동산의 팔장을 끼고 포즈. 인광그룹 제공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자수성가 기업가#수구초심#인광그룹#김상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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