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1년만에 전기기술자 변신한 대기업 전산부장…“일하면서 하루 2만보씩 걸어요”[서영아의 100세 카페]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3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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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기업 전산개발부장 이정균 씨
5만평 쇼핑몰 전기안전 책임져
폴리텍서 기술 배워 자격증 취득
시설관리직 낮춰보는 풍토 아쉬워
자격증, 넓은 세상에선 날 증명하는 수호신

쇼핑몰 야외광장을 배경으로 선 이정균 씨. 작업복과 안전모가 잘 어울린다. 의왕=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연면적 5만 평을 종일 뛰어다니다보니 저절로 운동이 됩니다. 하루 2만보가 기본이예요.”

경기도 의왕시에 자리한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타임빌라스’. 이정균(60) 씨는 이곳의 전기안전관리 책임자다. 200여 개 매장의 전등과 콘센트는 물론, 야외 가로등까지 그가 이끄는 팀의 소관이다. 쇼핑몰 규모가 크다 보니 온종일 매장들 사이를 안전모와 작업복 차림으로 누비고 다닌다.

지난해 9월 경 그가 2019년 폴리텍대 관련 기사 링크를 보내왔다. 기사에는 그가 ‘대형 은행 전산팀에서 30년간 일한 고액연봉자로, 한국폴리텍대에서 기술을 배우며 인생 2막을 꿈꾸는 사례’로 등장했다. 그 뒤 실제로 2020년 전기기사 자격증을 땄고 전기안전관리자로 변신해 인생 2막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퇴직 1년도 안 돼 이뤄낸 놀라운 변신. 그 비결이 궁금했다. 13일 그의 일터를 찾았다.

준비없이 맞은 명예퇴직
그는 대학에서 계산통계학을 전공한 뒤 1989년 한일은행 전산부에 입사해 금융전산 개발의 한 우물을 팠다. 그 동안 은행 간판은 ‘한일’에서 ‘한빛’, ‘우리’로 바뀌었다. 최종 소속은 우리은행에서 IT 부분이 분사된 우리에프아이에스(WFIS)였다.

2019년 3월말, 55세로 명예퇴직할 때 그의 인생계획에는 오로지 ‘귀향’만 있었다. 고향에 내려가 홀로 계신 어머니와 살며 옛 친구들과 어울리고 흙냄새도 맡는 전원생활을 꿈꿨다. 퇴직 바로 다음날 고향인 전남 영암으로 내려갔지만 행복은 잠시, 두달도 안 돼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왔다.

“어머니가 제 눈치를 보신다는 것. 제가 어머니 자유를 방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어머니는 시골생활을 하며 제가 망가질 것을 염려하셨고 절 내쫓다시피 올려보내셨지요.”

퇴직을 전후해 많은 사람이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면서도 막막해한다. 귀향 계획이 틀어졌을 때부터 그에게도 막막함이 찾아왔다. 부동산 공부를 한다면서 중개업소를 기웃거렸고 아파트 가격동향 조사를 한다며 등산복 차림으로 경기도 일대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배전반 점검 중. 화재 예방을 위해 먼지가 쌓이지는 않았는지, 전선이 탄 흔적은 없는지 수시로 확인한다. 그의 일터에만 이런 배전반이 300개 이상 있다고 한다. 의왕=서영아 기자 sya@donga.com


폴리텍과의 만남
그 무렵 전철에서 성남 폴리텍대의 ‘신중년특화과정’ 모집공고를 보게 됐다. 만 40~65세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직업훈련을 통해 자격증 취득과 재취업을 지원해준다고 했다. 무작정 성남시청을 찾아갔다. 6월부터 3개월간 전기기술 교육을 받는 야간반에 들어갔는데, ‘신세계’가 열린 느낌이었다.

“공부와 실습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새로운 인간관계도 즐거웠습니다. 25명이 함께 수강했는데 30대부터 60대까지, 해외영업사원, 치킨집 사장님, 시립교향악단원, 택배기사 등 전직이 다양했어요. 과거에 무슨 일을 했건, 새 직업을 얻는다는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렸죠. 직장시절엔 몰랐던 인간적인 감정을 느낀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

그해 12월까지 △승강기 기능사 △소방안전관리자(1급) △전기기능사의 3가지 자격증을 땄다. 교육이 끝나고 동기들은 하나둘 새 직장을 찾아 떠났지만 그는 좀더 난이도가 높은 전기기사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했다. 선배들 사이에서 ‘따놓으면 평생 먹고 산다’고 불리는 법정자격증이다. 1년에 4번 시험이 있는데 합격률은 8~30%대 정도다.

2019년 폴리텍 성남캠퍼스 교육생 시절. 전기배선 실습 중이다. 폴리텍 제공
2019년 폴리텍 성남캠퍼스 교육생 시절. 전기배선 실습 중이다. 폴리텍 제공
2019년 3개월 교육과정을 마친 ‘수료식’ 날을 기념해 찰칵. 이때보다 5년 흐른 요즘 얼굴이 더 좋아보이기도. 이정균 씨 제공
공부를 하면서 뒤늦게 자신에 대해 재발견하고 당연히 여겼던 것들에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예컨대 난생처음 이과를 전공하길 잘했다고 생각했고 무심코 따놓은 자격증이 30여 년 만에 효자노릇을 하기도 했다.

“전기기사는 전공자가 아니면 따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그나마 저는 이과계여서 내용을 이해하기 쉬웠어요. 대학때(1986년) 따놓은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은 평생 쓸모가 없었는데 전기기사 응시자격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넓은 세상에 나와보니 자격증이 자신을 증명해주는 수호신이더군요.”

“코로나마저 내 공부를 도와줬다”
이 무렵 첫 취직도 했다. 당시 개원을 준비하던 용인 세브란스 병원의 전기설비관리직. 시설관리 하청업체 소속으로 근무하는 조건이다. 처음 면접에서는 보기좋게 탈락했다.

“나이는 많은데 경력이 전혀 없으니까요. 그런데 며칠 뒤 같은 구인광고가 또 뜨더군요. 성남 ‘고용복지 플러스센터’ 직원이 사정을 듣더니 회사 측에 전화를 해주셨어요. 그 덕에 시설관리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경력이 없다보니 남들이 기피하는 일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1년 반 동안 야간근무를 전담하며 경험을 쌓았다. 전기기사 시험을 준비하던 그에게는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 고마운 일자리였다.

“아침에 퇴근해서 밥 먹고 4시간 정도 자고 나면 오후 1시예요. 그때부터 밤 9시까지 공부할 수 있었죠. 사람 만나기 어려운 코로나 시대라는 점도 공부에는 도움이 됐죠. 게다가 선임근무자가 전기기술사 공부를 하는 분이어서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용인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그가 일하는 전기실이나 방재실은 보안상 공개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이정균 씨 제공
2020년 12월 31일 마침내 전기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듬해 8월엔 집과 가까운 현재의 직장으로 옮겼다. 자격증과 경력 덕에 취직은 쉬웠다. 15개월 정도 야간근무를 하다가 선임이 이직하면서 그가 주간 선임이 됐고 이달부터는 전기팀장까지 맡았다.

그는 지금 자신의 일에 만족한다.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재미있게 일하고 있고, 주변 평가도 좋다고 느낀단다.정년이 따로 없으니 일만 제대로 한다면 퇴직 걱정도 없다. 연 4000만원대 급여가 넉넉하지는 않지만 크게 부족하지도 않다. 4대보험도 보장된다.

“저처럼 이미 퇴직했고 자녀교육이 끝나 큰 돈 쓸 일 없는 경우 딱 좋은 직장이죠. 많이 움직이니 건강에도 좋아요. 예전 직장에서는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 하루걸러 직원들과 회식하고 소통하려 애썼어요. 부하직원들도 싫었을 텐데, 실은 저도 스트레스였죠. 하하.”

‘중요한 일’ 자부심 강하지만 사회적 대우 아쉬워
시설관리직은 음지에서 일하지만 건물을 관리하고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화재를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그 중요성 만큼 대우받지는 못한다고 느낀다.

“아무리 취업난이라고 해도 청년들이 이 직업은 기피하죠. 사회의 시선이나 대우가 좋지 않으니까요. 급여체계도 계약직처럼 돼 있어 호봉이 오르지 않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폴리텍대를 다니면서 행복해하고, 일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기뻐했어요. 하지만 시설관리 일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어요. 제가 아파트단지 전기팀장으로 자리를 옮기려 했는데 그것도 반대했습니다. 아파트 경비원이나 시설관리자들이 주민들에게 갑질 당하는 류의 뉴스들 때문에요. 월급은 더 받을 텐데, 못 옮기고 있어요.”

그의 말에 따르면 시설관리는 자격증이 요구되다보니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기도 어렵고 대형건물이 늘어나는 데 따라 일손이 부족해지면 보상 체계도 나아질 것이라고 한다.

쇼핑몰 내 카페에서 커피를 사는 사이 손님용 좌석에 앉았던 그는, “이곳에서 2021년부터 일했지만 손님석에 앉아보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사실 시설 안전관리는 무대 뒤 작업과 유사할 것이다. 커피 매장의 소음을 피해 그는 애완동물 동반자들의 식사용으로 설치된 무료 테이블로 안내했다.



전 직장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
코딩 열풍이 불고 ‘문송(문과 출신이라 죄송)하다’가 인사가 되는 시대다. 30여 년 간 전산직에서 일했고 프로그램 개발도 직접 해온 그가 전공 쪽에서 길을 찾지 않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경력 단절이죠. 제가 부장만 10년을 했어요. 사원 대리 과장 시절에는 프로그래밍을 직접 했고 누구보다 잘 할 자신이 있었죠. 하지만 부부장, 부장이 되면서 실무에서 멀어지고 프로그래밍에 대한 감이 떨어졌어요. 개인적으로 전산업종을 아예 떠나겠다고 결심한 계기도 좀 있습니다.”

전 직장 마지막 프로젝트인 은행 차세대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완료시기가 약간 늦어졌는데 그 책임을 혼자 떠맡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씁쓸한 경험을 했다.

“예산 3000억 원, 준비기간 3년이 넘는 큰 프로젝트였어요. 부장급인 저 혼자 막판에 프로젝트에서 배제됐어요. 더 큰 책임이 있는 분들은 끝까지 남아 프로젝트 성공에 대한 축하를 받았지만, 저는 뒷방으로 물러났죠. 제게는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다시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지도, 그쪽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않게 된 거죠.”

직장생활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조직에서는 위로 올라갈수록 ‘책임’의 무게도 커지지만 뭔가 삐끗했을 때의 희생양은 권력과 책임의 오묘한 밀당 속에 정해지게 마련이다.

“두드려라, 그러면…”
인생 2막을 잘 살아내는 분들 중에는 높은 자존감의 소유자가 많다. 남들의 이목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움직인다. 자존감이 높으니 어쩌다 남의 도움을 받게 되면 오히려 선의로 받아들이고 적극 임한다. 이런 열린 자세와 적극적 노력이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다.

이 씨가 퇴직 후 빠른 시간에 새 생활의 리듬을 찾기까지, 그는 열린 마음으로 폴리텍 수강을 시작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배웠다. 취직 면접에서 탈락하자 고용복지 센터 직원의 도움을 얻기도 했고 직장 선임자의 도움을 공부에 십분 활용했다.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야간근무 전담이 됐지만 오히려 자격증 공부의 기회로 삼았다.

“별 기대가 없었는데 정부나 지자체가 의외로 많은 도움을 주더군요. 결국 본인이 얼마나 열린 자세로 적극적으로 임하느냐에 달린 것 같아요. 막막해하는 퇴직자들에게도, 취업 때문에 힘든 청년들에게도 이런 길도 있다고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문과출신으로 30대에 무직이던 친구 조카가 제 조언에 따라 자격증을 따고 취직했어요. 친구가 고맙다며 커피를 사는데, 보람이 느껴지더군요.”

이 씨가 수료한 한국폴리텍 ‘신중년특화과정’은 2018년 개설돼 매년 60% 안팎의 취업률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 상반기 통계를 보면 취업률은 62.8%였다. 훈련생은 50대가 40.5%로 가장 많고 60대 35.8%, 40대가 23.7%다. 다만 취업률은 40대(73.9%), 50대(64.7%), 60대(55.8%) 순으로 아무래도 젊을수록 높다. 지난해 기준 전국 35개 캠퍼스에서 2500명을 교육했다. 교육비와 실습재료비 등이 전액 무료이고 일정액의 훈련수당과 교통비를 지급한다.

폴리텍 성남캠퍼스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교육생들이 전기배선 실습을 진행하고 있다. 폴리텍 제공

의왕=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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