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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단독]정원 못채운 학과 163곳중 162곳 지방대, AI-배터리과도 미달

입력 2024-01-30 03:00업데이트 2024-01-30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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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수 공화국’의 그늘]〈하〉 N수 직격탄 맞은 지방대
대입 정원 못채운 학과 전국 163곳
이공계 첨단분야 학과들도 미달 사태… 재학생 반수 준비, 졸업하면 서울로
등록금 감소→교육 악화→미달 악순환… “상권도 무너져 양질의 일자리 필요”
23일 부산 금정구 부산대 정문 앞 건물 상가 1층에 임대 문의 광고가 붙어 있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와중에 N수를 해서라도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학생이 늘면서 지방대의 생존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부산=변영욱 기자 cut@donga.com23일 부산 금정구 부산대 정문 앞 건물 상가 1층에 임대 문의 광고가 붙어 있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와중에 N수를 해서라도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학생이 늘면서 지방대의 생존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부산=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부산 영도구에 있는 4년제 사립대 고신대는 지난해 운영 경비가 바닥나면서 의대 실습이 중단되고 강사 초청이 취소됐다. 건물 청소와 쓰레기 수거마저 중단되자 학생회에서는 “쓰레기는 봉투에 담아 집에 가져가 버려 달라”고 공지하기도 했다. 신입생 감소로 대학 재정이 악화돼 벌어진 일이었다.

이 학교는 2024학년도 정시모집 일반전형에서 예체능을 제외한 18개 학과 중 13개에서 지원자가 정원보다 적은 미달 사태가 빚어졌다. 23일 고신대 영도캠퍼스에서 만난 간호학과 22학번 김지원(가명) 씨는 “대학병원까지 있는 학교라 믿고 입학했는데 제대로 교육을 받고 졸업할 수 있을지 불안감이 크다”고 했다.

29일 동아일보와 종로학원이 2024학년도 대입 정시 일반전형 원서접수 경쟁률을 공개한 190개 대학 4889개 학과를 분석한 결과 지원자가 정원보다 적은 미달 학과가 모두 163개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비수도권 162곳, 수도권 1곳으로 비수도권이 99.4%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학령 인구 감소와 함께 N수를 해서라도 수도권 대학에 가려는 학생이 늘어난 것이 지방대의 생존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 수도권 접근성 떨어질수록 미달 많아
미달 학교는 서울에서 접근성이 떨어질수록 많았다. 호남의 경우 광주, 전북, 전남 12개 대학에서 90개 학과가 미달이었다. 전남 무안군에 있는 4년제 사립대 초당대 글로벌혁신대학의 경우 127명 모집에 단 1명이 지원했다. 이 대학 치위생학과는 24명을 모집했는데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지원자가 워낙 없으니 어떤 학과가 왜 미달이 됐는지 이유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손을 놓다시피 한 상태”라고 말했다.

지방대의 위기는 국립대와 사립대를 가리지 않는다. 한때 경북대와 더불어 ‘지거국(지방 거점 국립대) 투톱’으로 불렸던 부산대는 2024학년도 정시 경쟁률이 3.93 대 1이었다. 입시계에선 정시 지원 가능 횟수가 1인당 3회라는 점을 감안할 때 경쟁률 3 대 1 이하는 ‘사실상 미달’로 본다. 부산대는 이를 간신히 넘긴 수준이다.

23일 부산 금정구 부산대 인근에서 만난 부동산 중개업자는 “이 동네 원룸이 월 50만 원가량이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인 3년 전부터 45만 원가량으로 내렸음에도 여전히 빈방이 많다”고 했다. 또 “1년 단위 계약이 보통인데 최근에는 반수를 염두에 두고 6개월 계약을 문의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대학의 위기는 지역 상권의 위기로도 번진다. 부산대 인근 상가에는 ‘공실’ ‘임대 구함’ 등이 적힌 종이가 여럿 붙어 있었다. 건물 하나가 통째로 비어 있기도 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4∼6월) 부산대 앞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4.5%에 달했다. 부산대 앞 서점 주인은 “2학년 교재 판매량이 1학년 교재 판매량보다 10% 정도 적다. 신입생들이 중도에 반수니 재수니 해서 서울로 떠나버리니 교재 판매량도 줄어드는 것”이라고 했다.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4학년 김석민(가명) 씨는 “부산에서 취업하면 첫 월급이 280만∼300만 원인데 서울은 400만∼500만 원”이라며 “재학생 중 상당수는 반수를 준비하고, 반수를 못 한 졸업생들은 졸업 후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간다”고 했다.

● “이공계도 취업률도 소용없다”
취업에 유리한 것으로 알려진 이공계 학과들도 지방에선 맥을 못 췄다. 광주 호남대 인공지능(AI)융합대학은 114명 모집에 70명만 지원했다. 전남 나주시에 있는 동신대 배터리공학과는 27명 모집에 2명, 컴퓨터학과는 27명 모집에 13명만 지원했다. 경북 구미시의 경운대 소프트웨어융합계열도 51명 모집에 지원자는 8명에 그쳤다.

경남대 관계자는 “신소재학과, 환경에너지공학과 등 공대 학과 정원을 줄이고 있다”며 “우리 학교 공대는 창원산업단지 인력을 배출하며 지방 경제를 이끌어 왔었는데, 이제는 지원자가 없어 정원을 채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대학에서 학생 수는 곧 등록금 규모다. 지원자가 적어 정원을 못 채우면 등록금 수입이 줄고 교육의 질이 저하되면서 다시 재학생 이탈로 이어진다. 대학의 위기는 지역 인재 유출과 지역 상권 위기로도 이어지며 지역 소멸을 가속화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방대를 살리기 위해 지방대 한 곳당 5년간 1000억 원을 지원하는 ‘글로컬 대학’ 10곳을 지난해 11월 선정했다. 그런데 10곳 중 5곳은 2024학년도 정시 경쟁률이 지난해보다 오히려 더 떨어졌다. 글로컬 대학에 선정되고 막대한 지원금을 받게 됐음에도 신입생이 외면한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 재정 지원을 늘리는 방식만으로 지방대 위기를 해소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신대 관계자는 “지방대 위기의 근본 이유는 지방대를 졸업한 학생들이 취업할 수 있는 고소득, 고연봉 일자리가 지방에 드물기 때문”이라며 “결국 지방에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야 지방대도 살아날 수 있다”고 했다.

‘N수 공화국’의 그늘

부산=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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