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내용 “보고 받았다”는 윤희근, 셀프수사 논란 키워 [기자의 눈/김기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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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핼러윈 참사]

김기윤·사회부
김기윤·사회부
“추가로 (압수수색을) 할 수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한 윤희근 경찰청장은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의 집무실과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했느냐’는 의원들의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한 의원이 특수본이 수사 중인 용산서 정보과장·계장의 문건 삭제 의혹을 추궁하자 “정보과장이 삭제 지시를 했다고 보고받았다”고 했다.

이처럼 윤 청장은 이날 여러 차례 특수본 수사 내용에 대해 ‘보고받았다’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윤 청장의 발언대로 특수본은 다음 날인 8일 이 전 서장의 집무실과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했다.

특수본은 1일 출범 당시 ‘수사 주체와 대상이 같은데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에 “독립기구여서 경찰청에 보고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윤 청장도 “독립적 특별기구를 설치해 투명하고 엄정하게 사안의 진상을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경찰청장, 서울경찰청장 등 지휘부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나온 윤 청장의 발언은 ‘특수본이 청장에게 수사 상황을 보고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과 특수본은 ‘완전한 오해’라고 해명한다. 특수본 관계자는 “참모들과 논의 과정에서 언급된 기사 내용이나 전망 등을 ‘보고받았다’고 표현한 것 같다”고 했다. 경찰청 관계자도 “보도 등을 통해 파악한 내용을 습관적인 화법상 ‘보고’로 말한 것 같다”고 했다.

윤 청장이 정말 특수본의 수사 내용을 보고받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윤 청장의 발언으로 특수본에 파견된 후배 경찰 514명의 수사 독립성이 한층 더 의심받게 된 것은 분명하다.

이태원 핼러윈 희생자 유족과 국민들은 무엇보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특수본은 한 점 의혹 없는 철저한 수사로 ‘셀프 수사’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상이 누구든 법과 원칙에 맞게 처리해야 한다.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만큼 윤 청장도 언행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김기윤·사회부 기자 pep@donga.com
#윤희근#셀프수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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