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계철선[임용한의 전쟁사]〈413〉

  • 동아일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암살당했을 때, 누구도 이 사건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잘해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를 치고 보스니아, 불가리아 등 이해관계가 복잡한 발칸의 나라들이 얽혀 들어갈 전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막상 도화선에 불을 붙이자, 어둠 속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던 연결망이 드러났다. 유럽 각국은 상호방위조약, 동맹조약 등으로 서로 간 복잡한 비밀 협정을 맺고 있었다. 그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도화선이 타들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 장면만 보면 마치 누군가가 무심코 저지른 방화가 전 유럽을 태워버린 것 같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군주정, 식민지 체제, 산업화, 어설픈 민주주의, 유럽 내 세력 판도 변화와 세계 시장의 변화 등 19세기에 이상적이고 발전적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제도가 재부팅을 요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강대국이 세계 곳곳을 식민지화하면서 전 지구가 경제와 이권으로 얽히고 있었다.

이때의 글로벌 경제는 규모나 정도에서 지금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식민지 경제라는 불공정성 때문에 그 의미를 축소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당시 국가 간 경제적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던 건 사실이다.

미국-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봉쇄는 전 세계 경제의 혈맥을 인질로 잡고 있다. 미국은 이란의 분열을 노렸고, 이란은 호르무즈를 이용해 세계의 분열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응수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미국을 제외한 강대국들은 전쟁 시작부터 이런 위험성을 알고 개입에 신중하다. 아직 세계대전의 위험이 보인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글로벌 네트워크에 새겨진 균열이 이번 사태로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떤 분쟁이 발생할지 모르지만, 그때마다 전 지구에 도사린 크레바스(틈)는 지속적으로 자극을 받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유럽 동맹조약#식민지 체제#글로벌 경제#미국-이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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