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피해 0~6세 돌봄 여전히 미비… 보육교사 채용부터 ‘삐걱’

이소연 기자 , 김윤이 기자 , 박종민 기자 , 이정민 인턴기자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4학년 입력 2021-10-13 03:00수정 2021-10-13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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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사망 1주기]피해 아동 ‘즉각분리제-영유아 전담쉼터’ 점검
3월말부터 ‘즉각분리’ 시행됐지만… 분리된 36명중 3명만 ‘가정 위탁
7월 첫선 ‘영유아 전담쉼터’는… 정원 ‘최대 7명’인데 2명만 머물러
11일 서울 노원구의 한 주택가에 마련된 ‘학대 피해 영유아 전담 쉼터’에서 보육교사가 2세 아이의 손을 씻기고 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부모에게 학대피해를 당한 2세 아이 한 명이 4월에 즉각 분리조치가 돼 저희 쉼터에 왔어요. 마음 같아선 이 아이만 품에 안고 돌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가 없어요. 쉼터에는 학대의 상처가 깊은 다른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도 많아요.”

학대피해 아동쉼터 보육교사인 A 씨는 1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A 씨가 돌보는 학대피해 아동은 2세 영유아를 포함해 모두 6명. 주간에는 보육교사 2명이 함께 일하지만 쉼터에 영유아 1명이 들어오면 다른 아이들을 챙기기 어려워 ‘돌봄 사각지대’가 생긴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10월 13일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16개월 입양아 정인이가 숨진 지 1년. 정부는 이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학대 의심 신고가 2회 이상 접수된 아동 등을 아동쉼터 등에 일시 보호하는 ‘즉각 분리 제도’를 3월 30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세 차례 학대 의심 신고를 받고도 가해 부모로부터 분리하지 않아 정인이를 구하지 못했다는 반성에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학대피해를 받고 있는 0∼6세 영유아들이 가정에서 분리된 뒤에도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어 법 개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영유아들의 경우 일반 가정에서 일대일로 집중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전문위탁가정’을 확충해 전담 보호하겠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정작 위탁가정에 보내진 아이들은 제도가 시행된 3월 30일부터 6월 29일까지 전체 36명 가운데 단 3명에 그쳤다. 복지부 관계자는 “야간에 학대피해가 발생해 분리 조치된 경우 전문위탁가정이 마련돼 있어도 일반 민간 가정에는 긴급하게 연락을 할 수가 없다. 당직자가 상주하는 시설 등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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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숙 국민의당 의원실이 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즉시 분리된 0∼6세 영유아 36명 가운데 33명은 영유아 수십 명이 함께 지내는 보육시설이나 0∼18세 학대피해 아동 6, 7명이 공동 생활하는 쉼터로 보내졌다.

서울 노원구는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7월 학대피해 영유아 전담 쉼터를 전국 최초로 열었다. 하지만 보육교사를 구하기 어려워 아이들을 더 받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처지다. 쉼터 정원은 최대 7명이지만 현재 3세와 2세 남아 2명만 머물고 있다. 보육교사를 최대 5명까지 채용할 수 있게 예산은 마련됐지만 지원자가 없어 주·야간에 교사 1명씩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영유아의 경우 교사 1명이 돌볼 수 있는 아이는 2명 정도다.

시설장 김모 씨는 “지난달 다른 지자체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이 2세 아이를 돌봐 달라고 요청했지만 인력이 부족해 ‘죄송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교사 충원 공고를 세 차례나 냈지만 아직 지원자가 없다고 한다. 업무는 과중한데 임금은 일반 쉼터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성별로만 구분된 현행 학대피해 아동쉼터에서는 영유아나 장애아 등이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박명숙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령과 장애, 학대 유형 등 특성을 반영한 쉼터가 확충돼야 한다”며 “영유아 전담 쉼터를 확충하고 교사 임금을 높여 전문 보육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영유아들을 일반 가정에서 일대일로 전담해 돌보는 전문위탁가정을 확충하는 게 근본적인 대안”이라며 “현재 100가구 정도인 전문위탁가정을 두 배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1인시위 하고 진정서 제출… “우리라도 기억해줘야죠”
‘제2의 정인이들’을 위해… 아동학대 방지 활동가로 뛰어든 엄마들
“학대로 고통받는 많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계속 도울것”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소속 활동가들이 ‘정인이 사건’ 등 아동학대 사건 담당 재판부에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기 위해 작성한 진정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제공
서울 양천구에 사는 박정임 씨(47)는 아침에 초등학생인 두 아이를 등교시키고 나면 서둘러 집을 나선다.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의 양부모 사건 2심 재판이 진행 중인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으로 향한다. 박 씨는 법원 정문에 도착하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정인’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꺼내 든다. 정인이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1인 시위를 한 뒤 오후에 직장으로 출근한다.

박 씨는 정인이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난 지금 ‘제2의 정인이들’을 위해 싸우는 아동학대 방지 활동가로 활약하고 있다. 틈틈이 다른 아동학대 사건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지법 등으로 ‘원정’을 간다. 박 씨는 “아이들이 겪었을 고통을 떠올리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게 더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전북 전주에 사는 세 아이의 엄마 이모은 씨(39)는 최근 계부에게 성폭행 등 학대를 당해 숨진 20개월 영아 사건과 20대 부모의 학대로 숨진 아동 사건 재판에 참석해 재판 내용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카페 등에 올리며 다른 엄마들과 공유하고 있다. 이 씨는 “생전 알 일이 없던 법률지식을 요즘 공부하고 있다. 사건번호를 알아내 다음 공판 일정을 체크하는 게 일상이 됐다”고 했다.

서울에 사는 워킹맘 박제이 씨(39)는 아이들을 재운 뒤 잠들기 전까지 아동학대 사건 재판부에 보낼 진정서를 쓴다. 직장 때문에 시위에 활발하게 참석하기 어려워 진정서로나마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최근 1년 사이 박 씨가 “가해자들에게 엄중한 처벌을 내려 달라”며 법원과 검찰에 제출한 진정서가 100통이 넘는다. 얼마 전에는 “정인이 사건 항소심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내용의 벽보를 만들어 집 근처에 붙이기도 했다.

이들은 주변에서 “오지랖 아니냐” “그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느냐”는 등의 반응을 종종 접한다. 이 씨는 “내 작은 행동이 뭔가를 크게 바꿀 수는 없겠지만 우리라도 이 아이들을 잊지 않아야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논의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씨 역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 사회 구성원이 되도록 돕고 싶다”며 “정인이뿐만 아니라 아동학대로 고통받는 많은 아이들을 위해 계속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이정민 인턴기자 이화여대 사회학과 4학년
#정인이 사망 1주기#아동학대#즉각분리제#영유아 전담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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