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근家 떵떵, 우린 고통”…31년만에 다시 법정 선 형제복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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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10월 15일 16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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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정 앞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비상상고 재판 참고인 진술 등을 마치고 나와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0.10.15/뉴스1 © News1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정 앞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비상상고 재판 참고인 진술 등을 마치고 나와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0.10.15/뉴스1 © News1
“인간의 권리는 평등하다고 했습니다. 물론 박종철 군은 대학을 다니는 지성인이고 저희들은 부랑인 수용소에 갇혀 있는 부랑인입니다.”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던 A씨는 1987년 작성한 진정서에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에 밀려 형제복지원 사건이 잊히는 것에 대한 서러움을 적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형제복지원 원장 고(故) 박인근씨는 긴 재판 끝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박씨는 2016년 사망했지만 생존한 피해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31년 만에 다시 법정에 섰다.

15일 대법원에서 형제복지원 원장 고(故) 박인근씨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한 비상상고 사건 재판이 열렸다.

형법 제 20조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제복지원은 당시 정부훈령에 따라 운영됐고, 이를 이유로 박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날 검찰 측은 형제복지원 운영이 위법하지 않다고 본 법원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경순 대검 공판송무부장은 ”형법 제20조에서 정한 ‘법령에 의한 행위’는 합법·합헌에 따른 것을 의미한다“며 ”(훈령은) 신체·거주의 자유를 침해한다. 피해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해 기한 없이 강제수용하게 한 것은 과잉금지 원칙 및 적법절차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해자들 감금이 내부무 훈령에 따라 정당하다고 본 것은 형법 제20조를 잘못 해석·적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피해자측 대리인으로 출석한 박준영 변호사는 ”1987년 5월말 형제복지원이 폐쇄되면서 3000명이 넘는 수용자들은 어떠한 사과나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뿔뿔히 흩어졌다“며 ”일부는 다른 시설로 보내졌고 새 시설에서 강제노역과 구타에 시달리다 사망했다“고 말했다.

이어 ”형제복지원에서 풀려난 이들로 인해 부산일대가 부랑인들의 소굴이 됐다는 부정적 여론때문에 피해자들은 피해를 주장하지 못하고 형제복지원 출신임을 감췄다“며 ”지워진 피해자들은 우리 주변에서 사라졌고, 일부는 지금도 여전히 장애인수용시설, 정신병원, 노숙인시설 어딘가에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인근 일가는 떵떵거리며 잘 살았는데 우리가 힘들게 살면 공평하지 않다. 투병중인 피해자들이 죽기 전에 따뜻한 밥 한끼라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해결되면 피해자들이 함께 제주도가서 유채꽃밭에서 하늘을 보고 싶다“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전달했다.

박 변호사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를 어떻게 기억하고 위로하는가에 따라 새로운 기억과 미래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 고통이 완화되고 치유될 수 있다“며 ”이는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온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에 대한 사회적 참회“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날 ”이 사건은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고 사회적,시대적 아픔이 있는 사건“이라며 ”대법원으로서도 신중하게 재판하고 있다“고 밝혔다.

형제복지원은 부랑인 선도 명분으로 내무부(현 안전행정부) 훈령 410호(1987년 폐지)에 따라 1975~1987년 운영돼 장애인, 고아 등 3000여명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강제노역과 학대를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는다. 복지원 공식집계로만 이 기간 513명이 사망했다.

박씨는 부랑인들을 울주작업장에서 강제노역에 종사시킨 혐의(특수감금)로 기소됐으나 법원은 수용이 정부훈령에 따른 것이므로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며 무죄판결했다.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와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차례로 박씨에 대한 당시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상상고를 할 것을 권고했고, 문무일 검찰총장은 이를 수용해 2018년 11월 비상상고 신청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비상상고는 대법원에서 단심제로 진행된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과거 판결에 법령위반 사실이 인정되면 원 판결을 파기할 수 있으나, 그 효력이 박씨에게 미치진 않는다.

형사소송법이 비상상고 사건의 원심판결이 유죄판결 등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때에만 2심 재판을 다시 하도록 하고, 그 외에는 비상상고 판결 효력이 미치지 않도록 정하고 있어서다.

다만 원 판결이 파기되면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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