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청이 지난 7일 승격 후 처음으로 받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문제로 여야 의원들로부터 쓴소리를 들었다. 보건복지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급기야 적정 온도를 벗어난 독감백신이 정말 안전하다면 복지부 장관과 질병청장이 해당 백신을 먼저 접종하라는 야당 의원 요구까지 나왔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국민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지만, 오는 12일 접종 재개일 전까지 일부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수류탄 머리 위에 놓고 잘 수 있나”…독감백신 폐기 놓고 여야 온도차
복지부와 질병청은 이날 국감에서 국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상온 노출 독감백신을 전량 폐기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국가조달 백신 입찰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노출되자, 박능후 장관은 “정부 차원에서 개입하겠다”고 답했다.
야당 의원들은 독감백신 안정성과 유통 문제를 꼬집으며 복지부와 질병청을 몰아붙였다. 특히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은 문제가 된 독감백신 전체를 폐기할 것을 거듭 요구했다. 독감백신에 대해 국민이 안심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강기윤 의원은 “상온에 노출된 독감백신 48만개(도스)만 폐기할 게 아니라 전면적으로 폐기해야 한다”며 “복지부 장관은 안전하다고 하지만 국민은 안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류탄은 안전핀을 뽑지 않으면 안전하지만, 그렇다고 머리 위에 두고 잘 수 있느냐”며 “안전한 것보다 국민이 안심하는 게 필요하며, 432억원 정도면 독감백신 500만개(도스)를 새롭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기윤 의원은 추가 질의를 통해서도 “국민을 어떻게 설득하고 안심하면 좋을지 고민해달라”고 주문했다. 강기윤 의원은 이날 오전 국감에서도 백신 품질에 문제가 없다면 복지부 장관과 질병청장부터 접종해야 하며, 자신도 맞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봉민 국민의힘 의원은 국가조달 독감백신 입찰 과정의 문제점을 파고들었다. 독감 제조사들이 다른 업체를 들러리로 내세워 사업을 따낸 담합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전봉민 의원실이 조달청 나라장터에 게재된 ‘질병관리본부 올해 인플루엔자 백신 구매’ 현황을 확인한 결과, 신성약품을 포함한 2순위 8곳의 투찰금액이 1084억9205만7800원으로 원 단위까지 일치했다.
여당 의원들은 상온에 노출된 독감백신에 대한 국민 우려가 크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폐기보다는 접종을 진행하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이는 독감백신을 지금부터 생산하더라도 수개월이 걸리는 상황을 고려한 발언이지만, 국민 여론이 어디로 흐를지 아직은 예측하기 어렵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학적 기준을 무시한 채 과도한 불안감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며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며, 국민이 불안하지 않게 잘 대처해달라”고 주문했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정부가 가혹한 조건에서 실험한 결과를 발표했는데도 이를 믿지 못한다고 흔들어버리면 국민이 어떻게 백신을 접종하느냐”며 “여야가 한목소리로 국민을 설득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듭된 여야 의원 질의에 박능후 장관은 “해당 독감백신을 접종하겠다”고 말했다. 국민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정무적인 발언으로 풀이된다. 반면 정은경 질병청장은 전문가 회의, 품질검사 결과 등 과학적인 설명에 치중하면서 의원들을 설득했다.
◇“정치방역” 야당 의원들 코로나 저격…박능후 “방역 새틀 짜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성과에 대해 여야 의원들 인식차는 더욱 두드러졌다. 특히 일부 야당 의원들은 정부의 방역이 정치적이며, 성과를 알리는 데만 급급하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원내대표)은 방역당국이 지난 3일 개천절 때 소규모 차량집를 막은 것은 방역적으로 그 근거가 약하고 정치적으로도 편향된 결정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관광지와 식당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괜찮고, 정부를 비판하는 차량집회를 막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 데다 정치적 결정이라는 주장이다.
주호영 의원은 “지난 추석연휴 때 제주도에 30만명이 갔고 (인천) 소래포구에 사람이 빽빽하게 모인 사진 보도가 나왔다”며 “제주 시내 식당에 빈 의자가 없었고, 지하철으로 출·퇴근할 때도 복잡한데 그 위험성은 왜 관리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주호영 의은 또 K방역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 어떤 특징과 차이점이 있는지 질의했다. 이는 우리나라보다 방역 성과가 좋은 국가로 대만과 뉴질랜드를 꼽은 박능후 장관에게 K방역을 K팝처럼 독자적인 성과를 인정받은 것으로 보기 어렵지 않느냐는 취지의 발언으로 해석된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대표 석방을 요구하는 차량집회에는 2500대가 넘게 모인 반면 지난 3일 개천절 차량집회는 10인 이상을 제한한 것은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은 방역당국이 코로나19 유행 초기에 해외 입국자를 차단하는데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유행이 확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여러 차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해 국민에게 안심해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는 것이다.
서정숙 의원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5월 초 발생한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을 꼽았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정부의 방역 조치를 보면 일관성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코로나19 유행이 10개월째 이어지면서 실외 마스크 착용 등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피로도를 지적하는 여야 의원 질의가 많았다. 코로나19 방역을 치료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장기간 이어진 거리두기 피로도를 고려한 발언이다.
이 같은 질의에 박능후 장관은 “방역과 경제가 균형을 이루면서 지속가능한 새로운 방역 틀을 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능후 장관이 밝힌 새로운 방역 틀은 거리두기 세분화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자영업자 고통을 경감하고 국민 피로도를 줄일 수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 세분화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편 이날 국감에서는 저출산, 강력 범죄자의 의사면허 유지 문제, 아동학대 대책, 서울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 코로나19 이후 취약계층 지원, 우울감과 불안함을 포함한 ‘코로나 블루’ 대책 등의 질의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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