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다칠까봐… 시위때 교문 앞에 누운 ‘평생 교육자’

박재명 기자 , 최고야 기자 입력 2020-05-26 03:00수정 2020-05-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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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현승종 前국무총리
27세에 교수 된 뒤 68년간 헌신
노태우 정부서 중립내각 지휘… 당시 만73세 최고령 총리 기록
인촌기념회 이사장 13년간 맡아
노태우 정부 때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내고 1993년 2월 28일 강원 춘천시 자택에 돌아온 현승종 전 국무총리가 환영 나온 주민들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동아일보DB
25일 별세한 현승종 전 국무총리는 평생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27세의 나이로 고려대 법대 교수가 된 뒤 95세로 인촌기념회 이사장직에서 퇴임할 때까지 70년 가까이 한국 교육현장을 지켰다. 일주일 후에는 자신의 삶을 정리한 첫 번째 자서전 ‘인생회상’이 출간될 예정이었다.

1919년 평안남도 개천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평양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43년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졸업했다. 1946년부터 28년 동안 고려대에 몸담다가 1974년 성균관대 총장에 취임했다. 교육계를 떠난 건 5개월에 불과했다. 노태우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낸 1992년 10월∼1993년 2월이다. 취임 당시 73세로 지금까지 최고령 총리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관권선거 의혹이 커지자 한림대 총장이던 고인을 발탁했다.

처음에는 총리 제안을 고사했다. 하지만 정부 측의 요청이 계속되자 결국 수락했다. 당시 고인은 “평생 교육에만 종사한 사람으로 정치나 행정 같은 다른 영역의 문제를 극복해낼지 자신이 없어 완강히 거부했으나 국가원수가 두 번이나 불렀고, 더 이상 거부하면 (국가원수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수락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교육자로서 오점을 남기지 않을 것”이라는 취임 일성도 화제였다. 공명선거를 제1목표로 내세웠던 고인은 약속대로 그해 12월 치러진 14대 대통령 선거를 안정적으로 관리했다. 다음 대통령 취임까지 5개월 동안 내각을 이끌었다. 한국 정치사에서 처음 시도된 ‘중립내각 실험’이었다.


고인의 아들인 현선해 성균관대 교수는 “아버지는 생전에 1992년 대선을 공명선거로 치러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컸다”고 전했다. 지금까지도 정치권에서 책임총리, 거국내각을 이야기할 때 ‘현승종 중립내각’이 언급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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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로서 고인은 ‘겸손하지만 깐깐한 스승’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60년 4·19혁명 당시 고려대 학생처장을 지내며 직접 시위에 참여해 학생들을 보호했다. 1961년 고려대 학생들이 군사정부 반대 시위를 하다가 경찰과 대치하자 학생들 앞에서 “나를 밟고 지나가라”며 바닥에 누웠다. 고인의 제자인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은 “학생들이 다칠까 봐 스승으로서 그렇게 용기를 내 대규모 구속을 막은 것”이라고 회고했다. 학생처장 시절 학생들에게 교복을 입으라고 하면서 본인도 교복을 입고 다닐 만큼 검소했다.

고인은 평생 교육계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2014년까지 인촌기념회 이사장을 맡았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 국민원로회의 공동의장, 한국유니세프 회장 등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윤해 춘해 선해 씨, 딸 군숙 씨, 사위 김동근 씨, 며느리 박영숙 이혜영 김미영(한림대 의대 교수) 씨 등이 있다. 유가족은 “고인의 뜻을 존중해 조문과 조의금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진정되면 추도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7일 오전 7시 15분. 02-3410-6989

박재명 jmpark@donga.com·최고야 기자
#현승종#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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