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서 키운건 단 ‘보름’…이후 33년의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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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7월 19일 09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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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보지 못해도 좋으니 제발 잘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사는지 소식만이라도 알고 싶어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금방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과 함께 관련 시설과 경찰서, 갓난 아이가 있다는 집은 무작정 찾아다녔다.

아이를 찾기 위해 남편은 직장을 그만뒀고 시아주버니는 조카를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끝내 듣고 싶었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3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난 16일 서울 중계동 한 카페에서 <뉴스1>이 만난 최혜정씨(58)의 이야기다. 생후 76일 된 아들을 잃어버린 최씨는 33년 동안 간직하고 있는 아들 김성근씨(1986년 실종·현재 만 33세)의 사진을 꺼내들며 가슴아픈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가을비가 내리던 어느 늦은 밤…불과 몇 분만에 사라진 아들

1986년 9월13일은 최씨에게 떠올리기 싫은 날이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기도 하다. 아직 가을의 초입이었지만 그날 따라 추적추적 내린 비 때문에 날씨가 쌀쌀했다. 오후 11시가 넘은 밤, 생후 76일 된 아들 성근이를 재운 최씨는 혹시라도 성근이가 감기라도 걸릴까 연탄불을 갈러 1층으로 내려갔다.

날씨가 습해서 그런지 연탄불이 잘 붙지 않았다는 최씨는 몇번의 시도 끝에 연탄불을 갈고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최씨는 눈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얼어붙고 말았다. 성근이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최씨는 “정말 몇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바닥에는 포대기만 남아있었고 아기만 사라진 거죠.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요. 100m가량 떨어진 큰집에 아이가 없어졌다고 알리고 경찰에도 신고했지만 이미 아이는 사라진 뒤였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태어난지 76일된 아이가 혼자 이동했을 리 만무하다고 봤을 때 누군가 데려간 건 분명했다. 최씨는 그제서야 여러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연탄불을 갈 때 보일러실 맞은편에 있던 화장실에서 사람이 후다닥 나가던 소리가 생각난 것이다.

관련 증언도 이어졌다. 1층 슈퍼마켓 주인은 최씨가 연탄불을 갈 때쯤 도로에 서있던 검은색 승용차가 출발했다고 했고 최근 일주일 동안 낮선 여자 한 명이 동네를 배회했다는 구체적인 얘기도 꺼내놨다.

그 낯선 여성은 동네 공원에서 넋놓고 앉아있기도 했는데 그 공원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성근이의 집 구조가 훤이 보인다는 것도 최씨는 나중에 알았다.

최씨는 “아이가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나는 바람에 조금 아팠어요. 황달 증세도 있었구요. 그래서 병원에 2개월가량 입원해 있었는데, 잃어버린 날이 집에 온지 보름 정도 되는 날이었어요. 품에 데리고 있던 시간이 짧아 더 아쉽고 미안하죠”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직장도 그만두고 아이 찾아다닌 부모…“위장약을 달고 살았다”

성근이를 잃어버린 후 최씨와 남편인 김길환씨(62)는 인근에 갑자기 없던 아이가 생겼다는 다른 가족의 소문만 들어도 무작정 찾아나섰다.

또 김씨는 아이를 찾기에는 직장을 더이상 다니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곧바로 개인사업으로 직종을 바꿨다.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성근이를 찾았고 실종아동 전단도 수없이 붙였지만 결과는 없었다.

최씨는 “그날 이후 남편은 지금까지도 위장약을 달고 살아요. 무엇을 먹어도 답답했던 거죠. 지금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답답함이 풀어질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최씨 부부에게는 성근이를 잃어버린 1986년에 국가적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는 점도 불행이었다. 최씨가 당시 살던 상계동은 관할이 태릉경찰서였는데 대부분의 인력이 그해 열린 아시안게임 치안에 투입됐다.

또 군부독재 시절이었던 만큼 신문에 실종신고 하나 내는 것도 힘들었다. 최씨는 “당시 신문 한편에 아주 조그맣게 ‘아이를 찾습니다’라는 기사를 딱 한번 냈는데 별다른 연락은 받지 못했어요. 성근이를 데려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의 몽타주를 만들어 볼 생각도 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성근이를 찾진 못했지만 그 이후 부부는 성근이의 동생 둘을 더 낳았다. 세월이 흘러 성근이 바로 밑 남동생은 올해 12월에 결혼을 한다고 한다.

지금은 동생 둘 모두 장성했지만 어릴적 양육 과정이 쉽지 않았다. 실제로 최씨는 동생 둘을 키우면서 유모차 하나를 사지 않았다고 한다. 또 누가 데려가진 않을까 불안에 떨며 품안에서만 키웠기 때문이다.

최씨는 “동생 둘을 키우면서도 또 잃어버리진 않을까 항상 불안했어요. 그래서 밖에 데려나갈 때는 언제나 품안에 안거나 업어서 이동했어요. 유모차는 누가 공짜로 준다고 해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방에 있으면 잠시 방 밖으로 나올 때도 문을 잠그고 다녔어요”라고 설명했다.

◇“꼭 소식만이라도 알고 싶어요”…놓지 않는 희망의 끈

성근이가 부모 곁에 있었다면 이제는 어엿한 사내로 커 직장도 다니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됐을 수도 있을 나이다. 따라서 최씨는 성근이가 여전히 건강하게 잘 있다면 키워준 부모가 낳아준 부모는 아닐 거라는 사실 정도는 알지 않겠냐고 추측했다.

최씨는 이제까지 모든 상황이 원망스러울 법도 한데 그럼에도 자식 걱정이 앞섰다.

비록 성근이를 데려간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지만 지나간 세월을 감안하면 키운 정도 무시 못할 것이라고 최씨는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많은 충격을 받을 당사자는 성근이일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 발생하던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최씨는 “이제는 성근이가 어느 정도 컸을 나이니까 출생 과정 정도는 알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성근이를 데려간 사람도 이제는 진실을 말해주고 소식을 알려줬으면 합니다. 남편의 건강도 좋지 않거든요”라고 호소했다.

최씨 부부는 이사를 하긴 했지만 여전히 예전 집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다. 성근이의 큰 집은 여전히 예전 상계동 그 집이다. 동네도 많이 바뀌긴 했지만 예전 집 근처에 있던 상계동성당과 그 인근 소방서는 그대로다.

최씨는 “성근이는 저한테는 여전히 아기예요. 생후 2개월의 모습으로 남아있어요. 그래서 안전하게 잘 컸기를 항상 기도합니다. 남한테 피해주지 않고 좋은 사람으로 잘 자랐기를 바라요. 그래도 소식은 꼭 듣고 싶어요. 그 순간이 오기를 항상 희망합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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