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서신’ 표방 정부 비판 대자보, 처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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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4월 1일 16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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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전남 7개 대학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사칭해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 단체는 1990년대 해체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약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보수단체로 알려졌으며 서울과 강원도 등 전국 8개 시도의 대학에도 같은 내용의 대자보를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단체 SNS 갈무리)© 뉴스1
31일 전남 7개 대학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사칭해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 단체는 1990년대 해체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약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보수단체로 알려졌으며 서울과 강원도 등 전국 8개 시도의 대학에도 같은 내용의 대자보를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단체 SNS 갈무리)© 뉴스1
전남을 비롯해 전국 대학가에 ‘김정은 서신’을 표방한 정부 비판 대자보가 붙은 가운데 대자보를 쓴 이들을 처벌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1일 전남지방경찰청과 법조계에 따르면 ‘김정은 서신’ 표방 대자보 작성자와 게시자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판례는 패러디나 조롱 목적으로 이적표현물을 배포한 경우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은 2014년 북한의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의 SNS 게시물을 퍼날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2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박씨가 트윗·리트윗한 내용이 박씨가 해온 사회활동에 비춰볼 때 이적 목적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오히려 풍자를 하거나 조롱을 하려는 목적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015년에도 이적표현물을 자신의 블로그에 그대로 복사해 올렸다가 기소된 A씨에 대해서도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이적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무죄로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적표현물이라고 하더라도 이적 목적이 없었다면 무죄로 판단하는 셈이다.

국가보안법이 아닌 모욕죄나 명예훼손죄 위반 혐의도 검토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도 적용이 쉽지는 않다.

모욕죄는 기소를 위해서는 피해자의 신고가 필요한 친고죄이고, 명예훼손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 기소할 수 없거나 기소 중에 재판이 종료되는 반의사불벌죄다.

변호사 B씨는 “대통령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인정돼 모욕이나 명예훼손을 잘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본인이 고소하지는 않을테니 제3자가 고발을 해야 할텐데 고소·고발 없는 상태에서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 부담을 자초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대협과 김 위원장 이름을 빌어 대자보를 쓴 것에 대해서는 “허위사실을 적시해 (김 위원장이나 전대협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이론적으로 처벌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변호사 C씨도 “모욕죄나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 있지만 문 대통령이 처벌을 원하겠느냐”고 되물으며 “굳이 처벌한다면 학교 허가 없이 대자보를 붙인 것을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처리할 수는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전대협’을 도용했다고 하더라도 처벌이 쉽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판단이다.

경찰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발생한 사안이기 때문에 본청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며 “모욕이나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지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30일부터 이날까지 서울·부산·인천·대구·강원·경남·전북·전남 등 8개 시도 대학가에서 ‘남조선 학생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발견됐다.

대자보에는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 이 땅에 침투해 국가중요시설을 장악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가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적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더러운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추악한 이윤추구행위를 박살 내 사농공상의 법도를 세웠다’, ‘최저임금을 높여 고된 노동에 신음하는 청년들을 영원히 쉬게 해줬다’와 같이 문 대통령과 정부 정책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겼다.

대자보는 1990년대에 해체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약칭인 ‘전대협’을 그대로 사용하는 한 보수단체가 전국적으로 붙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 단체는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을 반어적 표현으로 비판하는 ‘문재인 대통령 왕 시리즈’ 대자보를 대학가에 붙였고, ‘이건 나라냐’란 주제로 촛불집회를 열기도 했다.


(광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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