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경찰’ 역대 가장 강조…‘공권력 약화’ 양날의 칼?

  • 뉴시스
  • 입력 2018년 12월 8일 16시 08분


코멘트
경찰이 ‘인권 경찰’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경찰 개혁 방안 일환으로 ‘국민 인권을 최우선으로 한 공권력 집행’을 내세운 데 이어 지난 7월 민갑룡 경찰청장 취임 이후에는 구체적인 정책을 속속 내놓으며 그야말로 ‘인권 드라이브’를 거는 모양새다.

다만 경찰 일각에서는 인권에 공을 들이는 건 환영하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자칫 현장에서 인권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정당한 법집행을 할 때마저도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권, 인권, 인권

경찰이 법제도 개혁 측면에서 수사권조정·자치경찰제를 추진 중이라면, 내부 정서적 개혁 측면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게 바로 인권이다.

이달 5일부터 전국 경찰서에서 시범 운영하는 ‘메모권 교부제’는 사건 관계인(피의자·피해자·참고인)의 방어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인권보호 조치 중 하나다. 경찰이 직접 메모장과 펜을 나눠주고 진술 내용을 필기할 수 있음을 고지하는 제도다.

경찰청장 자문 기구로 2005년 발족한 이후 사실상 큰 역할을 못한 경찰 인권위원회는 6일 신임 위원들을 위촉, 인권영향평가 자문 등 어느 때보다 확대된 업무를 맡게 된다.

큰 변화는 아니지만 국민 인권을 각종 제도로 보장해나감으로써 달라진 경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인권에 대한 일선 경찰관들의 의식도 높여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지난 3일 첫 공식 업무를 시작한 원경환 서울경찰청장이 취임 후 처음 진행한 치안 현장 방문에서 “인권을 경찰의 최우선 가치이자 행위규범의 표준으로 삼고 근무해달라”고 강조한 것 또한 경찰이 최근 인권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라는 분석이다.

◇적폐 청산이 인권으로

경찰이 인권에 이토록 무게를 두는 이유는 현 정권 출범 이후 진행된 ‘적폐 청산’과 관련이 있다. 경찰은 이 흐름에 발맞춰 지난해 8월 경찰청 산하에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고 ▲백남기 농민 사망 ▲용산 화재 참사 ▲쌍용차 파업 ▲밀양 송전탑 건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등 경찰에 의해 인권 침해 사태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사건들을 조사해왔다.

그 결과 조사위는 백남기 농민 사건, 용산 화재 참사, 쌍용차 파업 사태 당시 경찰이 과잉 대응을 해 인권 유린 사태가 벌어졌다며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경찰은 백남기 농민 건에 대해서는 사과했고, 용산·쌍용차 사태에 대해서는 “종합적 검토” 입장을 밝힌 상태다. 경찰 내부 의견과는 별개로 정권 차원의 움직임으로 인해 인권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기획통(通)인 민 청장이 취임한 지난 7월부터 경찰은 과거 경찰의 행태를 되짚어 보는 차원의 인권 행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접 제도를 만들어가는 쪽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민 청장 또한 공식석상에서 기회가 될 때마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국민을 위한 경찰이 되겠다”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다. ◇인권 강조하자 힘빠지는 공권력?

실제로 현장에도 이런 분위기가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해 9월 평화적 시위는 미신고 등 ‘사소한 흠’이 있더라도 경찰력 행사를 자제하라는 경찰개혁위원회 권고안을 수용했다. 경찰은 당시 “인권 친화적 변화”라며 “경찰이 강경 진압을 안 하니 시위대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라고 했다.

다만 현장에서 직접 업무를 봐야 하는 경찰관들은 온통 인권에 치중된 행보를 전적으로 긍정하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인권 보호의 중요성은 이해하면서도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부담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권으로의 무게추 이동이 자칫 공권력 약화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최근 벌어진 유성기업 노조원의 ‘임원 폭행’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경찰은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서도 노조원에 가로막혀 폭행을 제지하지 못했다. 또 피의자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못하는 등 법집행에 엉거주춤한 모습을 보였다는 게 알려져 비난을 자초했다.

한 경정급 간부는 “현재 경찰의 방향이 옳다고는 생각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경찰의 힘이 우스워지는 게 아닐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경찰도 구체적인 현장 대응 매뉴얼을 준비 중이다.

이와 관련해 민 청장은 지난 3일 출입기자단과 가진 정례 간담회에서 “경찰이 각종 현장에서 물리력을 행사할 때에 정리된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이 없었던 게 사실”이라며 “경찰 물리력 행사 기준과 관련 연구 결과에 대한 인권영향평가 등을 최종 검토해 지침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