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노인병원 37명… 안전이 질식당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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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세종병원 화재… 제천 참사 한달만에 또 참변
1층 응급실서 불길, 고령-중증환자 유독가스 덮쳐
스프링클러 없고 의료진 부족… 대피늦어 피해 커져

새카맣게 뼈대만 남은 병원 침대 26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1층 응급실 내부를 
소방대원들이 수색하고 있다. 건물 천장의 철골 구조가 뼈대만 남은 채 내려앉고 벽면은 검게 타 도저히 응급실로 보기 힘들 정도다.
 이번 화재로 37명이 사망했다. 대부분 거동이 불편한 고령 환자였다. 국제신문 제공
새카맣게 뼈대만 남은 병원 침대 26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1층 응급실 내부를 소방대원들이 수색하고 있다. 건물 천장의 철골 구조가 뼈대만 남은 채 내려앉고 벽면은 검게 타 도저히 응급실로 보기 힘들 정도다. 이번 화재로 37명이 사망했다. 대부분 거동이 불편한 고령 환자였다. 국제신문 제공
화마(火魔)에 쓰러진 37명 중 30명은 70대 이상 노인이었다. 대부분 거동조차 힘든 상태였다. 이들은 병실 또는 화장실에 있다가 제대로 피하지도 못한 채 유독가스에 질식했다. 일부는 낙상을 막는다는 이유로 침대에 결박돼 있다가 뒤늦게 구조되는 바람에 숨졌다.

80명이 넘는 중증 노인 환자가 입원한 병원이지만 불이 났을 때 피해를 막아 줄 방화설비도, 구조해 줄 사람도 턱없이 부족했다. 지난해 12월 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이 숨진 지 불과 한 달여 만이다. 생명을 지키려 찾은 병원이 한순간에 생지옥으로 변하는 것이 대한민국 안전의 현주소다.


26일 오전 7시 반경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 1층 응급실에서 불이 났다. 1층 천장으로 옮겨 붙은 불이 내장재와 침구류를 태우면서 유독가스가 퍼져 나왔다. 불이 2층 위로 번지진 않았지만 유독가스가 순식간에 5층 건물을 타고 병원 전체로 퍼졌다. 거동이 불편하고 호흡기가 약한 고령의 환자들에게 치명적이었다.

사망자 37명은 병원 1층과 2층에서 주로 발견됐다. 당직 의사와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의료진 3명도 사망했다. 구조 당시만 해도 의식이 있었지만 이송 과정에서 사망한 환자가 많았다. 산소호흡기 등 비상 의료 장치를 떼어낸 뒤 적절한 의료 조치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급격한 체온 변화도 악재였다. 이날 오전 8시 밀양의 체감온도는 영하 14.8도였다.

병원에는 초기 화재 진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83명의 고령 중증 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원이지만 면적이 작아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 불이 번지며 병원은 아비규환이 됐다. 전기가 끊겨 병원 내부가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했지만 병원 비상발전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환자들은 지팡이나 휠체어에 의지할 수 없어 병실을 기어 나왔다. 환자를 들거나 업어서 대피시키는 병원 직원들과 곳곳에서 뒤엉켰다.

영상출처 : 동아일보 독자 제공

일부 병실은 내부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나올 수 있었다. 병실 내에서는 문을 열 수 있는 환자가 없어 외부에서 문을 부수고 한 명씩 빼내야 했다. 환자 6명은 1층 승강기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탈출하기 위해 위층에서 승강기를 탄 후 유독가스에 쓰러진 것이다.

환자들을 대피시킬 의료진도 부족했다. 병상 95개가 있는 이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는 단 3명이었다. 간호사도 6명뿐이다. 간호사들이 보통 3교대로 근무하는 걸 고려하면 고령 환자 95명을 고작 2명의 간호사가 돌보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 정도 규모 병원은 최소 의사 5명, 간호사 16명 이상을 운용해야 한다. 이날 화재 당시 병원에는 의사 1명과 간호조무사를 포함해 9명의 인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불이 난 병원 바로 옆 요양병원에는 94명이 입원해 있었다. 다행히 모두 대피해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1층 응급실 냉난방기나 탕비실 내 조리용 화기에서 불이 났을 가능성 등을 조사하고 있다.

밀양=강정훈 manman@donga.com·정재락·강성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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