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용 비닐 등 가연성 물질 수두룩… 병원, 불나면 대참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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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병원 방재시스템 바꿔야”
2014년 장성 병원참사와 닮은꼴
거동 불편한 환자 많아 구조 어려워… 층마다 대피공간 마련 서둘러야

26일 오전 8시경 경남 밀양시 화재가 난 세종병원 앞은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과 구조하러 온 사람들로 뒤엉켰다. 대부분 구조되는 사람은 이불을 덮은 채 다른 사람에게 업히거나 부축을 받고 나왔다. 소방대원, 구조대원, 병원 직원 등이 대부분 장·노년층 환자를 이렇게 구조했다. 환자가 탄 휠체어를 그대로 들어서 옮기는 구급대원도 있었다.

이날 오후 10시 현재 사망자 37명을 낸 세종병원 참사는 병원에 도사린 화재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지적이 많다. 스스로 몸을 피하기 어려운 이른바 ‘피난약자’가 많아 구조가 어렵고, 가연성 물질이 많아 유독가스 발생이 더 심해진다는 것이다. 이들 피난약자는 유독가스가 발생했을 때 수건을 적셔 입을 막는 동작도 하기 쉽지 않다. 세종병원은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대피 체계나 인력이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병원은 바로 옆에 요양병원이 있었지만 입원 환자 대부분이 고령인 데다 거동이 불편했다. 지방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날도 상당수 환자를 소방대원 등이 업어서 대피시켰다. 100명에 이르는 환자를 이같이 대피시키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생존자 박태옥 씨(83·여)는 “‘불이야’ 소리에 병실 문 쪽으로 갔더니 젊은 남자가 나를 업고 병원 밖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피난약자를 위해 수평 피난 개념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한다. 건물 각 층의 일정 공간을 방화구역으로 지정해 불이나 연기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환자는 산소를 공급받도록 조치하는 것이 수평 피난이다.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로 이동하기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서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수평 피난 개념이 현실에 도입되면 피난약자들은 구조대원이 도착하는 데 걸리는 5∼10분은 충분히 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병실 침대보나 시트, 비닐로 된 의료용품같이 가연성 물질이 병원 내부에 가득한 것도 피해 규모를 키운다. 이런 물질이 타면서 더 많은 유독가스가 나온다. 이번 참사 희생자들도 거의 모두 질식사했다. 21명이 숨진 2014년 전남 장성군 요양병원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호흡기 질환 환자가 연기를 들이마시면 치명적이다.

추운 날씨도 사상자를 더 빚어낸 요인으로 꼽힌다. 이날 밀양 기온은 영하 11.2도였다. 하지만 병원 내부는 섭씨 25도 정도였다. 얇은 환자복을 입은 고령의 환자들이 구조돼 밖으로 나왔을 때 쇼크를 받을 확률이 높다. 최돈묵 가천대 설비소방공학과 교수는 “이송이나 구조 과정에서 상태가 악화된 사람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사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소방대원이 도착하기 전 의료진이 구조작업을 할 수 있도록 안전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진화 관련 시설을 점검하는 사람이 소규모 병원일지라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초기 진화는 물론이고 구조작업 전반에 대한 실제 훈련을 포함시키는 교육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조유라 기자
#화재#밀양#세종병원#방재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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