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놀이 같이 가실 분, 일당 5만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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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생들, 이성 파트너도 알바처럼 돈주고 구해

‘벚꽃 같이 보실 알바 구합니다. 일당 5만 원.’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박모 씨(21)는 지난달 3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 페이지 ‘대나무숲’에 이런 내용의 익명 글을 올렸다. 그가 내건 ‘근무조건’은 벚꽃 구경을 하며 함께 밥을 먹고 사진을 찍는 것. 장난 아니냐고 의심하는 댓글이 잇따르자 박 씨는 자신의 개인 페이스북에 똑같은 글을 실명으로 올렸다.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친구 느낌 나지 않게 손 정도는 잡아 달라’는 당부도 남겼다. 박 씨는 20여 통의 쪽지를 받았고 쪽지의 프로필과 사진을 확인한 뒤 가장 마음에 드는 여성과 이번 주말 여의도로 벚꽃 구경을 가기로 약속했다.

본격적인 벚꽃놀이 철을 맞아 이처럼 돈을 내걸고 벚꽃놀이를 함께할 이성(異性)을 찾는 젊은이가 잇따르고 있다. 주로 SNS를 통해서다. 과거 성(性)을 매개로 한 ‘조건 만남’이나 ‘원조교제’와는 다르다. 말 그대로 ‘하루 친구’다. 사실 그동안 자신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영화를 같이 보거나 노래방에 같이 갈 이성을 찾는 글이 SNS에 종종 올라왔다. 하지만 일당이나 구체적인 시급을 내걸고 하루 동안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처럼 지낼 이성을 찾는다는 글은 드물었다.

대학생 김모 씨(25·여)는 최근 학교 대나무숲에 ‘벚꽃 구경을 갈 남자를 구한다’는 글을 올리면서 최저임금인 시급 6030원을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하루 만에 댓글이 1000개가 넘게 달렸다. 그는 “과제나 취업 준비로 바쁘다 보니 사람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고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아도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다”며 “어차피 사람을 만나면 돈을 써야 하는데 SNS에서는 부담 없이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소개를 받으면 주선자의 눈치를 봐야 하지만 SNS는 싫으면 싫다고 할 수 있어 좋단다. 사전에 상대방의 프로필, 친구 목록을 보고 상대방의 취향, 성격, 학력 등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도 SNS 만남을 선호하는 이유로 꼽힌다. 실제 대학생들 사이에서 SNS에 이상형을 올리거나 SNS 프로필을 보고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직접 연락하는 것은 이제 익숙한 일이 됐다.

전문가들은 사람을 사귀는 데 서툰 젊은이들이 쉽게 돈으로 사람의 감정과 시간을 사려는 씁쓸한 세태라고 입을 모았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모에게 과도하게 의존해 자란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면서 스스로 사람 사귀는 걸 어려워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돈으로 사람과의 만남도 살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서 혼자 밥을 먹는 ‘혼밥’ 문화가 늘어나고 있는 요즘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김수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SNS 친구는 많아도 직접 만나 여가를 함께 보낼 친구가 없어 외로워하다 돈으로 해결하려는 학생이 늘고 있다. 부모나 학교, 사회가 어릴 때부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상황을 경험하게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김지환 채널A 기자
#벚꽃놀이#알바#이성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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