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아버지에게 12년 동안이나…” 성폭력 악몽 치유 위해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3일 15시 45분


사진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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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로 인해 우리 가정이 파탄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못했어요.”

대학생 A 양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12년 동안 친부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받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가벼운 성추행으로 시작됐지만 곧 강간으로 이어졌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엄마나 다른 가족에게 이야기하면 가족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살아야 한다”고 수시로 말하며 A 양을 협박했다. A 양은 사춘기에 접어든 후 아버지의 행동이 심각한 성폭력이라는 것을 인지했지만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다.

기숙사를 운영하는 고등학교로 진학한 것도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허약해진 A 양이 환청과 환각 증상에 시달리다가 교사에게 그동안 일어났던 일을 털어놓았다.

딸에게 벌어진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 B 씨는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남편의 행동이 이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때는 딸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에 무너질 것 같았던 B 씨를 붙잡아줬던 것은 A양과 함께 찾아간 서올 종로구의 서울해바라기센터 관계자들이었다. 박혜영 서울해바라기센터 부소장은 B 씨에게 “당신이 바로 서야 아이를 지옥 같은 상황에서 구출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딸을 믿고, 당신이 딸을 믿는다는 사실을 아이가 충분히 알도록 해라”고 조언했다.

A 양과 B 씨는 센터의 법률 지원을 받아 성폭력 가해자인 아버지이자 남편을 고소했다. 가해자는 10년 형을 받아 현재 복역 중이다. 두 사람은 5년 째 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B 씨는 A 양이 힘들어할 때마다 “너로 인해 가정이 파탄난 게 아니라 네 덕에 온 가족이 악마 같은 아빠로부터 구출됐다”며 “정말 고맙다”고 말해준다.

● 미성년자 피해자 40%, 이중 아동 비율은 17.3%

전국에 총 36개소가 있는 해바라기센터는 성폭력과 가정폭력, 성매매 피해자를 대상으로 의료와 수사, 상담 및 심리치료 등을 통합적으로 지원해주는 기관이다. 피해자 가족에 대한 상담과 교육, 의료 지원도 한다. 모든 센터의 운영은 병원이 담당한다. 덕분에 신속한 의료 지원 및 가해자에 대한 증거 취집이 가능하다. 모두 국비로 충당하는데, 2016년 관련 예산은 437억 원으로 2015년(338억 원)에 비해 소폭 증가했다.

2015년 기준 센터를 이용한 피해자는 2만8253명인데, 성폭력 피해자가 2만218명(71.6%)으로 가장 많다. 성폭력 피해자의 연령은 성인이 40.9%이지만 18세 미만도 39.8%나 되고, 이중 13세 미만의 아동 비율이 무려 17.3%에 이른다. 즉 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성폭력 빈도가 매우 높음을 의미한다. 성별로는 여성이 95%이고 남성은 5%(1019명)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센터의 지원은 △상담사를 통한 1차 면접 △산부인과 평가 및 치료 △여성 경찰관 입회 하에 진술 녹화 및 조서 작성 △정신건강학과의 평가 및 치료 △ 심리 치료 △지속 상담 △사후 관리 및 치유 프로그램 참여 등 7단계로 이뤄진다. 특히 피해자가 성폭력 사건 발생 후 72시간 이내에 센터를 방문하면 응급키트를 활용해 가해자 정보를 취합하고, 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수사를 돕는다.

● “사건 발생 72시간 이내에 씻지 말고 방문”

A 양과 B 씨가 도움을 받은 서울해바라기센터는 2011년 개소한 이래 친족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를 특화해 지원하고 있다. 2014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신상정보 등록대상자에 대한 성범죄 동향에 따르면 친족에 의한 성폭력 피해 사례가 무려 11.2%나 된다. 이중에서도 친부가 3.8%, 계부 및 어머니의 동거인이 4.2%를 차지한다. 또 피해자 부모 자조모임 ‘꿈을 찾는 나비’에 대한 지원을 늘릴 예정이다. 박 부소장은 “자조모임을 통해 피해자 가족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아픔과 고통을 공감함으로써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전문가들은 성폭력 피해 발생 시 집에서만 괴로워하지 말고 해바라기센터와 같은 곳을 찾아 도움을 받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우경래 서울해바라기센터 의료지원팀장은 “특히 성폭력 피해 발생 72시간 내에 씻지 말고 음식이나 물도 먹지 않으며 옷도 갈아입지 않고 와야 증거물 손실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피해자의 치유를 위해선 가족, 특히 엄마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윤선영 한국여성인권신흥원 여성·아동폭력피해중앙지원단장은 “특히 친족에 의한 성폭력의 경우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피해를 당한 것인 만큼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어렵다”며 “무엇보다 엄마가 피해를 입은 딸을 믿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은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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