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건국대 페이스북 페이지 ‘건국대학교 대나무숲’에 익명의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2016년 입학한 새내기라고 밝힌 글쓴이는 최근 다녀온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에서 겪었던 일들이 자신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적었다.
글쓴이 등에 따르면 건국대 생명환경과학대 학생회는 OT에서 ‘25금(禁) 몸으로 말해요’라는 게임을 진행했다. ‘19세 미만은 금지한다’는 의미의 ‘19금’보다 수위가 높다고 해 붙인 이름으로 풀이된다. 제시된 단어나 문장을 행동으로만 표현해 알아맞히는 이 게임에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단어들이 튀어나와 참가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될 만한 일은 밤까지 이어졌다. 숙소에서 선배들과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여학생을 남학생 무릎에 앉히거나 서로 껴안고 술을 마시게 하는 벌칙도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글쓴이는 “모르는 사람과 껴안는 게 정말 싫었다. 대학생은 원래 이렇게 노는 것이냐”고 하소연했다.
각 대학이 본격적으로 OT 또는 ‘새터’(새내기 새로 배움터의 줄임말)를 진행하면서 성희롱, 성추행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성희롱은 과도한 음주나 장기자랑 강요 등과 함께 OT에 참가하는 신입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요소 중 하나다.
지난해에는 서강대 경영대 OT가 구설에 올랐다. 숙소로 쓰는 방 앞에 방 이름(별칭)을 적어 게시하면서 ‘아이 러브 유방’, ‘작아도 만져방’ 같은 표현을 쓴 것이다. 2011년에는 세종대 OT에서 게임 도중 과도한 신체 접촉을 강요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건국대 생명환경과학대 학생회는 페이스북 등에 공식 사과문을 올렸지만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글이 이어지면서 오히려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자신이 신입생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한 명은 누운 상태로 입을 벌리고 다른 사람이 위에서 술을 뱉는 저질스러운 게임이 새벽까지 이어졌다”고 털어놨다. 이번 OT에 참가했다는 한 재학생은 “여학생에게 섹시 댄스를 추게 하고 선배들이 음료수나 식당 쿠폰 등을 ‘경매 화폐’로 삼아 여학생을 사는 방식의 ‘노예팅’도 진행했다”고 폭로했다.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서는 올해 새터에 다녀온 한 남자 신입생이 “장기자랑 시간에 여장을 한 채 걸그룹 춤을 췄다. 끔찍하게 수치스러웠는데 선배들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얘기했다”고 하소연했다.
각 대학 학생회는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양성평등 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서울의 한 사립대생 이모 씨(22·여)는 “복학생 등 고(高)학번 선배가 오면 통제할 방법이 없다”며 “군대에서 갓 제대한 선배 여러 명이 와 ‘올해 여자애들은 물이 좋다’며 이상한 게임을 시키기에 항의했더니 ‘재미있는데 왜 그러느냐’는 핀잔만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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