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당국, ‘C형 간염’ 3군 법정 감염병 포함·전수 감시 추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4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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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현재 표본 감시 대상인 ‘C형 간염’을 3군 법정 감염병에 포함시키고 전수(全數) 감시 대상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14일 밝혔다. 지난해 말 서울 양천구 다나의원에 이어 최근 충북 제천의 양의원과 강원 원주의 한양정형외과의원에서도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에 의한 C형 간염이 집단 발생한데 따른 후속조치다. 한양정형외과의원은 자가혈 주사시술(PRP) 과정에서 사용되는 일회용 키트의 재사용에 따른 감염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C형 간염은 2000년 지정 감염병으로 분류돼 180개 의료기관에서 표본감시 체계가 운영되고 있다. 해당 의료기관은 발견 7일 안에 보건소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지만 신고율은 80%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는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감염병은 1~5군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해 전수감시를 할 수 있다. 신생아 소두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도 최근 4군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됐다.

복지부 질병정책과 관계자는 “C형 간염을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하면 전수감시 체계로 바꿀 수 있고, 이를 통해 환자들의 의료기관 방문 이력 등을 분석해 집단감염 사례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 선진국 대부분은 C형 간염을 전수감시하고 있다. 또 전수감시로 현황을 빠르게 파악하면 역학조사 및 방역조치 등 초동대처 역시 더 빨리 이뤄질 수 있다.

● 적발 사례는 ‘빙산의 일각’

전문가들은 “아직 적발되지 않은 일회용주사기 재사용 사례가 훨씬 많을 것”이라며 “병의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보건당국은 제천과 원주 두 병원의 10년간 진료 기록을 찾아내 환자를 모두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대상은 최대 5만3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원주 병원에서 자가혈 주사시술(PRP) 처방을 받은 환자의 C형 간염 감염률이 현재까지 11%로 조사된 비율을 적용하면, 이론상 C형 간염환자가 5000명에 이를 수도 있다.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 뿐 아니라 자가혈 주사시술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명 ‘피주사’로 불리는 이 시술은 환자의 혈액을 채취해 원심분리한 뒤 추출한 혈소판을 환자에게 재주사하는 방식. 혈액응고 작용을 돕고 피부 및 시술 부위의 재생 촉진, 상처회복, 탈모 개선 등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특히 미용시술로 많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혈액에 의한 감염 가능성이 높음에도 이 주사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특별히 교육도 받지 않은 의사들이 그냥 피를 뽑아서 원심분리기에 돌렸다가 사용하는 식으로 시술하는 경우가 많다”며 “혈소판 배양 등이 어떤 절차로 이뤄졌는지부터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양정형외과의 경우 일회용 주사기보다는 원심분리를 할 때 사용하는 일회용 키트를 재사용해 C형 간염이 퍼졌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된 상황이다. 키트의 가격은 하나에 2~3만 원에서 10만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관리과 관계자는 “PRP 시술 과정에서 감염이 일어난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일회용 주사기 뿐 아니라 원심분리에 사용되는 일회용 키트 역시 재사용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밝혔다.

● 공익신고 ‘핫라인’ 개설해야

또 복지부는 의료기관 내부 종사자 및 환자 등을 대상으로 일회용 주사기 등 의료기기 재사용 의심 기관에 대한 공익신고를 받겠다고 밝혔지만, 실효성이 없어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장 1명과 간호사, 간호조무사 2, 3명이 일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특성상 내부 신고자의 신분이 드러날 수 있는데다가 ‘고발자’라는 낙인이 찍히면 재취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공익신고의 창구를 다양화해야 한다”며 “의료기관 관계자나 일반 국민이 주사기 재사용과 같은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문제를 접했을 때 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질병관리본부에 핫라인을 개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법 개정해야 할 국회는 ‘올스톱’

전문가들은 정신질환 경력이 있거나 알코올 및 약물 중독자, 80세 이상의 고령 등 의료인의 건강상태가 정상 진료를 할 수 없을 때에는 의료면허를 정지, 취소할 수 있도록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강조한다. 현행 의료법에서는 다나의원 원장처럼 뇌손상을 입어도 의료인 결격사유가 아니다.

모든 의료인은 ‘의료인 면허신고제’에 따라 3년 동안 24시간의 보수교육을 받은 후 면허를 신고해야 갱신된다. 하지만 대리출석이 많고 보수교육을 받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 유상호 한양대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는 “유명무실해진 면허 신고제를 제대로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고 요건을 강화하고 의료인이 의료행위를 수행할 수 있을지 철저히 확인하며 보수교육 내용도 의료사고 예방 등 실질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11월 다나의원 사태 이후 의료인의 면허 취소 근거를 마련하고 면허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지만 아직 최종안을 확정하지 못했다. 의료인 면허제도 개선협의체에서 논의 중인 결과는 3월쯤 나올 예정이다.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의료법을 개정해야만 가능한 사안인데, 4월 총선을 앞둔 국회에서 법안을 바로 처리할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의료인의 자정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주사기 재사용과 같은 문제가 생겼다면 주변의 의료기관이나 동료 의사들이 그 사실을 알고 지역의사회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의료계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도 “의료인 면허 갱신 때 동료평가를 도입해 의료인들이 서로를 평가해 의료행위에 문제가 없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의료계 내에 중립적으로 의료인을 평가하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지은 smiley@donga.com,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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