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남편 냉동정자로 낳은 아기, 친자 인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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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선 “親子관계 등록 불가능”… 법원 “혈연관계 성립” 승소 판결

2009년 7월 결혼했지만 불임 판정을 받은 남편 정모 씨와 홍모 씨(41·여). 아이를 원했던 부부는 2011년 12월 시험관 시술을 통해 첫째 아들을 출산하는 데 성공했다. 그 무렵 정 씨의 위암 발병 사실을 알게 된 부부는 둘째를 갖길 간절히 바라며 병원을 찾았다. 시험관 시술을 위해 2012년 12월과 2013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정액을 채취해 냉동했다.

홍 씨는 “젊은 사람을 암 환자로 둔 집은 으레 그렇듯 잘 이겨내리라 믿었다”며 “첫 번째 발병 후 남편이 항암치료도 잘 받고 시골로 내려가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2012년 12월 1년 만에 암이 재발했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둘째도 낳고 행복하게 잘살자”며 서로를 다독였다.

그러던 정 씨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 건 2013년 10월이었다. 정 씨는 투병 끝에 결국 그해 12월 세상을 떠났다. 둘째를 갖기 위해 노력하던 터에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에 당황했지만 홍 씨는 마음을 다잡았다. 홍 씨는 이듬해인 2014년 냉동된 정액을 해동시켜 시험관 시술을 통해 임신했고, 올해 1월 둘째 아들 정모 군을 낳았다.

출생 신고 과정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첫째 아들의 어린이집 등록을 위해 가족관계등록부를 떼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둘째 아들 정 군의 가족관계등록부에는 사망한 남편 정 씨의 이름은 없고 자신의 이름만 올라있었다. “아빠 없는 아이가 어딨냐”며 동사무소에 문의했지만 “구청에서 ‘아버지가 숨진 뒤 가진 아이가 태어나 친자로 등록된 전례가 없다’고 해 그렇게 처리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가정법원의 인지 판결을 받아오라”는 구청 측 안내에 홍 씨는 4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태어난 아이가 정 씨의 친생자임을 인정해 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3단독 김수정 판사는 “유전자 검사에서도 정 군과 첫째 아들 사이에 동일한 부계에 의한 혈연관계가 성립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정 군이 정 씨의 친생자임이 인정된다”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친부 사망 후 인공수정 시술을 통해 자녀를 출산한 경우에도 혈연관계가 입증된다면 친생자 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판결이다. 다만 정 군은 이 판결이 확정돼야 사망한 정 씨와 홍 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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