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서 제작까지 ‘확인 또 확인’… 단어 하나하나 ‘신중 또 신중’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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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95주년][東亞 이야기/독자의 동아일보 취재기]

오후 6시 반.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미디어센터 13층 편집국. 독자 이수진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건혁 기자(왼쪽)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주치의의 기사가 실린 가판을 확인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 누구나 기자인 시대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기록 및 전달 매체가 폭발적으로 급증한 결과다. 글 솜씨만 있다면 많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다. 그렇지만 ‘진짜 기자’들도 아는 내용을 가볍게 써 올릴까. 동아일보 독자 이수진 씨(27·여)는 그동안 실제 기사가 어떻게 취재되고 완성되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기자를 지망하는 그는 제49회 신동아 논픽션 부문에서 ‘무연고 사망자 83인의 삶’을 응모해 수상한 경력이 있다. 그때 취재 경험과 ‘진짜 기자’들의 취재 현장은 얼마나 비슷할까. 동아일보 창간 95주년을 맞아 이 씨는 동아일보 기사가 제작되는 과정을 직접 취재해보기로 했다. 지난달 18일 하루, 이 씨는 동아일보를 취재하는 ‘일일기자’가 되어 사회부 경찰 기자 한 명과 밀착 동행했다. 》

오전 9시 서울 마포경찰서 기자실. 이건혁 기자가 전화로 부팀장과 발제문을 상의하는 모습을 독자 이수진 씨(오른쪽)가 보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오전 9시 서울 마포경찰서 기자실. 이건혁 기자가 전화로 부팀장과 발제문을 상의하는 모습을 독자 이수진 씨(오른쪽)가 보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주문 같은 말…“확인 또 확인”

3월 18일 오전 8시 반 서울 마포경찰서 기자실에서 만난 사건팀 이건혁 기자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오전 9시까지 이날 취재하고 쓸 기사 아이템을 부장에게 보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30분이 더 지나서야 이 기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 기자는 이날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수술을 집도한 유대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교수와 어제 단독 인터뷰를 했다”며 “그 인터뷰 내용을 내일 자에 게재하기로 해 마무리 취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이 기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사건팀의 부팀장(이날 팀장은 공석이라고 했다)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이 기자는 조용히 기자실 밖으로 나갔다.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이 기자가 낮게 말했다. “리퍼트 대사 주치의와 인터뷰한 내용은 단독 기사라 타사 기자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밖에서 통화한 것”이라고 속삭였다.

부팀장과의 통화 내용을 묻자 이 기자는 “보고할 때 허벅지 부근의 상처를 ‘찢겼다’고 표현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지를 물었다”고 했다. 또 “상처가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생겼을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할 것을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한 번도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사실이었기에 더욱 신중하게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듯했다.

○ 용어 선택 하나도 신중에 신중

“2면 기사로 잡혔네.”

점심 이후 지면 배치를 확인한 이 기자는 중요 지면에 배정되자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기뻐하는 눈치였다. 유 교수를 단독 인터뷰한 배경을 묻자 “인터뷰 가능성이 낮아 아무도 찾아가지 않았는데 혹시나 해서 요청했더니 예상외로 쉽게 응해줬다”고 대답했다. 끈기와 열정이 특종을 낳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기자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마지막 점검에 들어갔다. 먼저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 당일 현장을 방문했던 동료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피습 장소에 긁히거나 상처가 날 만한 것들이 있었는지 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유 교수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이 기자는 “리퍼트 대사의 허벅지에 난 상처의 길이와 깊이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인터뷰 때 이미 확인했던 부분이지만 다시 한 번 확실히 하고자 연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팀장과 논의한 부분들을 추가 확인해 반영하면서 기사의 윤곽이 더욱 뚜렷해져갔다.

오후 5시. 이건혁 기자는 매일 이 시간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들러 기사가 될 만한 판결문이 없는지 확인한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오후 5시. 이건혁 기자는 매일 이 시간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들러 기사가 될 만한 판결문이 없는지 확인한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 기사를 넘겨도 끝난 게 아니야

그로부터 한 시간 뒤 이 기자는 기사를 마무리해 송고했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숨을 돌린 지 10분도 채 안 돼서 데스크로부터 전화가 왔다. 데스크는 “기사에 보면 ‘흉터를 치료한’이라는 표현이 나오던데 ‘수술을 한’ 또는 ‘수술을 집도한’ 등이 더 명확하지 않으냐”고 묻는 등 구체적인 표현들까지 하나하나 지적했다.

데스크는 유 교수와 박근혜 대통령이 함께 찍은 사진을 구할 수 있는지도 물었다. 기사에 유 교수가 박 대통령과 인연이 있었음을 밝히는 대목이 있어서였다. 데스크 과정에서 함께 실릴 사진까지 신경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차장과 부장을 거쳐 데스킹이 완료됐다. 이 기자는 퇴근 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미디어센터로 복귀했다. 가판(내부 확인용으로 미리 제작한 신문)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이 기자는 “기사에 제목과 소제목이 어떻게 달렸는지, 사진 배치는 잘됐는지 등을 확인했다. 인터넷에서 PDF 파일로도 가판을 확인할 수 있지만 큰 기사를 썼을 땐 회사에 들어와 종이로 출력된 가판을 본다”고 말했다. 가판까지 확인한 뒤 시계를 보니 오후 6시 반이었다.

○ 다른 취재도 ‘확인-신중’은 마찬가지

이 기자는 이날 단독 인터뷰 준비로 분주했지만 틈틈이 다른 취재들도 동시에 진행했다. 그중 하나는 2월 27일 경기 화성시에서 발생한 총기 사건을 계기로 각 경찰서에 지급된 방탄복 실태에 관한 기사였다. 일주일 전부터 준비해왔던 기사였지만 좀 더 보완해 이틀 뒤 소화하기로 데스크와 논의한 소재였다.

오전 발제 이후 이 기자는 마포경찰서 생활안전과장을 찾아가 최근 지급된 지구대별 방탄복 수, 무게, 예산 등을 점검했다. 이 기자는 “이미 방탄복과 관련된 부서 관계자 10여 명에게 해당 내용을 확인해 둔 상태”라며 “취재한 내용 가운데 미심쩍은 부분이 없도록 추가로 물어봤다”고 말했다. 또 “이틀 전에는 한 지구대에서 방탄복을 직접 입어보기도 했다”고 했다. 취재가 끝난 뒤에도 취재 방향이 바람직한지 거듭 확인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 취재기자 동행한 독자 이수진씨

“현장 취재뒤 전화로 수십차례 팩트 확인… 믿음이 팍!”


19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동아일보를 펼쳤다. 평소대로라면 1면부터 천천히 읽어 내려갔겠지만 이날은 2면부터 펼쳤다. ‘리퍼트 얼굴-허벅지 등 6곳 상처’라는 제목의 기사가 2면 머리기사로 실려 있었다. 하루 전 가판으로 확인했던 기사가 지면에 그대로 실린 것을 확인하니 기분이 묘했다.

기사를 읽어 내려가자 전날 이건혁 기자를 따라다니며 지켜본 장면들이 떠올랐다. 취재했지만 담기지 못한 내용도 기사에는 꽤 있었다. 그중엔 지면 관계상 분량이 넘쳐 싣지 못한 이야기도 있고 취재원 보호를 위해 공개하지 못한 이야기도 있다.

이 기자는 취재와 관련된 통화를 하루 평균 30통가량 한다고 말했다. 많을 때는 50∼100통까지 할 때도 있다고 한다. 현장에 직접 달려가 눈으로 확인하고, 현장을 떠나서도 수시로 사실(팩트) 점검을 하는 것이다. 이 기자를 하루 종일 따라다녔던 18일에 이 점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중간중간 트위터, 뉴스 속보, 인터넷 커뮤니티 등 온라인 사이트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바쁜 시간을 쪼개 특이한 판결문이 있었는지 확인하러 서울서부지방법원에도 들렀다. 심지어 회사 차량으로 이동하는 순간에도 노트북을 꺼내 무언가를 검색했다. 당일 기사 취재와 더불어 매일 새로운 취재 아이템을 발제해야 하는 사건팀 기자의 하루는 쉴 틈이 없었다.

기사에 실린 문장들이 어떻게 쓰였는지 지켜본 뒤여서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들이 다시 보였다.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검토하는 과정을 보고 나니 비로소 기사에 신뢰가 갔다. 하나의 기사를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이 쏟아 부은 시간과 노력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수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정리=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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