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울대 기숙사의 ‘甲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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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건물공사 소음 등 감수” 동의서 안쓰면 입주 못해
가족생활관 대기자들에 요구 논란

서울대가 기숙사(관악사) 가족생활관 입주를 원하는 대학원생들에게 “건물 신축공사 때문에 불편해도 불만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동의서(사진) 작성을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5일 서울대 등에 따르면 관악사는 지난해 9월부터 가족생활관 입주 대기자들을 대상으로 이런 내용이 담긴 동의서를 받고 있다. 동의서에는 “서류를 작성한 입주 대기자에 한해 입주를 승인한다”는 안내와 함께 “연구소 신축공사로 불편한 일이 발생해도 어떤 불만도 제기하지 않을 것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관악사 가족생활관은 200채 규모다. 결혼한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과 외국인 유학생들이 살고 있다. 면적은 46.3m², 49.6m²에 불과하지만 월 임대료가 15만 원으로 저렴해 일정한 소득이 없는 학생 부부에게 인기가 높다. 하지만 가족생활관에서 가깝게는 20m, 멀게는 100m 떨어진 위치에 지상 10층, 지하 1층 규모의 삼성전자 연구소 신축 공사가 이달에 시작될 예정이어서 입주자들은 공사로 인한 소음, 진동 등에 따른 불편을 우려하고 있다.

관악사 측은 “연구소 공사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소음, 먼지, 진동 등 불편함을 미리 알리기 위한 차원에서 (동의서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서약서를 쓰기 싫으면 입주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 육아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가족생활관 입주만 기다리던 학생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동의서를 쓰고 입주한 A 씨는 “아이가 있고 수입이 불규칙한 대학원생 입장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정민영 참여연대 변호사는 “대학원생은 학교에서 가장 약자의 위치에 있다. 서울대가 갑(甲)의 지위를 이용해 이들에게 동의서를 거부할 선택권을 주지 않은 것은 명백한 권리 침해”라고 말했다.

가족생활관 입주자들은 최근 서울대 인권센터에 해당 내용을 신고하고 시정을 요구한 상태다. 이에 관악사 측은 “인권센터의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신지현 인턴기자 서울대 소비자학과 3학년
#서울대 기숙사#공사소음 감수 동의서#관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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