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하던 소년범이 두달만에 변했다… “널 만나 나도 행복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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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법조팀 최예나 기자, 기소유예 중학생 멘토링 활동記

지난달 5일 중간고사를 잘 끝낸 기념으로 영훈이(가명·왼쪽)와 오이도에 가서 조개구이를 먹었다. ‘멀리 가기
싫다’던 영훈이는 맛있게 먹으며 즐거워했다.
지난달 5일 중간고사를 잘 끝낸 기념으로 영훈이(가명·왼쪽)와 오이도에 가서 조개구이를 먹었다. ‘멀리 가기 싫다’던 영훈이는 맛있게 먹으며 즐거워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떨렸는지 모르겠다. 9월 7일, 서울고검에서 열린 ‘파랑마니또’ 결연식. 내 멘티는 누가 될까. 주변을 둘러봤다. 하얗게 머리를 탈색한 아이, 왼쪽 눈이 시퍼렇게 멍든 아이, 체격이 다부진 아이…. 부끄럽지만 스물일곱 살 기자는 움츠러들었다.

파랑마니또는 폭력 절도 등의 혐의로 입건됐지만 초범이라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19세 미만 소년범을 대상으로 일대일로 실시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서울중앙지검이 법무부 등록 공인법인인 청소년희망재단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실시한다. 이들 소년범은 6개월간 20시간 이내의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서울중앙지검은 전국 검찰청 중 최초로 소년범을 대상으로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기자가 이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했다.

○ 무뚝뚝한 아이

멘티와 멘토는 자신이 원하는 짝꿍의 성별과 성격 호불호를 적어낸다. 그걸 바탕으로 그룹이 정해진다. 그 그룹 안에서 멘티가 번호를 뽑아 연결된다. 영훈이(가명·14)가 부른 번호가 기자의 번호였다.

중학교 2학년이라는 영훈이는 말이 너무 없었다.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 나는 꼬치꼬치 물었다. “좋아하는 게 뭐니?” “장점은 뭐니?” “별명은 뭐야?” 하지만 영훈이의 대답은 일관됐다. “몰라요.”

“편하게 ‘누나’라고 불러”라는 말에만 단호하게 답했다. “싫어요. 선생님이라고 할게요.”

그날 우리는 6개월 동안 서로 지킬 약속을 정했다. 영훈이는 △게임 줄이기 △수업 시간에 자지 않기, 나는 △운동하기 △스트레스 받지 말기를 약속했다. 그리고 가고 싶은 곳을 정했다.

‘무슨 일을 저질렀던 걸까?’ 궁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학교폭력일 것 같다고 추측했지만, 자세히 묻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할 일은 영훈이가 나쁜 일을 다시 하지 않도록 돕는 거라고 생각했다. 또 이번 일로 영훈이가 위축되지 않고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초반에는 뭘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재단에서는 “아이를 완벽하게 바꾸겠다고 욕심 부리지 말라”고 교육했지만, 그런 욕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영훈이가 학교를 마치는 시간과 학원 가는 날을 알아두고 자주 연락했다. 처음에는 문자에 답장도 없었다. 통화를 할 때는 나 혼자 떠들었다.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저녁 먹었어? 뭐해?” “게임해요.” “너 나랑 전화하면서 게임한다고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거야?” “네….”

큰 소리로 말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게임 좀 그만해!” “공부를 해 공부를! 시험이 일주일도 안 남았잖아!” 하지만 잔소리하는 엄마처럼 비칠까 봐 참았다. 그 대신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학교에서 재밌는 일 없었니?” “우리 게임을 5분씩만 줄이면 어떨까?” “와, 오늘 정말 학교에서 안 잤어? 너 진짜 대단하다!”

○ 학교폭력 가해자

영훈이는 조금씩 변했다. 말이 조금씩 길어졌고, 게임은 하루 3시간에서 2시간∼2시간 30분으로 줄였다. 내게 기쁨을 주기도 했다. 10월 첫째 주 중간고사 중에는 갑자기 “저, 오늘 시험 잘 봤어요”라는 문자를 먼저 보내오기도 했다. 저녁도 못 먹고 일한다는 내게 “뭐 하느라 저녁도 안 먹어요?”라며 걱정해주기도 했다. 어른스럽게 “저, 약속 생각하고 있어요. 노력해야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달 2일 만났을 때 영훈이는 깊은 속내를 털어놨다. 학교와 학원 PC방 등을 둘러보고 싶어서 영훈이네 동네로 갔다. 비가 왔지만 영훈이가 안내해주는 대로 오래 걸었다. 영훈이가 말을 많이 했다. “학교에서 체벌이 심해서 전학을 가고 싶은데 부모님이 안 된대요.” “학교가 싫어요. 재미없어요. 그 일(학교폭력 사건) 이후 더 그렇기도 하고요.” “선생님이 되고 싶긴 한데, 특성화고 진학도 고민 중이에요.” 이날 나는 영훈이가 학교폭력으로 4일간 출석정지를 당했다는 사실도 알았다. 영훈이는 “제가 잘못했죠”라고 말했다.

최근에야 영훈이가 저질렀던 일을 우연히 알게 됐다. 영훈이와 친구 3명은 학교의 한 아이를 때렸다. 맞은 아이는 4월 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영훈이와 친구 3명은 선생님에게 고자질했다는 이유로 놀이터에서 이 아이를 또 때렸다. 이는 주민의 신고로 발각됐고, 영훈이는 기소 의견으로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김홍창)에 송치됐다.

나는 영훈이에게 이 일에 대해 먼저 묻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아이의 손을 잡아주려고 한다. 영훈이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자신을 믿고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많다. 16일에는 재단 차원에서 가을 소풍을 가기로 했다. 다음 달에는 영화를 보러 갈 것이다. 영훈이가 제일 좋아하는 피자도 먹으러 가고 스케이트장에도 가기로 했다.

○ “널 만나 나도 행복해”

재단에 따르면 파랑마니또는 소년범들에게 긍정적 효과가 있다. 지난해 프로그램을 수료한 멘티들 사이에서는 “삶의 목표가 생겼다” “마음 편히 말할 사람이 생겼다” “표정이 밝아졌다”는 답변이 많이 나왔다. 박지영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검사는 “초범일 때 관심을 기울이면 재범률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도 범죄자가 될 확률이 낮아진다”고 말했다.

영훈이를 만나는 일은 내게도 좋은 에너지를 주고 있다. 누군가의 멘토인 만큼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특히 영훈이와의 약속 때문에 운동도 열심히 하고, 스트레스는 바로 풀려고 노력하고 있다.

멘토를 추가 모집한다. 대학생이나 직장인 모두 참여할 수 있다. 멘토와 멘티는 공식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고 사진과 함께 활동 보고서를 재단에 제출해야 한다. 홈페이지(www.safeschool.or.kr)에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범죄경력자료 조회 동의서 양식을 내려받은 뒤 e메일(safecamp@hanmail.net)로 제출하면 된다. 29일까지. 도움을 주고 싶은 개인이나 기업은 재단으로 연락하면 된다. 02-3291-3639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소년범#멘토활동#파랑마니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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