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소설 ‘인페르노’ 경고처럼 ‘인구지옥’ 올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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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서스, 기술발달 예견못해” vs “성장한계 부닥치면 위기”

댄 브라운의 신작 ‘인페르노’에서 경고한 대로 정말 인구가 폭증해 곧 지구는 인파로 들끓는 지옥처럼 될 것인가. 그림은 단테의 대서사시 ‘신곡’ 중 ‘지옥 편’을 묘사한 산드로 보티첼리의 15세기 후반 작품 ‘지옥의 지도’. 바티칸도서관 소장
댄 브라운의 신작 ‘인페르노’에서 경고한 대로 정말 인구가 폭증해 곧 지구는 인파로 들끓는 지옥처럼 될 것인가. 그림은 단테의 대서사시 ‘신곡’ 중 ‘지옥 편’을 묘사한 산드로 보티첼리의 15세기 후반 작품 ‘지옥의 지도’. 바티칸도서관 소장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기하급수의 수학이 당신의 새로운 신으로 등극할 겁니다. 그런데 그 신은 복수의 신이에요. 바로 이 뉴욕 한복판에 단테가 말하는 지옥의 풍경이 펼쳐질 겁니다. 무리를 지은 군중은 자신이 내지른 배설물 속을 뒹굴겠지요. 한때 우리가 어머니라고 불렀던 자연, 그 자연이 직접 나선 정화가 시작되는 겁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소설 ‘다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의 신작인 ‘인페르노’의 한 구절이다. 미국 상무부 소속 통계국 홈페이지의 인구시계(www.census.gov/popclock)에 접속해보았다면 이 소설의 구절이 피부에 철썩 와 닿을 것이다. 세계의 인구수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인구시계의 숫자는 0.5초도 채 안 돼 1명씩 증가한다. 인구시계의 숫자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지구가 인파로 들끓어 언젠가 지옥과 같은 형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초조함마저 든다.

댄 브라운은 ‘인페르노’에서 세계의 인구 폭증 현상을 정면으로 환기시켰다. 단테의 ‘신곡’ 중 ‘인페르노’(지옥 편)에서 영감을 얻어 집필한 작품이다. 소설 속 유전공학자 버트런드 조브리스트는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1766∼1834)의 ‘인구론’을 신봉한다. “인류는 그냥 방치하면 전염병이나 암세포와도 같은 속성을 발휘”하며 “단테의 아홉 고리 지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 조브리스트는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해 인류의 3분의 1을 줄이는 생물학적 테러를 시도한다. 주인공인 하버드대 기호학 교수 로버트 랭던이 스릴 넘치는 추격전 속에서 이 음모의 수수께끼를 푼 뒤 테러를 막기 위해 천재적인 두뇌와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필사적으로 가동한다는 줄거리다.

이 소설은 허구와 사실을 조합한 팩션(faction)이다. 실제로 지구상의 인구는 1800년대 초 10억 명에 도달했고 그 인구가 두 배로 증가하기까지는 100여 년밖에 안 걸렸다. 1920년대에 20억 명을 기록한 인구는 불과 50년 뒤인 1970년대에 다시 두 배로 늘어 40억 명이 됐고 2011년 70억 명을 돌파했다. 유엔 경제사회국 인구부는 세계 인구가 2025년 81억 명, 2050년에는 96억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인페르노’에 실린 그래프는 인구 증가와 함께 이산화탄소 농도, 멸종 동식물 종수, 물 소비량, 북반구의 평균 표면 온도 등이 완만하게 상승하다 20세기 들어 급격히 치솟았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정말 지구는 머지않아 인구 증가로 몸살을 앓다 파멸을 향해 치닫게 될까. 인구학의 고전으로 회자되는 맬서스의 ‘인구론’은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가. 소설 속 악당 조브리스트가 주장했듯 흑사병이라도 돌아 ‘솎아내기’를 해야 인류는 멸망을 피할 수 있는 것일까.

맬서스의 인구론, 맞나 틀리나

댄 브라운과 그의 저서 인페르노
댄 브라운과 그의 저서 인페르노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맬서스의 저서 ‘인구론’(1798년)의 초판에 등장한 이 문장은 이후 인구 이슈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명제가 되었다. 맬서스는 인간이 무절제한 성욕 탓에 자식을 많이 낳으므로 이를 방치하면 식량 생산이 인구 증가를 따라잡지 못해 빈곤의 악순환이 일어날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방법으로 전쟁, 기근, 질병 같은 ‘적극적 억제’와 출산율을 낮추는 ‘예방적 억제’ 가운데 예방적 억제를 주장했다. 맬서스가 살던 시대에는 효과적인 피임법이 보편화되지 않았기에 그는 결혼을 늦게 하거나 금욕하여 출산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맬서스 추론의 전제는 하층민들이 무절제한 성욕을 참지 못하고 국가의 빈민 보조금에 기대어 아이를 많이 낳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산업혁명이 막 시작되면서 도시 빈민이 증가하는 추세였다. 또 영국의 인구가 크게 늘어나 식량이 부족해져 외국에서 식량을 수입해야 했다. 맬서스는 빈민자를 구호해 생활 조건을 개선할 경우 이들의 출산율만 높아진다며 국가가 나서서 극빈자를 구호하거나 개인이 자선을 베풀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논리는 가족 수에 따라 보조금을 분배하던 영국 정부가 빈민 구호를 폐지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런 논쟁적인 주장을 펼쳤으니 맬서스가 평생, 그리고 죽은 뒤까지도 비판에 시달린 것은 당연했다.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베르너 좀바르트는 저서 ‘정신과학으로서의 인류학’(1938년)에서 맬서스의 ‘인구론’을 “세계의 문헌 중 가장 멍청한 책”이라고 평했다.

다행히 맬서스의 예언은 빗나갔다. 인구는 그의 예언처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진 않았고, 식량 분배의 불균형은 있을지언정 식량 생산이 부족해진 것도 아니다. 맬서스는 콘돔과 피임약 같은 피임법이 보편화돼 무분별한 출산이 줄고 농업과 식량생산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것까진 내다보지 못했던 것이다.

독일의 인구학자 헤르비히 비르크는 저서 ‘사라져가는 세대’(2005년)에서 ‘인구론’의 전제를 낱낱이 비판했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된다는 것이다. 또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지 않았으며, 여성 1인당 출산율은 산업화 및 도시화, 복지 증대와 함께 쇠퇴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맬서스의 비관론은 설 자리를 잃은 것처럼 보였지만 인구 증가에 수반되는 새로운 문제들이 떠올랐다. 1972년 로마클럽이 내놓은 보고서 ‘성장의 한계’는 인구 증가와 이로 인한 천연자원 고갈, 환경오염 등으로 인류가 100년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진단해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여기에 ‘신 맬서스 이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는 자동 조절 장치가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과학의 힘을 무시했다’며 낙관론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흑사병이 르네상스를 낳았다?

‘인페르노’ 속 유전공학자 조브리스트는 ‘자연은 스스로를 정화하는 법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은 것 역시 인간의 자연 정화 능력을 보여주는 징조로 해석한다. 심지어 그는 흑사병이 인구를 솎아냄으로써 르네상스의 발판이 마련됐다고 본다. 이는 자신이 주장해온 ‘생물학적 테러론’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된다. 과연 그럴까.

조브리스트의 믿음처럼 자연 스스로 생존에 적절하도록 개체 수를 조절한다는 설이 있다. 인구가 급증할 때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이 창궐하고, 집단끼리 충돌해 전쟁을 일으키고, 자연재해가 발생해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개체 수를 조절하려고 집단자살을 한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개봉한 브래드 피트 주연의 블록버스터 영화 ‘월드워Z’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세계에 맹렬히 퍼지는 것 역시 인간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여 인류의 파멸을 막으려는, 자연의 절박한 작용처럼 보인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진화학)는 “자연 세계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개체 수를 조절한다는 학설이 있었으나 20세기 중반 이후 그런 학설에 과학적 근거가 없음이 밝혀졌다”며 “개체 수를 자연적으로 조절한다는 것은 결과론적 해석일 뿐”이라고 말했다. 즉 삶의 환경이 나쁘면 각 개체가 스스로 출산을 자제하고 이것이 전체적으로 개체 수의 감소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동물의 집단자살 현상 역시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 레밍(쥣과의 포유류) 등의 동물을 조사한 결과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흑사병이 인구를 줄임으로써 물질적 풍요와 안정감 속에서 예술을 꽃피워 르네상스가 가능했다는 책 속의 주장 역시 목적론적 사고일 뿐이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유희수 고려대 사학과 교수(서양중세사)는 “흑사병 이후 유럽 사회와 경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됐다는 해석은 있다”면서도 “학계에 흑사병 때문에 르네상스가 가능했다는 주장은 없으며 소설가의 주관적 해석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인구론’을 다시 읽는 이유

댄 브라운은 ‘인페르노’ 출간 직후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인구 증가로 기아와 삼림 감소, 수질 오염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인구 과잉은 미래에 큰 이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는 “산아 제한을 금지하는 가톨릭의 입장은 급격한 인구 증가 문제에 위험한 태도”라고 밝혔다.

하지만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인구학)는 “세계에서 아이를 가장 많이 낳는 지역인 아프리카와 인도마저 출산율은 점차 낮아지는 추세”라며 “인구가 증가하는 이유는 출산보다 노인의 수명 연장 탓이 크다. 따라서 어느 시점이 지나면 인구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가 가족계획을 장려하는 중국, 동남아,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다.

인구학자들은 조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서재 한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맬서스의 ‘인구론’을 다시 꺼내 들고 있다. 맬서스의 경고를 되새기기 위해서다.

전광희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인구학)는 “‘인구론’에서 말하는 ‘식량’은 오늘날로 치면 사람이 먹고살게 해주는 ‘직장’과 같은 의미”라며 “저출산에도 불구하고 지금 태어난 아기들이 자라면 상당한 취업난에 직면할 것이다. 고용 안정이 시급한 문제다”라고 분석했다. 인구 증가를 흡수할 만큼 경제가 성장하지 못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출산율은 줄고 있지만 개발도상국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탓에 경제 격차로 인한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마이클 헤이든은 2008년 미국 캔자스주립대 강연에서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 예멘 등 인구가 폭증하는 빈곤국의 청년층을 걱정했다. “이 젊은이들은 기본적인 자유는 물론이고 식량 주택 교육 취업 등의 기본적 필요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폭력과 폭동을 일삼는 극단주의로 빠질 우려가 높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는 “오늘날 부유한 선진국은 맬서스의 비관론으로부터 해방됐다고 볼 수 있지만 불안에 빠진 빈곤국의 국민이 정부나 선진국에 대해 테러할 가능성이나 범지구적 환경 문제를 생각하면 맬서스의 예언은 아직도 유효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현 자본주의체제에서 부와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지구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숙제라는 말이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의 가장 암울한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고 예언했다. 무분별한 경제성장과 환경오염을 지켜보면서도 오만하게 방관하는 현대인을 따갑게 꼬집는 말처럼 들린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참고 문헌=‘인페르노’(전 2권·댄 브라운·2013년·문학수첩), ‘인구론’(맬서스·2011년·동서문화사), ‘사라져가는 세대’(헤르비히 비르크·2006년·플래닛미디어), ‘코드 그린-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토머스 프리드먼·2008년·21세기북스)
#인페르노#인구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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