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노부부 안타까운 자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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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아내 간병 남편 “내가 죽고나면 어쩌나… 여보 함께 갑시다”
청송서 승용차 탄채 저수지 빠져 숨져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게 행복한 길이다.”

80대 노부부가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며 함께 목숨을 끊었다. 나이가 들어 기력이 약해진 남편이 치매를 앓는 아내가 홀로 남는 게 걱정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14일 경북 청송경찰서에 따르면 13일 오후 4시 20분경 “국골저수지(청송군 부남면)에 승용차 한 대가 빠져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은 수심 3m의 저수지에 빠진 비스토 승용차를 인양했다. 차 안에서 남편 이모 씨(88)가 숨진 채 발견됐다. 아내 채모 씨(84)는 인양 과정에서 물 위로 떠올랐다.

이 씨 부부는 약 4km 떨어진 중기1리 마을 주민으로 밝혀졌다. 이 씨는 자신의 방에 3형제인 자식들 앞으로 A4 용지 크기의 편지지 1장에 유서를 남겼다. 그는 유서에서 “내가 죽고 나면 아내가 요양원에 가야 하니까 내가 운전할 때 같이 가기로 했다. 미안하다. 이제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니 섭섭하다”고 적었다. 이어 “손자 ○○이 시험 볼 때가 된 것 같은데 내가 하늘에서 빌겠다. 제사는 3년만 지내라”고 썼다. 마지막으로 자식과 며느리, 손주들 이름을 꾹꾹 눌러쓴 뒤 “이 길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야 할 가장 행복한 길”이란 말을 남겼다.

이 씨는 4년 전 아내가 건강검진에서 치매 진단을 받고부터 힘들어한 것으로 보인다. 아내는 증상이 심하지 않아 집에서 약물치료를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악화됐다. 특히 저녁 때 증상이 악화돼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 이 씨가 늘 곁에서 챙겼다. 사과농장에서 같이 살아온 막내아들 부부가 간병을 도우려 했지만 아버지는 한사코 거부했다. 이 씨가 아내를 간호하는 방 안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 한 주민은 “이 씨가 책임감이 강해 나이 들어 자식에게도 폐를 끼치기 싫어했다. 과수원을 같이 하며 금실이 참 좋았는데… 최근 많이 힘들었는지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이 씨는 수년 전부터 기력이 떨어지자 농장 일을 아들에게 모두 맡겼다.

이 씨의 아내는 평소 요양원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청송=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노부부 자살#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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