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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2013 중산층 별곡]<上> 높아진 진입 장벽

입력 2013-01-14 03:00업데이트 2013-01-14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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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아무리 노력해도… 아버지보다 잘살기 힘들어”
《 올해 32세인 윤모 씨는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증권회사에 다닌다. 요즘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장이다. 그의 아버지는 대학교수다. 누가 봐도 전형적인 중산층으로 보이지만 그는 “아버지는 몰라도, 난 중산층이 아니다”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는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서울 송파구이지만, 아버지 집에 얹혀사는 것”이라며 “아버지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생활수준을 누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 경제가 장기 불황의 시대에 돌입하면서 미래 사회의 중추(中樞)로 성장해야 할 청년층이 그 직격탄을 맞았다.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고, 어렵게 직장을 잡아도 월급은 빨리 오르지 않는다. 고도 성장기를 살아온 부모 세대가 운 좋고, 눈치만 빠르면 챙길 수 있었던 부동산, 금융자산 증식의 기회도 경제 활력의 저하로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런 상황은 오랫동안 실업 상태인 청년층은 물론이고 비교적 좋은 일자리를 가진 청년층에까지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보다 잘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열패감을 심어주고 있다. 지난해 말 대선에서 나타난 ‘세대 투표’의 양상도 중장년층에 대한 청년층의 경제적 박탈감이 표출된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 ‘50년 중산층 공식’ 무너져

과거 고도성장기 한국 사회에서는 서민 집안의 자녀라도 본인이 열심히 노력하면 중산층의 사회, 경제적 기반을 어느 정도 마련할 수 있었다.

우선 4년제 대학만 나오면 학점이나 ‘스펙’이 부족해도 불러주는 대기업이 많았다. 산업화 과정에서 기업이 몸집을 확대하는 만큼 고용도 그에 맞춰 늘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저축한 돈으로 정부가 싼값에 공급하는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집값은 경제성장 속도 이상으로 가파르게 상승해 재산이 절로 불어났다.

정년을 맞아 직장을 관둬도 퇴직금을 금융회사에 맡겨 챙기는 이자와 투자수익으로 노후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고성장 경제에서 흔히 나타나는 고용 호황과 집값 상승, 고금리 등 세 가지 요소가 지난 50년간 한국의 ‘중산층 진입 공식’의 주춧돌이었다.

그러나 최근 한국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과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이 가시화돼 20대 청년들의 고용률은 60% 이하로 떨어졌다. 은행 빚을 내 겨우 집을 사도 극심한 부동산 경기 불황으로 집값이 계속 하락해 ‘하우스 푸어’가 되기 십상이다.

높은 취업문을 통과한다 한들 탄탄한 미래가 열리는 것도 아니다. 평균수명은 늘지만 퇴직연령은 갈수록 앞당겨지고 있다. 또 저금리로 마땅히 돈을 굴릴 데가 없는 부모 세대들이 경험도 없는 자영업에 손을 댔다가 노후자금을 날리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이 모두가 실물과 부동산, 금융 시장의 침체가 한꺼번에 진행되며 나타난 슬픈 시대상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아무리 ‘데모’만 하고, 학점관리를 안 해도 대학만 졸업하면 취업에 큰 걱정이 없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취업 경쟁이 워낙 극심해진 데다 직업의 안정성까지 떨어져 청년층의 중산층 진입이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현재의 20대는 건국 이후 처음으로 부모 세대보다 상대적인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는 불운의 세대”라는 분석도 나온다.

○ 결혼 출산 등도 미뤄

2010년 수도권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김모 씨(26·여). 학점은 만점에 가깝고 토익 성적도 나쁘지 않지만 지금까지 비정규직 일자리를 몇 차례 전전했을 뿐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아직 갚지 못한 학자금 대출 3000만 원까지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김 씨는 “요즘 상황을 잘 모르는 부모님은 ‘대학도 나왔고 학점도 좋은데 왜 일자리를 못 구하느냐’며 타박을 한다”며 “등록금을 다 갚고 결혼자금도 모으려면 최소 7, 8년이 걸릴 것 같은데 그때 내 나이는 30대 중반이다. 요즘에는 아예 혼자 살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회 진출 첫발부터 빚더미를 짊어지고 시작하는 청년층의 고단함은 결혼과 출산 등 생애주기마저 바꾸고 있다.

이들 세대의 중산층 진입 지연은 부모 세대에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자녀 뒷바라지를 위해 고령의 나이에도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요즘 20대 취업이 어려워지는 동시에 50, 60대 고용률이 빠르게 증가하는 데에는 이런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지방 출신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회사원 박모 씨(30)는 대학 시절에 월세 보증금을 마련하려고 만든 마이너스 통장을 아직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5년 사귄 여자친구가 있지만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해 계속 결혼을 미루고 있다.

박 씨는 “내가 전세금 마련에 허덕이는 걸 보고 지난 몇 년 새 아버지는 아파트 경비원, 어머니는 식당일을 시작했다”며 “고향 친구들은 서울에 직장을 잡은 걸 보고 ‘성공했다’고 하지만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자괴감에 빠져 있는 시간이 많다”고 말했다.

박재명·유재동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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