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살리라고 줬더니… 온누리상품권 ‘현금깡’ 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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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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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물품 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온누리 상품권 현금거래 관련 글. 인터넷 화면 캡처
온라인 물품 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온누리 상품권 현금거래 관련 글. 인터넷 화면 캡처
“회사에서 추석선물로 받은 온누리상품권(1만 원권) 50장을 47만 원에 팝니다.”

온라인 물품거래 사이트인 네이버 ‘중고나라’ 카페에는 이달 들어 온누리상품권을 사고판다는 글이 300여 건 올라왔다.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중소기업청과 시장경영진흥원이 2009년 7월 만든 온누리상품권은 전국 1100개 시장, 16만 가맹점포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다.

하지만 추석을 앞두고 온누리상품권이 대거 풀리자 전통시장을 살린다는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온라인 상품권거래소 등을 통해 이를 액면가의 90∼95%에 매매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다른 상품권과 교환하기도 하지만 현금을 주고받는 사례가 훨씬 많다.

특히 정부가 정책적으로 온누리상품권의 유통물량을 늘리자 온누리상품권만 전문으로 사들여 이를 은행에서 액면가대로 현금화할 수 있는 가맹 점포주 시장 상인에게 다시 팔거나 아예 상인과 손잡고 전문적으로 ‘현금깡’을 하는 전문업체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예컨대 회사에서 온누리상품권 50만 원어치를 받은 직원이 온라인 사이트에서 47만 원에 팔고, 매입자는 가맹 점포주에 48만 원에 팔고, 상인은 이를 은행에서 50만 원에 교환하는 식이다.

시장경영진흥원은 사태가 심각하다고 보고 유통과정을 모니터링하는 한편 온라인 대형 상품권업체 10여 곳에 ‘현금 거래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마땅한 대책은 없는 상태다.

온누리상품권을 사고판다는 글은 주요 대기업이 임직원들에게 온누리상품권을 지급한 이달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늘어났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대기업들이 사들인 온누리상품권은 총 1800억 원어치로 지난해 전체(712억 원)보다 크게 늘었다. 삼성그룹이 1400억 원어치를 사들여 계열사 및 협력사 직원에게 1인당 50만 원씩 지급했고 LG그룹이 120억 원, 현대자동차그룹이 200억 원어치를 나눠줬다. 이 중 상당 부분은 전통시장에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유가증권처럼 매매되고 있는 것이다.

한 온누리상품권 매입업자는 신분을 밝히지 않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온누리상품권 50만 원어치를 등기로 보내면 46만5000원까지 줄 수 있다”며 “이왕이면 회사 동료들이 갖고 있는 상품권까지 모아올 수 없겠느냐”고 말했다.

이처럼 온누리상품권 현금거래가 늘어나자 일부 기업은 온누리상품권 봉투에 ‘꼭 시장에서 쓰자’는 메시지 카드를 넣기도 하고 공장에 현수막을 달아 홍보도 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사내(社內) 온라인 게시판에 계도성 공지도 여러 차례 올렸다”고 말했다.

시중에 풀리는 온라인상품권이 빠르게 늘다 보니 현금거래를 적발하기도 쉽지 않다. 시장경영진흥원은 올 설 연휴 때 상품권의 유통 흐름을 점검해 할인 매입한 상인 5명을 적발하고 가맹을 취소했다. 시장경영진흥원 측은 “인쇄비 수수료 등 올해 온누리상품권에 들어간 예산만 100억 원”이라며 “제도의 취지를 살리려면 온누리상품권 구매자와 상품권 거래업자, 상인 모두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처럼 실제 수요에 관계없이 상품권 발행만 늘리는 것이 오히려 전통시장에 독(毒)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실수요자가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억지로 상품권을 나눠주니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라며 “이대로 계속 발행을 늘린다면 상품권 할인율이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전통시장의 이미지는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온누리상품권#현금 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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