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경 한국수력원자력㈜ 감사실장실. 원전 납품업체 사장 A 씨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당시 김모 실장(55)을 찾아왔다. A 씨는 사무실을 나서면서 4000만 원을 놓고 나갔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김 실장은 한수원 임직원의 뇌물수수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올 3월 관리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수원 납품비리를 수사 중인 울산지검 특수부(부장 김관정)는 김 처장을 배임수재 혐의로 10일 구속기소했다.
김 처장은 구매담당 간부로 근무했던 2009년 3월에도 다른 납품업체 사장 B 씨로부터 사무실 인근 식당에서 3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원 임직원의 비리를 총괄 감시·감독하는 감사실장까지 지냈던 인사가 모두 7000만 원을 챙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투자도 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원전에 발전플랜트를 납품하는 코스닥 상장업체 B사 주식을 2008년 12월 주당 2900원에 매입한 뒤 1년여 뒤 3만7000원에 팔아 약 7억 원의 시세차익도 챙긴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나 ‘기관통보’ 조치가 내려졌다.
검찰은 이날 한수원 본사 경영지원센터 이모 처장(52)도 납품업체로부터 17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또 납품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가 있는 한수원 간부 20명을 구속해 추가로 재판에 넘겼다. 이날 구속기소된 한수원 직원은 모두 22명이다. 검찰은 납품업체 직원 7명과 브로커 2명도 구속기소했다. 또 한수원 직원 2명, 납품업체 사장 14명 등 총 16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6명(한수원 직원 2명, 납품업체 사장 4명)을 수배하는 등 원전 납품비리와 관련해 총 53명을 적발했다.
고리원전 2발전소 기계팀 박모 과장(52)은 원전 안전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부품을 납품받고 4억5200만 원의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수사 결과 원자로 격납건물 내부 배관 등에 보온재를 설치할 때는 내진·내열 등 성능점검을 거쳐 인증된 ‘특수보온재’를 스테인리스 케이스로 감싼 뒤 ‘2중 클립’으로 고정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D상사가 특수보온재 대신 값싼 일반보온재를, 2중 클립 대신 일반 클립으로 시공한 사실을 알고도 감독해야 할 박 과장은 이를 묵인해준 뒤 D상사로부터 3년 6개월간 뇌물을 받은 혐의를 사고 있다. 검찰은 이 보온재의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 관계기관에 수사 자료를 제공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번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정치권 인사와 본사 최고위층의 연루 의혹은 밝혀내지 못했다.
한편 한수원은 이날 수사 결과 발표 직후 임직원의 금품수수, 횡령, 청탁 등이 드러나면 사유와 금액에 관계없이 해임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김균섭 한수원 사장은 “직원들의 납품비리 사건에 대해 통렬히 반성하고 간절히 용서를 구한다”며 “앞으로 모든 원전 본부장을 사내외 공모를 통해 선임하고 이달 말까지 인사관리 규정을 바꿔 업무의 투명성을 확보하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수원은 앞으로 모든 간부직원으로부터 ‘청렴사직서’를 받기로 했다. 비리에 연루된 협력업체는 최대 2년간 입찰을 배제하고 하반기(7∼12월) 전체 원전에 대한 고강도의 자체감사도 벌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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