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할머니들이 북치며 학교에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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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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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등하굣길 안전하게” 서울 방화동 실버순찰대

9일 오후 서울 강서구 방화동 삼정초등학교 앞에서 ‘실버순찰대’ 소속 동네 어르신들이 고적대 옷을 입고 북을 치며 하굣길 어린이들의 안전을 살피고 있다. 강서구 제공
9일 오후 서울 강서구 방화동 삼정초등학교 앞에서 ‘실버순찰대’ 소속 동네 어르신들이 고적대 옷을 입고 북을 치며 하굣길 어린이들의 안전을 살피고 있다. 강서구 제공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주인공은 피리를 불어 동네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주인공은 피리 소리에 홀린 아이들을 이끌고 사라져 버린다. 독일에 피리 부는 사나이가 있다면 서울에는 북 치는 할머니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동화 속 주인공은 아이들을 부모들로부터 빼앗기 위해 피리를 불었지만 반대로 북 치는 할머니들은 아이들을 부모들에게 무사히 돌려보내기 위해 북을 치고 있다.

○ 우리는 북 치는 실버순찰대

9일 오후 서울 강서구 방화동 삼정초등학교 앞.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 사이로 북 치는 할머니들이 눈에 띄었다. 빨간색 재킷에 하얀 바지, 멋진 깃털 장식이 달린 모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고적대 차림으로 쫙 빼입은 할머니 11명이 큰북과 작은북을 일사불란하게 치고 있었다. 하굣길 아이들은 북 치는 할머니들 곁에서 재잘대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들의 정체는 학교 주변 폭력 예방에 나선 북 치는 실버순찰대. 이 가운데 남성은 지휘자 신현부 씨(77)뿐이다. 이들은 모두 방화동에 사는 동네 어르신으로 가장 나이가 어린 박경옥 씨(64·여)가 큰북을 맡고 최고령자 조동순 씨(74·여)를 비롯한 나머지 대원들은 작은북을 연주한다. 조 씨는 “대학생인 친손자들보다 더 어린 동네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낀다”며 “집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보다 이렇게 꽃단장을 하고 나오니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환하게 웃으며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북을 치고 있었다.

실버순찰대는 아이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구립 길꽃어린이도서관 김동운 관장이 아이디어를 내 2009년 처음 생겨났다. 북 한 번 쳐보지 않았던 할머니들은 음대 대학원생들로부터 짬짬이 북 치는 법을 배워 3년째 북을 울리며 동네 골목길을 누비고 있다. 오전 8시부터 9시,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방화3동에 있는 삼정 정곡 치현 3개 초등학교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 맥가이버 수리단, 은사랑 선생님


강서구는 노인전문자원봉사단을 2009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동네 어르신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시작한 사업이다. 동네 방범활동을 벌이는 실버순라군과 은사랑 선생님, 맥가이버 수리단 등 155명의 어르신이 참여하고 있다.

북 치는 실버순찰대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실버순라군은 해당 동 어르신들이 모여 동네를 야간순찰하고 있다. 동별 6명 안팎으로 모두 130명이 활동 중이다. 은사랑 선생님은 과거 교직에 있었거나 전문 지식이 있는 어르신 중 봉사활동에 관심이 있는 60세 이상 어르신 15명이 어린이 노인 교육프로그램에서 지도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다. 맥가이버 수리단은 정비·수리 경력자 10명으로 구성됐다. 한 달에 10여 회 경로당과 홀몸 어르신 가정을 찾아 소규모 가전제품을 고쳐준다. 노현송 강서구청장은 “현재 활동 중인 어르신들께는 시간당 5000원 정도의 활동비를 드리고 있다”며 “어르신들의 지식과 경험, 기술을 지역의 사회복지자원으로 활용하는 의미에서 앞으로도 꾸준히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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