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선종 2주기 이해인 수녀 특별기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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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사랑의 바보가 되자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추모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지난해 2월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입구에서 열렸던 추모 사진전 전시 작품 속 고인의 생전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추모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지난해 2월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입구에서 열렸던 추모 사진전 전시 작품 속 고인의 생전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해마다 입춘이면 꽃망울을 터뜨렸던 매화가 아직 꼼짝도 안 하는 걸 보면 이번 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 알겠다. 만나면 추기경님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나누던 박완서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별세에 내 마음은 더욱 추웠던 것 같다. 설 연휴엔 이태석 신부님을 주인공으로 한 추모 영화 ‘울지마 톤즈’를 반복해 보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꼭 시성식을 하지 않더라도 바로 김수환 추기경님이나 이태석 신부님처럼 살다 가신 분을 이 시대의 성인이라 부르는 것 아니겠어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갈수록 더 그리워하며 닮고 싶어 하는 그런 분들 말이에요.” 오늘 아침 객실에서 함께 식사한 독일인 토마스 팀테 신부님의 말을 듣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받은 사랑은 과분했다 하시고 베푼 사랑은 늘 부족했다고 고백하신 분, 썩 훌륭하진 않아도 조금 괜찮은 구석이 있는 성직자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하신 김수환 추기경님, 그분의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토록 움직이게 한 걸까. 선종하신 이후에도 끊임없이 용인의 묘소를 성지 순례하듯 가고 싶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욕심 없는 사랑의 나눔과 겸손으로 일관된 삶이 남긴 감동과 향기의 여운 덕택이 아닐까 한다.

생전에 선물로 주신 묵주에서, 떠나시고 나서 기념으로 만들어 나눠 가진 사진엽서나 스티커에서 아직도 그분이 환히 웃고 계신다. 2007년에 직접 그리신 자화상 밑에 ‘바보야!’라고 적은 글씨에도 새삼 눈길이 간다. “추기경님, 제가 바보라는 두 글자로 2행시 지어 볼게요. ‘바라보면 볼수록 보물이 되는 사람’입니다” 하니 나를 향해 빙그레 웃어주시는 것만 같다.

이해인 수녀
이해인 수녀
김수환 추기경님은 ‘자기 자신을 열심히 갈고닦아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수기안인(修己安人)’의 덕목을 누구보다 잘 보여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사랑의 바보가 되기를 원하고 실천했던 그분처럼 우리도 사랑의 바보가 되면 좋겠다. 사랑의 바보가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그 누구도 내치거나 차별하지 않고 골고루 배려하고 마음 써 주는 보편적인 사랑, 손해 볼 준비까지 되어있는 너그러움일 것이다. 약자를 먼저 배려하는 행동을 언제 어디서나 서슴없이 할 수 있었던 그 따뜻한 용기를 본받고 싶다. 명동성당 앞 좌판에서 묵주를 파는 아줌마에게 일부러 다가가 수고한다며 묵주를 구입하셨던 그분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소박하고 정겹다. 추기경님처럼 우리도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다가가는 분위기를 지닌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앙과 종교를 이야기할 적에도 너무 경직되고 배타적이거나 엄숙한 표정을 짓기보다는 일상의 따듯한 유머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내가 아는 어느 목사님은 종교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추기경님을 만나면 대화 자체가 소탈하고 편안해서 그 만남을 부담 없이 즐기게 되더라고 했다. 추기경님처럼 우리도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겸손함, 단순함, 솔직함을 지니면 좋겠다. 누가 당신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목소리를 높여도 날카롭게 대응하기보다는 오히려 ‘내게 필요하고 고마운 일’이라고 고백했던 분이다. 예전에 우리 수녀원을 방문하신 어느 날 “혼자서 기차를 타고 오는데 말이지. 늘 수행비서가 챙겨주다 보니 선반에 가방 올리는 단순한 행동조차 빨리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며 많이 반성했어요. 사람의 습관은 참 무서운 것이더군요”라고 하신 말씀도 떠오른다. 생전에 나라와 교회를 걱정하시며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셨던 어른께서 지금 이 세상을 보시면 무어라고 하실까. 문득 자비와 지혜가 가득한 그분의 음성을 다시 듣고 싶다. “내일을 향해 바라보는 것만이 희망의 전부는 아닙니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 씨앗을 뿌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희망입니다.” 추기경님의 어록을 묵상해 보는 오늘, 평소에 좋아하시던 ‘등대지기’ 노래를 부르며 어리석은 사랑의 바보, 그러나 실은 대단한 현인이셨던 그분의 자애롭고 푸근한 미소를 그리워한다.
▼ 그분이 실천한 ‘생명 나눔’ 운동 뿌리내렸다 ▼
설립한 장기기증단체 작년 신청자 3만6569명… 20년간 신청자보다 많아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당부한 ‘생명 나눔’ 운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김 추기경은 선종 직후 각막을 기증해 환자 2명의 눈을 밝힘으로써 세상을 떠나면서까지 ‘생명 나눔’을 실천했다. 김 추기경의 헌신으로 2009년 장기기증 희망자는 전년보다 2.5배 증가했다. 김 추기경의 선종 2주기를 앞둔 15일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병원과 공인 장기기증 등록단체에 신청서를 낸 장기기증 희망자는 모두 12만4387명(골수기증 희망 제외)으로 전년도 18만5046명보다 다소 줄어들었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기증 희망자 현황을 보면 지난해 신청자는 예년보다 두 배가량 증가한 규모다. 2005∼2008년 장기기증 희망자는 7만∼9만 명이었다. 센터는 “지난해 장기기증 희망자가 12만 명을 넘은 것은 장기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으며 적극적인 동참이 이어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역시 2010년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가 6만7656명으로 2009년 14만886명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2008년 5만9741명보다 늘었다고 밝혔다. 운동본부의 이원균 사무국장은 “2010년이 2009년에 비해 신청자가 줄긴 했지만 3년 전에 비해 계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장기기증에 대해 느끼는 거부감이 많이 줄었고, 장기기증 캠페인을 선뜻 같이하겠다거나 먼저 제안하는 기업, 학교 등 기관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단체에 따라 장기기증 수요가 늘어난 곳도 눈에 띈다. 김 추기경이 설립한 장기기증 단체인 ‘한마음 한몸 운동본부’(본부장 김용태 신부)는 지난해 장기기증 신청자가 3만6569명으로, 전년도 3만4079명에 비해 소폭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단체를 통해 1989년부터 2008년까지 신청했던 장기기증 희망자는 3만3432명이었다. 김 추기경 선종 뒤 이 단체의 1년간 신청자는 지난 20년 동안의 신청자와 비슷한 셈이다. 이 단체의 윤경중 생명운동부장은 “생명 나눔은 고귀한 선행이라는 의식이 확산되고 장기기증 참여 열기가 계속된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한우신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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