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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카드가 또 위험해요!

입력 2011-01-29 03:00업데이트 2020-12-03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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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4.59장… 2002년 수준 넘어 제2대란 우려
업계 불법모집 과열… 신용등급 안따지고 발급
《 “어머니! 잠깐만요. 신용카드 발급받으시면 뽀로로 인형 드려요.” 25일 오전 10시경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앞. 자녀의 손을 잡고 ‘뽀로로와 얼음나라 대탐험 체험전’을 찾은 어머니에게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다가가더니 살며시 팔짱을 끼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너 참 귀엽게 생겼다. 뽀로로 인형 좋아하지”라고 물은 뒤 어머니에게는 신용카드 신청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
깜짝 놀란 어머니는 팔짱 낀 손을 뿌리치며 화를 냈지만 “인형 드리는 건 저희 카드밖에 없다”며 거듭 카드를 발급받을 것을 권유했다. A신용카드사의 고객 모집인인 이 여성의 ‘시도’는 몇 분 지나지 않아 실패로 끝났다. 어머니가 언성을 높이며 강하게 항의하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기 때문이다.

카드모집인은 사람들의 시선에 부담을 느꼈는지 재빨리 자리를 떴다. 5분쯤 지났을까. 그녀는 같은 장소에 다시 나타나 똑같은 방식으로 체험전 관객에게 카드 발급을 권유했다.

영하 10도의 한파(寒波) 속에서도 aT센터 앞을 서성거리며 카드 모집을 하는 사람은 이 여성뿐만이 아니었다. 눈에 띈 모집인만 4명이 있었고 모집 수법도 똑같았다. 한 시간 동안 이들 주변을 맴돌며 불법 카드 모집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를 단속반원으로 오인했는지 오전 11시가 넘자 카드모집인들은 동시에 자리를 뜬 뒤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2003년 신용카드 대란(大亂) 이후 잠잠하던 카드시장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경제활동인구 한 명당 보유한 카드는 평균 4.59장으로 카드 대란 직전인 2002년의 4.57장을 넘어섰다.

2002년 8만7700여 명에 이르던 카드모집인은 2004년 2만 명 아래로 급감했다가 지난해 카드 발급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다시 5만 명을 웃돌았다. 카드 모집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지능화화면서 2003년 대란 당시의 과열 모집 양상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최근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부담으로 금리가 바닥을 치고 상승세로 돌아선 상황에서 카드빚 상환이 일시에 몰릴 경우 ‘제2의 카드 대란’이 올 수 있다는 경고음이 금융권에서 나오고 있다.

장민 금융연구원 국제·거시금융연구실장은 “가계부채 문제가 현실화할 경우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해 고금리의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를 이용하는 저(低)신용계층군에서 부실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카드발급 경쟁 → 돌려막기 악용… ‘빚잔치 전주곡’ 시작됐나 ▼

“불법 사은품 없나” 여신금융협회 합동기동점검반원들이 2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내 카드발급 부스에 불법 사은품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눈치 채고 벌써 튄 거예요.”

26일 오후 1시경 경기 고양시 일산 고양꽃전시관. 소풍을 나온 유치원생, 엄마를 따라 나들이를 나온 어린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한 행사장 옆에는 인형과 자동차 장난감이 수북이 쌓인 좌판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이 좌판을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여신금융협회가 운영하는 신용카드 모집인 합동기동점검반 소속의 한 단속반원은 “카드 모집인들의 호객 행위용 장난감”이라고 말했다. 주변에 있던 한 관람객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중년 여성 3명이 학부모를 대상으로 카드 영업을 했는데 갑자기 가방만 챙겨서 후다닥 도망갔다”고 귀띔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11시경 단속반원들은 어린이 대상의 ‘투니버스 캐릭터 페스티벌’, ‘유후와 친구들의 아이월드’ 행사가 진행 중인 일산 킨텍스에도 단속 활동을 나갔으나 소득은 없었다. 하루 전날 ‘킨텍스 주변에서 카드 모집인들이 관람객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암행 점검에 나섰지만 단속반원이 들이닥쳤을 때는 카드 모집인이 모두 사라진 뒤였다.

한 장의 카드라도 더 발급하려는 신용카드회사들의 과당 모집행위가 2003년 카드 대란 직전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불법적인 카드 모집 행태가 곳곳에서 벌어지는가 하면 한동안 잠잠했던 카드 빚 ‘돌려막기’ 행태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 어린이 행사장까지 파고든 영업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국민 1인당 평균 4.59장(경제활동인구 기준)이나 되는 카드를 보유하고 있는데도 카드사들의 영업경쟁은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3월에 국민은행에서 KB카드가 분사(分社)하고, 하나금융그룹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경우 카드 영업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보여 미리 고객을 유치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민영화를 앞둔 산은금융지주가 카드업 진출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기존 카드사들의 선점 경쟁이 과열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카드 모집 행위가 현행 법령의 테두리를 넘어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에 따르면 카드 연회비의 10%를 초과하는 사은품을 제공하거나 길거리에서 고객을 모집하는 행위 등은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카드 모집 장소와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대학가와 지하철역 주변 등 단속반원의 감시 활동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곳을 피해 어린이 행사장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합동기동점검반을 담당하는 김해철 여신금융협회 조사역은 “대부분 단속반원이 남성인 것을 감안해 여자화장실 안에서 카드 고객을 모집하거나 모터쇼 전시장, 야구장, 경마장처럼 군중이 모이는 장소에서 불법 영업 활동을 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 고개 드는 ‘빚 돌려막기’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 씨(33)는 최근 1년간 카드 3개를 가지고 빚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 결제일을 각각 1일, 15일, 25일 등으로 다르게 지정한 뒤 결제일이 돌아오면 부족한 결제금액을 다른 카드사에서 현금서비스를 받아 갚아 나가고 있다. 1년간 돌려막기를 하다 보니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몇 번 연체를 한 결과 신용등급은 7등급까지 추락했다. 최근 카드 빚 이자가 원리금의 20%를 넘어가자 견딜 수가 없어 친구에게 1000만 원의 빚을 지기도 했다.

최근 김 씨처럼 여러 장의 카드로 빚을 돌려막는 행태가 다시 나타나고 있다. 카드 대란이 있었던 2003년 7월 말 기준으로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집중 관리했던 금융채무 불이행자(신용불량자) 335만 명 가운데 207만 명(62%)이 카드 관련 채무자였다. 2003년 카드 빚 연체율이 2002년보다 두 배 이상 껑충 뛴 것도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부분이다. 여러 개의 카드로 빚을 돌려막다가 돈줄이 막힐 경우 동시다발적으로 연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드 연체율이 서서히 올라가는 게 아니라 한 번 문제가 터지면 빠르게 상승할 수 있다는 의미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 신용카드 연체율 ::

카드 고객이 신용구매, 현금서비스, 카드론 등을 이용하고 갚지 않은 비율. 보통 한 달 이상 연체한 금액을 기준으로 한다. 현재는 1.8%로 낮지만 카드시장의 특성상 한 번 부실이 시작되면 급격히 올라가는 ‘쓰나미’적 특성을 보인다. 시중금리가 계속 오르는 가운데 카드사의 과당경쟁 행태까지 맞물려 앞으로 연체율이 크게 오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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